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9.26.주님의 몸을 세우십시오(고린도후서 13:1-10)

[성경본문] 고린도후서13:1-10개역개정

1.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2.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3.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그는 너희에게 대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4.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5.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6.우리가 버림 받은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7.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림 받은 자 같을지라도 너희는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8.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9.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10.그러므로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한을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주님의 몸을 세우십시오(고린도후서 13:1-10/2010.9.26.오전)
1. 지난 주간의 일본 뉴스의 중심에는 센까꾸도(尖閣諸島)에서의 일본 순시선과 중국어선의 충돌로 말미암은 중국선장의 구속으로 시끄러웠습니다.
일본은 일본법에 따라 조치를 한다고 했고, 중국은 당장 석방하지 않으면 보복조치를 취하겠다고 하면서, 당장 민간교류 부분에서 시작해서 경제적으로 압박해오는 중국에 대해서 일본이 한 발 물러나 선장을 석방하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선장이 귀국하자마자 다시 일본에 보상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미 중국은 일본인을 스파이 용의로 4사람이 구금하고 있는 상태에서 양국관계의 해결의 실마리가 아직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과 중국의 관계는 한마디로 힘의 역학관계입니다.
일본이 미국을 등에 없고 경제나 정치적으로 힘이 있을 때에는 좋았지만, 그런 것들이 한계점에 도달하고, 특히 경제적으로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세계 경제 2위의 대국으로 올라선 중국에게는 일본은 더 이상의 위협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이웃나라와의 관계에서 오는 평화와 자립이란 내가 원한다고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내게 방어하고 공격할 만한 힘이 있을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동안 점점 힘을 잃어가던 일본이 과연 얼마 만큼의 힘이 남아 있는지, 간 나오또 수상의 정권이 얼마만한 외교적인 수완과 정치적인 능력이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바울이 전도하고 세운 고린도교회가 바울을 향하여 참된 사도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금전문제며 심지어 용모가 시원치 않다느니 여러모로 바울을 공격하며 괴롭혔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자신이 가진 사도권까지 의심하면서 자신을 향해 의문을 가지고 공격해 오는 내용에 대하여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변명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겼으며, 어떻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헌신했으며, 성도들을 어떻게 사랑했는지를 증거하면서, 분쟁으로부터 시작하여 도덕적인 문제며 신앙과 신학적으로 잘못되어진 고린도교회를 주님의 교회로 바로 세워 나간 것이 바로 고린도교회를 향한 편지, 곧 고린도전후서입니다.
바울의 첫 번째 편지를 받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고치고 교회가 주님의 몸 된 교회로 회복되어져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3번째 방문하기로 결심했고, 그 방문에 앞서 다시 기록한 편지가 고린도후서입니다.
마게도니야 지역을 돌며 선교여행을 계속하던 바울은 그 편지내용의 마지막 부분인 13장에 와서 원초적이며 강력한 질문을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던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5)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의 신앙검증입니다.
왜냐하면 8절에서 바울이 말한 그대로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된 주님의 교회, 참된 신앙인에게는 살아있는 신앙과 진리의 말씀에 의한 생명의 힘이 있을 때, 그때야말로 참된 교회, 참된 성도의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3. 그렇다면 참된 교회, 힘 있는 신앙인의 모습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국의 축구, 야구 같은 종목들이 세계무대에 나가 위상을 떨치고 있습니다. 축구의 경우는 한일 월드컵에서는 세계 4강 진출과 지난 남아프리카 월드컵의 16강이 있습니다. 이런 경기에는 선수와 감독, 임원들 이외에도 반드시 경기를 중계하고 해설하는 사람들이 따라갑니다.
텔레비전이 없던 1960년대, 한국 축구팀이 동남아시아나 일본에 원정을 가서 시합을 하면, 국내 최고의 아나운서가 따라갑니다.
당시에 KBS의 임택근 아나운서의 중계가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아무리 경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고, 능력이 있다고 해도, 아무리 흥분하고 열심히 중계를 해도 우승이나 메달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따라간 그 경기에 선수나 감독으로 참가하지 않으면 그 어떤 영예나 영광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남들의 신앙생활을 방청이나 하고 간섭이나 하고, 그 신앙생활에 점수나 매기고 앉아 있다면, 주님이 믿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모든 현재와 미래에 대한 모든 약속은 물론이고 그 어떤 영광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신앙의 영적 싸움의 현장에 주님의 군사로서 뛰어 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일에 앞장서서 배우고 가르치고 전하고, 허리를 묶고 섬기며 봉사하는 모든 일에 앞장서는 것입니다.
최근에 일본 축구 선수가 러시아 프로팀에 소속되어 뛰는데, 자신을 공격수로 세우지 않는다고 불만이 대단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에 상응하는 포지션과 대우를 받으려면 남들 이상으로 뛰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주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우기 위해서 몇 가지 중요한 말씀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미 언급한 5절의 말씀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과연 합당한 삶을 살고 있으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일꾼으로서 과연 합당하게 행동하고 있는가를 자문해 보라는 것입니다.

