2010.9.12.사도의 표된 것(고린도후서12:11-21)

[성경본문] 고린도후서12:11-21개역개정

11.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12.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13.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

14.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15.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16.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

17.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18.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19.너희는 이 때까지 우리가 자기 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20.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21.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사도의 표된 것(고린도후서12:11-21/2010.9.12.오전)
1. 시계를 고치는 사람은 사람보다는 시계를 먼저 봅니다.
가방을 만드는 사람은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을 주목합니다.
보석상은 한 눈에 보석의 가치를 알아냅니다.
자동차 전문가는 멀리 있는 차량도 그 차종이 무엇인지 금방 알아맞힙니다.
이렇게 사람은 어디를 가도 자신의 관심분야나 전문기술과 관련된 일에 먼저 주목하기 마련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유세장을 돌아다니면서 청중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일일이 악수하고 인사를 나누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표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정권을 잡은 민주당의 당대표 선거가 14일로 다가오면서, 수상인 관 나오또(菅直人)와 참의원 선거에서 150여 명을 당선시킨 당 간사장을 지낸 오자와 이치로(小沢一郎)의 싸움이 전국적으로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당 대표로 선출 되는 사람이 일본의 수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가두연설에 일본 사람들의 눈과 귀가 쏠려 있습니다.
과연 누가 위기를 만난 이 일본을 구원해 줄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일본의 현실이 급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 된 성도들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이 종말의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야 바로 사는 것입니까?
이러한 질문에 분명한 답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면서, 늘 주님의 몸된 교회를 염려하였습니다.
고후11:28절에 보면,「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뿐 만이 아니라 주님의 모든 교회들을 향한, 심지어 기근으로 고난당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도 염려하였고, 어려움을 당하는 모든 교회를 위해 마음이 무거웠던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모든 관심과 모든 정성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주님의 몸된 교회에 있었습니다.

2. 심지어 어려움을 당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 할 때, 마게도냐 교회가 자신들의 힘에 지나치도록 헌금함으로 그들이 더욱 가난해지는 것이 염려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바울에게는 또 다른 근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린도교회와의 불편한 관계가 염려거리였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 있으면서 세상 사람들처럼 살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섬기면서 교회의 존재 가치와 그 목적을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3:3)라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한 교회 안에서 일어난 분쟁 분파의 문제였습니다.
그렇다면 고린도교회를 향한 바울의 염려하게 만든 요인들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교회 안에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고후7:12).
이 불의가 무엇이냐에 대한 의견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를 향해 공격하고 비난했던 일인지, 아니면 고린도교인들의 음행이나 도덕적인 문제나 세상 법정에 신자들끼리 서로 고소하는 문제인지, 아니면 나중에 고린도교회에 들어와서 바울의 사도성을 공격하고 반대하는 자들의 문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지극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인하여 마음에 근심거리가 가득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때로는 엄중한 편지를 써서 고린도교인들을 꾸짖었고, 때로는 눈물의 편지를 써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도록 하였습니다.

3. 우리는 여기서 대사도 바울에게도 근심이 많았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분명히 주님은,「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고 하셨는데, 왜 바울은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근심이 많은가 하는 사실입니다.
이 근심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고후7:10절에 기록되어 있으니, 곧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돈 걱정 하는 것은 뼈를 썩게 만들고, 세상의 모든 염려는 영과 육신을 고통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들의 신앙을 위해 염려하는 근심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완성된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바울의 사도된 표가 있습니다.
주님이 부르신 복음의 일꾼은 교회를 사랑할수록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영혼을 천하 보다 귀하게 여기는 전도자는 성도들의 잘못된 언행에 근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롬8:26절에 보면,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고통하고 방황하는 성도들을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는 성령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4. 우리가 죄 가운데서 멸망하지 아니하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입니다.
주님이 대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사해진 것이고, 그 십자가의 부활에 우리가 동참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몸 된 이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고 몸 바쳐 충성하는 것은 값없이 은혜로 구원받은 자의 당연한 도리인 줄 믿습니다.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를 향한 근심이 있으며, 한 영혼의 구원을 열망하기 때문에 한 사람의 믿음을 위한 염려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사도된 진정한 표가 고린도교회를 향한 염려와 근심에 있는 것처럼, 우리의 성도 된 표는 다른 아닌 주님의 몸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영적인 근심에 있는 줄 믿습니다.
이것은 분명 세상이 주는 뼈를 썩게 만드는 그런 근심이 아닙니다.
도리어 주님이 우리를 복음의 일꾼으로 불러주신 그 부르심의 소명에 뜨거운 마음으로 순응하는 당연한 반응인 줄 믿습니다.
 
