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3.15.드로아에서 열린 문(고린도후서2:12-13)
[성경본문] 고린도후서2:12-13개역개정
12.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드로아에서 열린 문(고린도후서2:12-13/2009.3.15.오전)
1. 중국화교의 상술은 유태인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중국 광동성의 상인들은 장사의 천재라고 불리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를 제일로 친다고 합니다. 그들의 상술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말은 돈이 된다면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은 有錢者生, 無錢者死, 즉 돈이 있으면 살고, 돈이 없으면 죽는다는 말입니다.
또한 돈이 없는 것은 일만 악의 근원이라고 했고, 이 세상에서 돈벌이만큼 즐거운 것은 없다고 말함으로 그들의 배금주의 사상이 얼마나 철두철미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세상은 돈이 제일이고 돈 없으면 인생은 캄캄한 밤과도 같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에게도 돈은 중요하고, 돈이 없으면 신앙생활하기도 어렵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마는 과연 우리에게도 돈이 능력이요, 쾌락이요 즐거움이요, 인생살이의 보람이란 말입니까?
有錢者生, 無錢者死 는 과연 의미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에게는 有錢者生, 無錢者死가 아니라, 有信者生, 無信者死, 즉 믿음이 있으면 살고 믿음이 없으면 죽는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을 달려가면서 이루고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는다 하여도 믿음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가장 불쌍한 인생일 것이요, 만일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하여도 우리의 믿음 이것 하나만 지킬 수 있다면, 우리는 영원한 승리자이며, 가장 놀라운 축복을 얻은 자 일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때, 그들에게 손을 내밀며 돈을 요구하던 거지 앉은뱅이에게 돈을 주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여 그의 앉은뱅이 인생을 치료하고, 그 영혼을 구원함으로 새 삶을 준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와 성도들이 당시의 시대를 리드하고 개혁하며 힘 있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물질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또 다른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중심의 신앙에 있었던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을 보니 바울이 드로아에 이르렀다고 했고, 그곳에서 뜻밖에 선교의 문이 열렸고, 전도로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드로아는 어떤 지역이며 바울이 언제 이곳에 왔습니까?
아시아에서 배를 타고 마게도냐로 가기 위해 승선하던 알렉산드리아의 드로아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바울이 이 드로아를 방문하던 시기가 언제였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고후1:8-9절을 보면, 「아시아에서 당한 환란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살 소망까지 사라지고 벼랑 끝에 몰렸던 그 위기,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어려운 고생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알 길이 없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환란 이후에 하나님이 바울에게 드로아의 전도의 문을 열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많은 환란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100세에 약속의 자녀를 보기까지 환란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모세는 의분으로 일어선 히브리민족을 위한 독립운동이 실패로 끝나 40년간 광야에서 잊혀진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욥의 인내가, 다윗의 고난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한결같이 고난 이후에 영광을 얻었고, 살 소망까지 끊어진 고난 뒤에 하나님의 축복과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바울은 드로아에 오기 전에 인생에 가장 어렵고 힘든 고비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복음의 열정에 불타던 나머지 드로아를 향하여 전도의 여정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드로아에서 예상치 못한 전도의 문을 열어 주셨던 것입니다.
바울이라고 가는 곳 마다 전도의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아덴에서 실패하고 고린도로 옮겨간 쓰라린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살고자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문을 열어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새 역사를 이루게 하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3. 인생의 많지 않은 중요한 기회는 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회를 아무에게나 주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자신을 바치고, 복음을 위해 뜨거운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은 문을 열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울이 그 열린 문을 활용하지 못하고 드로아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다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도의 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을 위해 자신을 바친 사도바울이 왜 그 기회를 포기하고 말았습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그의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전도의 문이 열렸고, 전도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얻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마게도냐로 떠나야 만 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바울의 마음에 염려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함으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다고 했습니다.
디도가 누구입니까?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신 보낸 사람으로, 드로아에서 만나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듣고자 했는데, 이 디도가 생각보다 시일이 많이 걸리고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짐작했던 시기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염려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중요한 일을 하려고 하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생기고 계획한대로 일이 진행되지 못함으로 염려하고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염려는 우리의 길을 막습니다.
염려는 인생에 열린 문도 막아버리고, 영적인 열매도 막아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내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염려하고 근심하고 낙심하기를 잘합니다.
그러나 욥의 고백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 (욥3:25)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했습니다.
염려가 오면 그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사인입니다.
염려가 오면 그것은 기도로 응답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다른 뜻이 있다는 표시입니다.