4. 사람들은 흔히 내게 굳센 믿음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는데, 맞는 말 같기도 하지만 문제가 많은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굳센 믿음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다만 믿음의 씨앗을 주실 뿐입니다.
내게 주신 그 믿음을 위대하고 능력있는 믿음으로 키우는 것은 내 자신의 몫입니다.
그래서 바울은「너희 자신을 시험하고」,「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여정은 전투 그것 자체입니다.
사업체를 하나 일으켜 세우려면 잠도 못 자고 일해야 합니다.
손바닥만 한 가게 하나 유지하는데도 얼마나 많은 일이며 문제들이 매일 일어납니다.
공부하는 학생도 머리 터지게 공부하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세상만사 보다 더 어려운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 사람들처럼 똑같은 수고와 희생 위에 원수 사탄 마귀의 공격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자신의 모든 정욕을 이기는 믿음입니다.
고린도교인들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자신들의 신앙적인 상태는 점검할 줄 모르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지 아니 계신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오직 사도바울의 신앙과 그의 사도권에 대한 의심과 염려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고 한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 안을 들여다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옳고 그른 것만 가지고 판단하고 그런 일들이 마치 자신들의 신앙을 높이는 것쯤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5. 하나님의 백성은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서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지엽적인 문제에 마음이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늘 근본적이고 중심적인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계신가 아니 계신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 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 버림 받은 자란 뜻은, 어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낙제된 자를 말합니다.
또한 자격이 없는 자나 혹은 증명되지 못한 자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 불쌍한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 사람 안에는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 사람입니다.
만일에 바울이 사도권도 없으면서 여러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사도인 것처럼 착각해서 행동했다면 이 얼마나 불쌍하고 비참한 일입니까?
과연 그렇다면 바울이야 말로 버림받은 자요 불쌍한 자가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 사실을 고린도교인들이 염려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그 주님이 이방인의 사도로 바울을 세워주셨고, 그는 즉시 전도 현장으로 달려간 것이 아니라, 3년 동안 아라비아 사막에서 고독과 어려운 환경과의 싸움 속에서 주님과의 귀한 교제를 나눈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바울의 가슴에는 신앙을 핍박하고 교회를 박해 하는 이단자와 같은 자신을, 복음의 파숫꾼으로 이방인의 전도자로 세워주신 그 놀라우신 주님의 그 은혜에 감사 감격하는 마음으로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살아계신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 체험이 바울로 하여금 수없는 환란과 고통 속에서도 오직 복음을 위해 살고 복음을 위해 순교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이제는 자신을 의심하고 염려하는 고린도교인들을 향해 역으로 너희 자신들 속에 그리스도가 계신지 아니 계신지를 시험해 보라고 한 것입니다.

6. 일본에는 가꾸레 기리시단(隠れキリシタン)이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일본의 쇄국정책으로 말미암은 천주교도들에 대한 박해가 1873년에 해금되기 까지 200년 이상이나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신앙을 이어왔습니다.
1981년도의 조사에서 그 후손들이 3만여 명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숨어서 불교나 신사의 신도로 가장하여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말이 그리스도인이지 그 신앙의 내용이 불교와 신사의 가르침과 혼합하여 전연 다른 변질된 모습이 되고 만 것입니다.
현대문명의 첨단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신앙이 과연 성경에 기록된 대로의 주님의 가르침과 2천여 년의 세월을 흘러 온 사도들의 신앙적 계승을 제대로 이어가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몸을 세우는 것이요, 신앙의 개혁의 첫 걸음입니다.
바울은 본문의 서두에서 분명하게 밝히기를, 여전히 교회 안에서 악행을 일삼고 있는 자들을 향하여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미 2장과 7장에서 이미 회개한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고 바울이 기뻐한 것을 보면 교회 안에서의 범죄 내용들이 대부분 해결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는 것은, 일부 소수의 무리들에 의한 그들의 악행이 남아 있을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잘못된 습관, 내 고집대로 믿는 신앙의 태도, 행함이 없는 믿음의 생활들은 주님의 몸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도 교회는 열심히 다니면서 결국은 주님의 몸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무너뜨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이 아직도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7. 바울은 고린도교회 뿐만이 아니라, 어느 지역에 있던지 누가 세웠든지 상관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들을 사랑하고 그 교회들이 주님의 은혜 안에서 든든히 세워져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몸과 생명도 아끼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열정, 복음의 능력이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심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고, 그 육신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대신 죽으심으로 믿는 자들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았고, 이제는 그 말씀이 육신이 아니라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서 살아 역사하심을 믿기에,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으로 섬기며, 모든 공격과 비난과 복음으로 인한 고난을 기쁘게 감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기독교 신앙이란 지식으로만 아는 세계가 아닙니다.
주일 예배 참석해서 경건한 예배 한 번 드린다고 신앙인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분의 말씀 속에는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부활의 능력이 있음을 믿고 의지할 때, 주님의 능력이 내 안에서 역사하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체험적이고 말씀이 능력으로 내 삶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을 시험하고 그 결과를 확증해야 합니다.

8. 광산에서 금이나 은을 캐어낼 때, 그것들이 덩어리로 나옵니까? 아닙니다.
돌과 흙과 많은 불순물이 함께 붙어 나옵니다.
그래서 그것을 펄펄 끓는 용광로에 던져 넣을 때, 그곳에서 순금이 나오고 순은이 나옵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참 신앙인가 아닌가, 내 신앙이 죽은 신앙인가 살아서 역사 할 만한 생명력을 가진 능력의 신앙인가를 분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면서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며, 내 생활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허리를 묶고 봉사하고 섬기는 현장에 자신을 던짐으로 내 안에 섬김의 기쁨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복음을 들고 사람들에게 나가서 부끄러움이 없이 담대함으로 증거할 수 있는지 어떤지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새벽에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 내 안에 어떤 변화가 임하는지 살펴보십시오.
바로 그 때, 내 안에 주님이 계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살아 능력으로 역사하는 신앙이 되려면, 자신을 먼저 살펴보고 잘못된 것을 고쳐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내 안에 주님이 살아계심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주님의 몸을 세우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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