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9.5.약함 속에서 온전해 지는 사람(고린도후서 12:1-10)

[성경본문] 고린도후서12:1-10개역개정

1.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6.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7.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약함 속에서 온전해 지는 사람(고린도후서 12:1-10/2010.9.5.오전)
1. 사람이란 힘 있으면 힘 자랑, 돈 있으면 돈 자랑, 자식 자랑, 외모 자랑, 남다르게 소유한 것 있으면 반드시 자랑하기 마련입니다.
가끔 보면 신자들도 기도 자랑, 헌금 자랑, 성경통독 자랑, 남 다른 헌신과 신앙적 충성심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도를 하다 보면, 심지어 유명하고 큰 교회 나가는 것도 자랑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바울 역시 육체적으로 자랑할 것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영적으로 말하면, 3층 천국까지 올라간 사람입니다.
7절에 보면, 그가 주님께 받은 계시와 능력과 은총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풍성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받은 여러 계시와 남들이 맛보지 못한 이 영적 신비와 능력을 결코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3층 천국의 영적 체험을 「한 사람」, 혹은「그가」라는 3인칭으로 표현하면서 마치 자신이 잘 아는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을 대신 증거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입니다.
인생의 모든 자랑은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는 것이요, 가장 어리석은 짓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본문에서도 도리어 자신의 육체의 연약함과 이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받은 여러 고난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7절을 보면, 육체의 가시라고 표현하는 특별한 질병이 그 몸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가시를 눈병이나 전염병으로 말미암는 육체적인 고통이라고 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발작을 일으키는 간질을 앓았다고도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알 길이 없고, 확실한 것은 바울의 육체가 이 병 때문에 많은 고통을 당하며, 특히 전도하는데도 불편했던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 몸의 질병을 해결하기 위해 3번이나 주님께 간구했지만 전부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것입니다.

2. 성경은 인생의 길을 고난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바로 앞에 서서 한 말이 무엇입니까?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으로「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다」(창47:9)고 했습니다.
인생의 삶이 고단한 것은 인생이 죄 가운데서 출생하고, 죄 가운데서 살며, 나중에는 죗값으로 지옥에 가야 할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죄 때문에 인생이 고단하고 고통스럽고 슬프고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말미암아 사죄의 은총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와는 상관없이 새 사람이 된 줄 믿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세상에서 고민하고 고통 하며 눈물을 흘릴 때, 주님이 주시는 평강 속에서 영원한 하늘나라를 소망 하며 감사와 기쁨을 가지고 사는 줄 믿습니다.
남들이 눈물을 흘릴 때 찬송하며, 세상 사람들이 불평하고 원망할 때 도리어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넘치고, 그들이 낙심할 때 도리어 새 힘과 능력을 입어 소망 속에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주님을 위해서라면 생명도 아끼지 아니하고 복음을 전하는 바울에게 많은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또한 우리가 믿음으로 살려고 몸부림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왜 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까?

3.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대우그룹이 무너졌습니다.
그 때 사람들의 견해가 IMF를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또 다른 사람의 견해는 조금 달랐습니다.
대우는 전 세계적으로 진출하여 크게 활약했지만 대부분 후진국, 약한 나라에 진출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오자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약한 나라에 기업이 진출하면 경쟁 상대가 없기 때문에 쉽게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쟁 상대가 없으니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습니다.
대기업은 대기업과 경쟁하고, 선진국과 경쟁해야 기술이 올라가고 무한한 경쟁을 통해 큰 힘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학생도 공부 잘 하는 대도시의 학교에서 저 시골 학교로 가면 늘 일등은 하지만, 그러나 더 이상 실력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나중에는 우물 안의 개구리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스포츠도 그렇고 사업도 그렇습니다.
크고 넓은 곳으로 가서 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싸우고 경쟁할 때 지금은 어려워도 그 어려움 속에서 점점 올라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나라와 민족으로 미국 대통령의 연설에도 모범적인 사례로 자주 인용될 정도로 힘을 얻고 있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환란과 고난이 많은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60-70년대만 해도 정말 별 볼일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이 가난과 고난을 한 번 이겨보자는 생각이 대통령과 온 국민들에게 있었고, 믿음의 사람들은 말씀과 새벽기도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었던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새벽기도에서 가정과 자녀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개인이나 나라나 민족에게 고난이 있다고 망하지는 않습니다.
바람이 심하게 분다고 모든 등불이 끄지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들어 사용하시는 민족은 시련을 통해 연단하시고 귀하게 사용하시는 법입니다.
대장간의 쇠는 달구고 두들김으로 강한 쇠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4. 사도바울이 자기 몸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3번 씩이나 기도해서 받은 응답이 무엇입니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해서 지금 이 상태가 너에게 가장 좋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너 생각에는 이 몸의 가시가 괴롭고 불편하고 부끄러운 것 같지만, 이것이야 말로 내가 너에게 주는 남다른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힘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을 믿고 교만하며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에게는 주님이 능력을 베풀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도우심과 그 능력은 겸손하고 약한 자들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육체의 연약함을 깨닫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스가랴 선지자를 향한 주 여호와의 말씀은「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된」 (슥4:6)다는 것입니다.
찬송가에도「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누가 주의 능력으로 충만할 수 있으며, 누가 주님께 큰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까?
약한 사람입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연약함을 잘 알고 주님께 도움을 구하는 자에게 주님은 넘치는 은혜를 베푸시는 줄 믿습니다.

