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근심의 뿌리를 뽑으라(고린도후서 2:1-11)

[성경본문] 고린도후서2:1-11개역개정

1.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2.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한다면 내가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

3.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4.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5.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6.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7.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8.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9.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10.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11.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근심의 뿌리를 뽑으라(고린도후서 2:1-11)
1. 교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또한 모였다가 흩어져 나가고, 또 다른 사람들이 모여들고, 마치 영적인 교차로와 같은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여든 사람들마다 인생의 걸어온 배경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삶의 내용이 다른 사람들로 뒤 섞여 있습니다.
여기에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육체적으로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있는가 하면, 믿음에 있어서도 초신자가 있고 뛰어난 영적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한 가지 목표로 통일 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무엇보다도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같은 수준에 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마음과 뜻을 하나로 묶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은 생각이 다르고 요구가 다른데, 교회라고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겉으로 볼 때 아름답고 평온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늘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 마련입니다.
신자가 늘어나면 그 늘어난 만큼 더 많은 문제들이 모여들기 마련입니다.
상처를 입고 그 상처를 치유하고자 모인 사람들이 있고, 인생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위로 받고 해결 받으려고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더 많은 문제를 만들거나 더 심한 상처를 입을 수도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바로 이것이 고린도 교회나 오늘의 이 지상 교회의 공통된 문제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 안에 만성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이 문제, 근심의 뿌리를 뽑아낼 때 주님이 원하시는 지상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2. 바울을 근심하게 만든 것이 무엇입니까?
도덕적으로 문제가 심각한 사람들이 회개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교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예수 믿기 전에 가졌던 세상 풍습으로 말미암은 도덕적인 범죄를 그대로 교회 안에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을 근심하게 만든 것은 근친상관의 죄를 범한 사람의 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곧 부친의 젊은 첩을 상관한 자의 죄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일단 믿고 회개하여 그리스도인이 되면, 과거를 따지거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그 사람을 죄 짓기 이전의 상태로 회복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본인이 교회에 들어와서 새 사람이 되었다면 당연히 이전에 행하던 일들을 정리해야 합니다.
도적질하는 사람은 도적질을 멈추고, 도박 하는 사람은 도박을 끊고, 몸을 팔던 사람은 바른 직업을 가지고, 술 꾼은 술을 끊고, 행패나 폭력을 쓰는 사람은 악행을 멈추고, 모든 육체의 옛 정욕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과거의 죄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여전히 악을 행하고 있다면, 이 사람으로 인하여 교회 전체가 근심하고 슬퍼하게 될 것입니다.

3. 우리가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고 그 죄를 계속 품고 있다면 어떻게 됩니까?
결국에는 그 죄가 그 사람을 망하게 하고, 그 사람이 속한 공동체도 고통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음란죄를 품고 있다면 그 음란함이 그 사람을 죽입니다.
잠언6:26절에,「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음란이 재산을 날리고, 건강과 생명까지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욕심의 죄를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품고 있으면 탐욕이 그 사람을 패가 망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민1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탐욕이 큰 재앙을 불러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1장4절에 고기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고기 먹지 못해서 우리의 정력이 다 쇠진했다고 불평합니다. 그 결과 고기가 아직 잇 사이에 남아 있을 때, 하나님의 진노로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민11:33)  
어떤 죄를 품고 있는 사람에게 그 죄를 공격하면, 두 가지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다윗처럼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리어 반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미 그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품고 있는 그 죄와 일체가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죄도 인격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죄를 계속 품고 있으면 마침내 그 죄성이 그 사람의 습관이 되고 인격이 되고 그 생활의 일부가 되고 그 죄를 인하여 망할 때까지 함께 가기 때문입니다.

4.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십자가의 사랑이,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새롭게 하며, 그 어떤 죄와 허물과 고통 속에서도 그 사람을 구원하여 새롭게 하는 줄 믿습니다.
내 힘으로 떼어낼 수 없는 내 품안에 있는 죄라도 엎드려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그 죄를 떼어내고 새 사람, 새 인격, 새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는 줄 믿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배신하고 저주하는 큰 죄에 빠졌지만, 회개하고 용서를 구할 때 주님은 모든 죄를 씻어 주시고 더 위대하고 능력있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은 그 서두에서 이 사실을 증거하기를,「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요1:12)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고린도 교회가 그들 가운데 있는 범죄자의 악행을 보면서도 그를 징계하지 아니하고 모른척 하거나 방치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 사람이 교회의 유력한 자 였던지, 요즘으로 말하면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는 부자였거나, 사회적으로 지위와 능력이 있어 교회에 여러모로 힘이 되고 있었던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이 사람과 함께 고린도 교회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일가 친척들, 혹은 많은 종업원들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는 현실적으로 갈등하고 고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단호했습니다. 타협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엄격한 편지를 써서 고린도교회로 하여금 이 범죄자를 징계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시했습니다.
 