5. 바울을 근심하게 만드는 두 번째 요인은 사도바울을 대적하는 악한 자들이 고린도 교회 안에 여전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후11:14,15절에 보면, 이 사람들을「사단의 일꾼」이라고 하였고, 이 사람들이 하는 일이 사단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듯이 그들로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고린도교회 안에 들어온 목적이 무엇입니까?
진리를 훼방하고 교회를 어지럽혀서 주님의 교회로 바로 서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가르침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속여 진리의 사도인 사도바울을 공격하게 합니다.
한국 교회는 세속의 세력들과 이단들의 도전 속에서 성장해 왔습니다.
그야말로 도전과 응전입니다.
마귀는 어리석은 교인들을 속여 교회가 비진리에 타협하도록 만들고,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으로 살면서 신앙은 본질이 아니라 일종의 액세서리처럼 생각하며 살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전에는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뜨거웠던 그 심령들이 차가워지면서, 어떤 개인적인 명예나 이익에 관련된 것이라면 성도들끼리 첨예하게 대립하여 교회를 분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추수꾼이니 뭐니 하면서 이단들이 활개를 치면서 사단의 일꾼들이 교회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6.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성령께서 교회의 어머니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세운 이 교회를 성령께서 지키실 때, 음부의 권세나 세상의 그 어느 세력도 교회를 무너뜨리지 못하는 줄 믿습니다.
성령님은 소위 사단의 일꾼들로 인하여 심각한 문제에 빠진 고린도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사도바울의 마음을 뜨겁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고린도 교회를 위해 바울이 내린 결론이 무엇입니까?
15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이것은 사도바울 자신이 그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반드시 주님의 몸 된 이 교회를 지켜 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고린도교회를 방문하는 계획을 세웠다가도 그들의 잘못된 것을 책망해야 하는 마음의 부담감 때문에, 그래서 고린도교인들과 더욱 불편한 관계를 가지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에 그 방문을 취소하고 드로아로 간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재물이 필요하면 재물을 허비해서라도 고린도교회를 방문하여 주님의 기뻐하시는 바른 교회로 회복시킬 것을 결의한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이라도 걸겠다는 말입니다.
바로 여기에 진정한 바울의 사도 된 표가 있는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 거짓 전도자들은 물질과 자신들의 개인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서 교회를 이용했지만, 바울은 비록 사단의 일꾼들에게 잠시 속아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교인들이라 하여도, 여전히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고린도 교회를 사랑했고, 고린도 교인들을 만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7. 주님과 우리의 사이를 나타낼 때에는 목자와 양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여호와는 나의 목자」(시23:1)하였고, 주님은「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요10:11)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전투 현장에서는 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4:7)고 하였고, 사도 베드로는「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하여 저를 대적하라」 (벧전5:8-9) 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의 사도적 표는 다름 아닌,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사수하고, 성도들의 신앙을 지키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단의 손에서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아니함에 있었습니다.
이 종말의 시대를 맞이한 성도의 진정한 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복음을 사수하고, 한 생명이라도 지키고 한 생명이라도 더 구원하려는 영적 몸부림이야말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진정한 표인 줄 믿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누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지킬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그 감격이 살아있고, 주님의 값없이 베푸시는 그 은혜에 마음이 뜨거운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교회를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하는 명분이 무엇입니까?
고후1:1절 이 편지의 서두에 기록된 대로,「하나님의 교회」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교회」를 몸으로 지키면 육신의 건강을 주실 것이고, 재물로 섬기면 물질의 축복을 주실 것이며, 교회가 받은 말씀인 진리를 사수하기 위해 생명을 걸면 은사와 능력을 더하실 것입니다.

8. 마지막으로 바울을 근심하게 만든 요인은 여전히 고린도교회 안에는 불신자들과 무분별한 교제를 나누는 부도덕한 신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들이 본문 20-21절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시간상 생략하고 최근에 우리 교인으로 말미암은 물질관계로 인한 불미스러운 사건을 잠깐 말씀드리려 합니다.
성도들끼리의 돈 관계는 시험거리가 되고, 교회를 더럽히는 결과를 가져 오기 때문에 교회 초기부터 엄히 금해온 일인데도 불상사가 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말씀에 근거하여 교회가 금하는 일들을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이자 받고 교인들끼리 돈을 빌려 주는 것은 성경말씀이 금하고 있습니다.
그 명분이 어떤 것이든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신23:19절에,「네가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지니 곧 돈의 이식, 식물의 이식, 무릇 이식을 낼만한 것의 이식을 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돈 거래는 분명해야 합니다(시37:21).
빌리고 갚지 않는 것은 도적질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큰 죄가 됩니다.
개인적으로 남의 돈은 빌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셋째는 보증을 함부로 서면 안 됩니다(잠17:18).
할 수 없이 보증을 설 때는 그 사람의 빚을 갚아 줄 각오를 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는 곗놀이에 가입해서는 안 됩니다.
상부상조 한다고 하면서 만든 계모임이 결국에는 상처를 주고 사기에 살인까지 일으키는 범죄가 되기 쉽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세상 사람들과 지혜가 없는 사람들이 즐겨 하는 일이고, 믿는 자는 선행을 베풀고 가난한 사람 구제하고 병든 사람 돌아보며, 어려운 사람을 물질과 몸으로 돕는 일을 해야 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성도의 삶은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그 풍성한 은혜는 거룩하고 깨끗한 삶에서 나타납니다.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면 살수록 의로운 자의 축복이 영원한 줄 믿습니다.

9. 고린도 교회 안에는 거짓 교사와 삯꾼 목자들이 들어와 교회를 어지럽히고 성도들을 미혹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영적, 육적인 수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바깥에서 이 고린도교회를 염려하는 이 교회의 아버지 같은 사도바울이 있었습니다.
그는 피로 값주고 사신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성도들을 이악한 무리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면서 유형무형의 수고를 아끼지 아니했습니다.
사도의 표란 외형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아끼지 아니하고 복음을 사수하고, 교회를 지키며, 한 영혼을 위해 해산하는 수고를 하는 그런 행동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통해서 주님께 받은 직분들과 사명들이 외형적인 그 어떤 것으로는 결코 증명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 몸과 마음을 다해 섬길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증거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한 대로 갚으시는 주님이「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2:10)고 약속하셨습니다.

약속이 있는 수고, 영원한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헌신, 교회의 섬김 속에서 맛보는 기쁨이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 가운데 풍성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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