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9.10.바울의 사람들(빌립보서 2:19-30)
[성경본문] 빌립보서2:19-30개역개정
19.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20.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21.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22.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23.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24.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25.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6.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8.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29.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바울의 사람들(빌립보서 2:19-30/2008.9.10)
1. 바울은 로마감옥에서 자신의 판결이 곧 있을 것이고, 그 때에는 반드시 무죄석방이 될 것을 확신하면서, 이 판결을 앞두고 디모데의 도움을 받아 변론에 필요한 자료와 증거들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출옥하면 무엇보다도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소망과, 또 한 가지는 자신을 위해 헌신적으로 돕고 있는 빌립보 교회를 방문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바울은 먼저 이 빌립보 교회를 위하여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일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파송하는 일과, 자신의 곁에서 헌신적으로 섬기며 수고하는 빌립보 교인인 에바브로디도를 다시 빌립보로 돌려보내는 일이었습니다.
첫째로, 다른 제자들도 많이 있는데, 가장 가까이에 있어야 할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파송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사실입니다.
이유는 20절에 기록된대로,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기」때문입니다.
바울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지만, 바울과 함께 빌립보 교회를 간절한 마음으로 생각하는 자가 디모데 이외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른 제자들의 사정은 어떠했습니까?
21절에 보니,「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하니하」였던 것입니다.
바울과 함께 예수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 동거동락 하던 제자들이었지만, 오랫동안 바울이 옥에 갇혀 있다 보니, 그들의 관계가 소홀해졌고, 그러면서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일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개인생활을 더 중요시 하게되었던 것 같습니다.
디모데를 제외한 다른 제자들이 다 이 같았다는 사실은 놀라울 뿐입니다.
2. 그러나 디모데는 바울을 아버지처럼 섬기면서 옥바라지를 잘 감당했습니다.
물론 바울이 믿음안에서 디모데를 아들로 삼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디모데 자신은, 복음을 전하는 자와 함께 수고하는 것이 곧 복음을 위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를 위해 기도하고, 함께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전도자가 어려움에 있을 때 가까이에서 함께 하고, 또한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곧 복음에 참여하는 것인 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디모데는 바울과 뜻을 같이하였다고 했고,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구했고, 복음에 동참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뜻을 같이 하여」라는 말은, 마음이 같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도 교회는 많고, 성도들은 많아도 정말 예수님의 제자된 사람은 적습니다.
제자의 첫 번째 자격이 무엇입니까?
뜻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함께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늘 밀착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늘 염려하는 생각과 마음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알아보는데는 디모데가 가장 적임자였던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일꾼을 세울 때, 사명감에 충실한 자를 세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가나안에 정탐꾼을 파송할 때, 지파별로 적당한 사람 한 사람씩을 세워 보낸 결과가 무엇입니까? 엄청난 고통과 재앙이 임하고 말았습니다.
사명감을 잃은 자들의 보고는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 전체를 큰 위기에 빠뜨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디모데는 자신의 곁에 있어야 할 중요한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려는 것은, 그가 신실한 일꾼이요, 무엇보다 바울의 두터운 신임을 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 그러나 디모데라고 처음부터 바울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 디모데로 하여금 바울의 신임을 얻게 하였습니까?
22절에 보니,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하였습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연단을 받은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따라 우리를 귀하게 사용하시기 전에 반드시 연단하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연단을 받은 후에 축복하셨습니다.
모세도 광야 40년의 연단을 받은 후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 다윗왕도 그랬습니다.
다니엘도 불같은 시험과 연단을 받은 이후에 더욱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특히 바울 당시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들은 이단과 잘못된 헬라의 사상으로 영향을 받아 흔들리고 있었고,
사도바울은 로마감옥에 갇힘으로 그들의 믿음을 굳게 세워주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믿음의 공동체들은 다 위기 가운데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의 주위에 있는 제자들의 대부분은 전부 자기 일만 생각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자기중심이 될 때, 받은바 사명을 잃어버리며, 사명을 망각하는 자는 예외 없이 날개 부러진 새처럼 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인정받고 존귀한 자로 세움을 입는 것은 먼저 어려움을 통하여 새사람되고 성장한 후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디모데처럼 믿음의 영웅들처럼 우리를 연단시켜 당신의 뜻대로 사용하시는 귀한 일꾼으로 세우시는 줄 믿습니다.
4. 두 번째로 사도바울이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 교회로 돌려보내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가 옥중에서 고생하는 사도바울을 위해 그의 필요한 것을 보충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빌립보 교인들의 선물을 가지고 로마로 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병에 걸렸고 중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는 처음에는 자신의 병든 것을 바울과 주위 사람들에게 숨기면서 바울의 옥바라지에 수고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가 중태에 빠지자 모두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에바브로디도는 이 사실이 바울뿐만 아니라 빌립보 교회가 알고 염려하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그의 헌신적인 봉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기적적으로 그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바울의 주위에 있는 제자들이 자기 일에만 열심을 낼 때, 빌립보 교회에서 대표로 온 이 사람은, 자기 몸을 돌보지 아니할 정도로 바울의 옥바라지에 열심을 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를 가리켜「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고 했습니다.
특히 바울과 함께 군사된 자라는 이 말씀은, 그가 자기를 위해 살지 아니하고 복음을 위해 그 어떤 위험과 희생을 각오한 자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에바브로디도 뿐만 아니라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은 신앙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바울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입니다.
특히 에바브로디도는 그들의 대표로 바울에게 보냄을 받은 자였기 때문에, 사명감을 가지고 바울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는 복음의 사도인 바울을 돕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요, 복음의 진보를 이루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아니하고 열심을 내었던 것입니다.
5. 우리는 오늘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하는 것과, 빌립보 교인들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바울을 생각하며 섬기는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특히 바울은 본문에서 3번씩이나「주 안에서」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모든 계획과 소망, 그리고 모든 소원들이 다 주님 안에서만 이루어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즉, 자신의 모든 현재와 미래를 주님의 손에 맡겼던 것입니다.
곧 있을 재판을 통해 자신이 무죄로 방면될 것을 확신하면서, 자유의 몸이 되어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주어진 사명을 다할 것을 꿈꾸면서, 속히 빌립보 교회를 방문하고자 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그토록 사모하고 그 교인들을 사랑하며 염려하는 이유는 그들이 바울을 위해 쏟은 희생적 사랑이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전파되어지는 이 복음이 귀하기 때문에 복음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아낌없이 사랑했습니다.
바울의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면 서로에게 모두 귀한 존재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쏟아 붓는 사랑과 희생이 남달랐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같은 자기의 사람들을 29절에 보니 존귀한 자들이라 하였고, 존귀히 여김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사랑을 쏟으셨습니다. 일방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그 위에 바울이나 디모데, 또한 평신도 에바브로디도에게도 귀한 사명을 주심같이 우리에게도 남다른 귀한 사명을 주셨고, 남다른 사랑을 체험하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는」죽도록 충성하는 사명자의 삶이 있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