5. 우리 몸에서 작은 새끼손가락 하나라도 곪으면 온 몸이 아픕니다.
조개 속에 모래가 들어오면 조개 전체가 그 이물질을 안고 고통 하기 마련입니다.
교회 안에서 문제 있는 사람이 있으면 지도자로부터 시작하여 교회 전체가 근심하고 슬퍼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한 몸이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의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편지를 보내는 이 바울도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심하고 고통했습니다.
그러나 4절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엄한 편지를 보내는 것은 고린도 교회나 범죄자를 계속해서 고통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넘치는 사랑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고후7:1절에「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께 하자」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토록 근심하며 고통 중에서도 눈물을 뿌리며 이 편지를 쓴 이유가, 교회는 주님의 몸이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거룩성은 어떤 외부의 환경이나 시설이나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씻김을 받아 깨끗하고 거룩하게 됨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자가 되고
아름다운 신부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자복하고 거룩한 성도로서의 삶에 힘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한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고전6:9) 기 때문입니다.

6. 바울은 자신의 간곡한 편지를 받은 고린도 교회가 아픔을 각오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범죄자를 징계하고 교회 안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엄한 충고로 많은 사람들이 잠시 근심했지만, 그리고 바울과의 불편한 관계로 잠시 고통 했지만, 죄로 말미암은 근심은 잠깐이요 결과적으로는 악한 자를 회개함에 이르도록 함으로 모든 사람들이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것으로 교회 안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고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서 일어난 문제는, 범죄자를 징계한다고 당면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최종적으로 원하는 것은 징계 후에 따라와야 할 용서와 위로에 있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범죄자나 배신을 당하면 언제 까지고 그것을 기억하고 그 사람을 조심하고 경계하기 마련입니다.
수 십 년이 지난 사건도 입 소문을 통해 돌면서 사람들로 기억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부모 자식 간에, 자녀가 나쁜 짓을 해도, 일단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면 부모는 다 잊어버리기 마련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자기 생명을 대신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여기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 모여 있을 때,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놀랍고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이 사랑을 범죄하고 회개한 자에게 지속적으로 그 사랑을 베풀어줌으로 그들이 여전히 교회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온전한 회복을 얻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7. 교회가 지향하는 최종적인 목표가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세움을 입어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때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없다면, 도리어 더 많은 사람들이 상처와 갈등을 가지고 여전히 슬픔과 근심 속에서 흔들릴 것입니다.
우리가 범죄한 자를 법적으로 징계만 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용서와 위로를 주지 못한다면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보시는 주님의 뜻을 받들 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가 정죄하고 판단하는 율법만 있고, 용서하는 은혜의 복음이 없다면, 교회를 고통 하게 만드는 근심의 뿌리는 영영 뽑을 수 없을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이 범법한 자를 은혜로 대하려는 자들과 율법으로 대하려는 자들로 나뉘고 말았기 때문에, 바울은 진정한 용서와 위로가 없이는, 지금은 문제가 해결된 것 같이 보여도, 도리어 고린도 교회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11절에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다」고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없다면 이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마귀가 교회 전체를 흔들며 시험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후11:3절에서「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 까 두려워 하노라」고 했습니다.

8. 교회는 현실적으로 많이 연약합니다. 그리고 많은 문제점들과 많은 갈등을 안고 있는 사람들로 인하여 때때로 교회도 근심이 있고, 고통이 있고,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주님이 다스리시고 통치 하시며, 성령님이 어머니로서 우리 모두를 품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교회가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같은 교인들 끼리, 그리고 문제 있는 성도 조차도 내가 정말 용서 받았고, 참 사랑을 입고 있다는 것을 서로 간에 확인할 수 있도록, 그래서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고 위로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근심과 더불어 울면서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 뿌리 박은 근심의 뿌리 때문입니다.
마귀는 이것을 이용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어지럽히고 많은 성도들을 믿음에서 넘어지도록 만들려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죄의 유혹과 문제를 이기게 합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과 용서, 자비와 은혜로 모든 사람을 가까이 한다면, 용서하지 못할 일이 없고, 교회에 쌓이고 뿌리 박힌 그 어떤 문제들도 이 사랑 앞에 다 뽑혀 나갈 것입니다.

어떤 근심도 고통도, 어떤 슬픔과 유혹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함께 이겨나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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