5. 그렇습니다. 고난과 환란은 끝이 아닙니다.
내 믿음이 연약하고, 내 기도가 부족하고 하나님 앞에 불충한 것을 깨닫고 믿음으로 바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은 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고 심문을 받았습니다.
그 밤에 주님이 나타나서 바울의 곁에 서서 말씀하시기를,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행23:11)고 하시면서 위로하시고 힘주시고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 주님이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시고 함께 하심같이 오늘 우리 곁에 서서 말씀하시는 줄 믿습니다.
주님이 바울에게 담대하라고 말씀하시듯이 오늘 우리에게, 특히 어려움 당한 자들에게 담대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지팡이 하나만 붙잡고도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가 어려움 만나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넌 틀렸다, 끝났다, 너는 죽어야 해! 너는 이것 밖에 안되는 놈이야! 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 마음이 불안하면 그것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떤 형편과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끝까지 지켜 주시며, 그래서 어려움 속에서도 새 힘과 능력과 용기를 주시는 줄 믿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 주님도 죄도 없이 고난당하시고,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고난과 수치를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 속에서, 십자가의 고통 속에도 하나님 아버지의 귀한 뜻이 있음을 믿었기에 부활의 영광을 얻으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과거에 얽매여 살아갑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언제나 미래를 보여주며 미래에 소망을 걸게 합니다.
이것은 과거보다도 현재가 더 중요하고, 현재 보다는 미래가 더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6. 사도바울이 자신의 자랑할 만한 육체적인 조건들을 자랑하지 아니하고, 남들이 맛보지 못한 신비한 체험이며 영적인 자랑들을 드러내지 아니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의 연약함과 겸손함에서 충만해 짐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들고 걸어간 전도자의 길이 힘들고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주님의 은혜가 넘쳤습니다.
육체의 한계를 느끼고 탈진과 고통의 심연에 빠진 것 같은 그 때에 도리어 주님의 베푸시는 새 힘과 소망으로 충만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복음은 고난 속에서 성장하고 박해 속에서 도리어 힘을 얻어 사방으로 전파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할 수 없어도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이길 수 없고 나는 감당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도 주님이 붙드시면 이길 수 있고 감당할 수 있습니다.
나라가 어려워지면 강한 나라의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개인도 어려움 당하면 힘 있는 자의 도움을 구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마지막 까지 도우며 은혜를 베풀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관계는 자신의 유익을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이란 연약한 존재요 그 힘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임 당하셨습니다.
그 분의 사랑, 그 분의 베푸신 은혜는 무조건적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연약한 자를 멀리하거나 이용하려고 합니다마는 주님은 그러한 우리를 품에 앉으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고난당하는 자를 더욱 불쌍히 여기시고 함께 하시고 도우시고 계십니다.
  
7. 그렇다면 약함 속에서 도리어 온전해 지는 바울의 자랑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주님 때문에 약해지고 십자가 복음 때문에 당하는 고난, 즉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그 고난 속에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인내하게 하시고, 새 힘을 주심으로 우리 가운데 주님의 능력으로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내가 약할 그 때에 도리어 강한 자가 됨을 알았습니다.
시골 어린 목동인 다윗을 불러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임금이요 하나님을 제일 잘 섬기는 믿음과 지혜에 뛰어난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간 불쌍한 다니엘 같은 어린 소년을 하나님은 이방 나라의 위대한 총리로 삼으셨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의 힘없는 촌놈인 베드로를 불러 그를 사람 낚는 능력의 전도자로 삼으셨습니다.
망나니 같은 사울을 불러 최고의 전도자인 사도바울로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 오사카에만 머물 수는 없습니다.
온 세계를 향해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복음을 들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체험을 가지고 나아가야만 합니다.
바로 이것이 약함 속에서 도리어 온전해지는 은혜를 입은 자들이 받은 소명이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잠시 고난 가운데 우리를 연단하고 계십니다.
고난 속에서 도리어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께 나아간다면,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 성장하고 새 힘을 얻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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