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9.3.구원의 완성(빌립보서 2:12-19)

[성경본문] 빌립보서2:12-19개역개정

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

13.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15.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17.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6)하라

19.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제공: 대한성서공회

구원의 완성(빌립보서 2:12-19/2008.9.3)

1. 지난 1일, 오까다가 이끄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이 바레인과의 월드컵 최종 예선을 앞두고 일본 국내 대학팀과 평가전을 갖다가 0-1대 패하는 망신을 사고 말았습니다.
결국 아무리 국가 대표팀이고 월드컵 팀이라고 하여도 이름과 자부심만으로는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
국가 대표팀이라면 당연히 늘 최상의 컨디션과 실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우리가 이미 구원받았다고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분명히 말하기를,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우리의 구원을 무너뜨리고 그것을 도중에 파선시키려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는 마귀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또한 많은 죄의 유혹들이 지금도 우리가 사는 이 지구촌 사방에서 우리를 넘어지게 하려는 올무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이미 받은 구원을 온전히 이루고 지키는 몇 가지의 중요한 방법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2. 첫째로, 12절의「항상 복종하여」라는 말씀입니다.
이 복종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것으로 그 특징이 장소와 시기와 기한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언제까지든지 변함없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참된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복종하지 아니하고는 구원을 이룰 수는 없는가?
그렇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요 구원받은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광야 40년의 생활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애급에서 살면서 바로에게 충성과 복종을 다하였지만, 어디까지나 억지로 한 것이요 노예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참된 충성과 복종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야 40년간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서 이 노예의 근성을 뽑아내고, 애급에서 구원하신 그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에서 솟아나는 복종을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3. 문제는 지금도 노예의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 억지로 섬기고 봉사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그들이 아무리 수고해도 그들을 위해 예비된 보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노예에게 상을 주는 자는 세상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자녀된 자를 사랑하시고, 자녀된 자를 축복하시며, 그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그런 성도들을 귀히 보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이 값없이 주어졌다고 결코 방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세상에 있으며, 우리의 구원도 이 육체로 인하여 완성된 단계에 이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복종을 통하여 완성되어 지는 것이요, 결코 억지가 아닌, 그 분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여 우리 스스로 자원하는 그런 복종의 삶을 통하여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4. 두 번째는「두렵고 떨림으로」이루는 구원입니다.
이「두렵고 떨림」은, 원래 하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경건심을 나타내는 말이요, 이「두렵고 떨림」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시고 끝까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구원받은 이후에 구원받은 자답게 생활 하지 못하고, 여전히 썩어져 가는 구습과 악한 행실을 버리지 못함으로, 변화되지 못한 자의 삶을 사는 것을 보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삶의 태도와 모습을 스스로 깨닫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땅히 성도로서 성숙한 삶, 곧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행실과 습관에 묶여 죄의 세력에 굴복하고, 타협하고, 핑계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목사님도 고민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그래서 나도 고민하고 괴로워한다고 했더니 그러면 무엇을 고민하는가 다시 물었습니다.
설교를 더 잘하려고, 교회를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장시키고, 성도들이 지금보다 더 잘되었으면 하는 고민과 우리 아이들의 장래를 고민한다고 했더니, 목사님들도 우리하고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목사도 똑 같습니다. 우리에게도 고민이 있고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도 하고 또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할 수있기 때문입니다.

5. 그러나 목사가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힘쓰고 애쓴다고 어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인간의 힘으로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가르쳐 주는 것이 목사의 일입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님만을 믿고 의지하도록 하는 것이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올바른 신앙인이라고 늘 평안하고 태평하고 형통한 자의 삶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아직 싸워야 할 영적인 싸움이 있고, 아직 우리 자신들이 변화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그리고 내 안에 아직도 죄의 세력들이 남아서 우리의 거룩한 삶을 방해하고, 하나님께 복종하려는 삶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자세야말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라고 바울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6. 셋째는,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완성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은 우리로 구원을 사모하게 하시고, 온전한 구원을 이루기까지 때로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지게 하시고, 또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감동 받게 하시는 분입니다.
또한 마귀와 세상과 죄의 세력에 사로잡힌 우리 육체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도록 도우시고 새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순종하고, 복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도록 게속해서 바른 길로 인도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이와같이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이미 받은 구원을 굳게 지키며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 가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요 우리의 몫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중요한 것은 구원받은 자의 태도입니다.
여기서「구원을 이루라」는 바울의 명령은, 거듭난 성도로서의 삶을 계속 유지하도록 힘쓰라는 것입니다.
스포츠 선수가 국가대표로 발탁이 되면, 항상 자신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유지함으로 언제 어디서든지, 또 어떤 상대를 만나던지 승리하고 최고의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도 이와 같습니다.
바로 그 때 우리로 하여금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며, 또한 좋은 결과를 얻도록 도우시고 힘주시는 분도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7. 세상 사람들은 우리보다도 더 열심히 살고 있으며, 우리보다 더 최선을 다해 살고 있습니다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악착같이 살다가 막상 죽음에 이르러서는 예외 없이 두려워하고 후회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삶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죽음에 대한 준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하여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16절에 기록된 대로 그들의 삶은 모든 수고가 헛된 것으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기독자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받은 이후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은총을 노래하며 감사합니다. 날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그분에 대한 복종의 삶을 살아갑니다.또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의 삶에 온갖 은혜와 축복과 능력으로 넘치게 채우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야 말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는 증거가 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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