우리의 염려는 우리의 앞길을 막지만, 믿음으로 간구하는 기도와 감사는 막힌 길을 열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4. 둘째로, 바울은 주어진 환경에 지나치게 민감했습니다.
이미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큰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었는데, 그것은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 주동이 된 은장색, 곧 우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바울의 예수 복음의 전도 때문에 자신들의 사업이 무너진다고 하여 일으킨 소동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디도와 약속한 날짜보다 빨리 에베소를 떠나 드로아로 간 것입니다.
환경은 우리의 삶에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 인생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맹자의 모친은 아들의 교육을 위해서 3번 씩 이사를 한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사람이 환경에 한 번 지배를 받으면, 그것이 반복되는 사이에 습관이 되고, 결국은 환경을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환경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통치 하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공부를 제대로 못한 환경을 가진 사람도 있고, 신체적 결함을 가진 사람도 있고, 경제적 어려움, 인간관계의 어려움에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여기에 모인 사람들의 2/3는 이방 땅의 환경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언어의 고통, 문화와 관습이 주는 고통, 향수병, 차별적인 사회의 환경, 우리는 이중 삼중의 어려움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바라보고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은「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고 하면
서,「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5,37)고 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살아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모세는 광야의 양치기로 평생을 썩어야 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다윗은 가장 위대한 왕은커녕, 보잘것없는 양치기로 자신의 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지금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와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2:9)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계획 아래 있는 우리들은 환경과 조건에 지배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바꾸고 회복하고 치료하는 능력의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환경을 믿지 말고, 그 환경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바랍니다.
조건을 따지지 말고 주어진 조건을 개선하는 능력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5. 셋째로, 바울은 잘못된 곳에 관심을 쏟았습니다.
지금 드로아에서 하나님이 전도의 문을 열어 주셨는데, 그곳에 관심을 쏟지 않고 디도가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또한 디도의 안부가 염려스러웠던 것입니다.
화장실에 앉아서도 오만 가지 걱정을 하면 볼 일은 못 보고 변비에 걸리던지 치질에 걸릴 것입니다.
화장실에 앉으면 뒤로 내 보내는 일이 제일 중요합니다.
밥상에 앉아서 오만 잡 걱정을 다하면 위장병에, 위궤양에 마침내 암에 걸립니다.
밥상에 앉으면 나를 위해 차려진 그 음식을 감사하며 맛있게 먹는 것이 최선입니다.
바울이 디도의 안부나 걱정할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에게 전도의 문을 열어주신 하나님의 축복에 힘을 입어 전도에 열심을 내었어야 합니다.
열심히 전도하다 보면, 디도를 만날 것입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염려하고, 주어진 환경에 불평하거나 두려워하고, 더 중요한 일을 내던지고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고 고민하다보면, 우리의 삶을 그것이 영적인 문제이든지 육적인 문제이든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잘 들여다보고 있으면, 바울이 평소보다 지나치게 조급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급한 것은 일을 망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더딘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그곳에서 선한 열매를 많이 맺도록 수고하고 염려하며 최선을 다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개인적인 일을 형통하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6. 오늘 우리도 자신의 문제만 바라보면 하나님의 뜻을 잃어버리고 방황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너무 좋은 기회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에 마음이 빼앗기다 보니,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기회인 줄도 모르고 결국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7:5절에 보면, 드로아에서 하나님이 열어주신 전도의 문을 깨닫지 못하고 성급하게 마게도냐로 간 결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란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고 했습니다.
대 사도 바울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나아갔을 때에는 어디로 가든지 편치 못했고, 계속해서 문제 속에 빠져 고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로 속히 간 것은 디도를 빨리 만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디도는 예상보다 늦게 왔고, 바울은 그것 때문에 디도를 만나기까지 몸과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맡겨 주신 일이 있는데, 관심이 다른데 가 있으면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가 없고, 하나님 앞에서 결국에는 불충한 자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성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고, 내 일은 하나님이 하시도록 하면 됩니다.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문제의 배후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7.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한다면, 하나님은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삶에 계속해서 축복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의 강퍅함이 도를 넘고 말았습니다.
이러다가 벌을 받지, 심판이 가까이 왔구나 생각할 때가 많은 것은 내 개인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물질도 중요하지만, 위로부터 내리는 믿음의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 일본 민족에게로 보내신 참 뜻을 깨닫고, 우리도 사도바울의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산다면, 우리가 원하는 영육간의 문은 계속 열릴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