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7.9.복음을 가진 자의 생각(빌립보서 1:12-18)

[성경본문] 빌립보서1:12-18개역개정

12.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복음을 가진 자의 생각(빌립보서 1:12-18/2008.7.9)

1. 생각이란 그 생각을 가진 사람의 모든 것을 표현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생각의 차이라고 말할 때,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온갖 종류의 생각들이 온갖 종류의 사람을 만들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소유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복음을 소유한 사람들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자 합니다.첫째로, 바울은 자신의 당한 일이 좋은 결과를 가져옴을 기뻐하였습니다.
바울이 당한 일이란 무엇입니까?
복음 전하는 일로 인하여 죄인의 몸이 되고, 갇힌 몸이 된 것입니다.
그는 로마의 셋집에서 오늘날의 연금 상태에 있었습니다(제한적인 자유).
그리고 나중에는 시위대의 감옥으로 옮겨졌습니다(대부분의 자유를 잃었다).
우리가 자유라는 것의 소중함을 알지 못해도, 일단 그것을 빼앗기고 나면, 자유의 귀중함과 가치를 알게 됩니다.
사실 이 자유라는 것은, 사람의 가치와 그 됨됨이를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바로 이러한 자유를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복음 때문에 갇힌 몸이 되었고, 그는 복음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자유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이것 때문에 바울이 불평하거나 원망한 부분은 없습니다.
도리어 본문 18절에,「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복음을 소유한 자의 생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2. 이 세상에는 많은 생각과 사상이 있습니다.
분노, 질투, 원망, 염려, 낙심, 갈등 등에서 오는 여러가지 생각들은 그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치명적인 어려움을 주기 마련입니다.
또한 욕심, 불평, 비판, 두려움 등은 다 사람들의 부정적이고 잘못된 생각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17절에 보면 그런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들은 나의 메임과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파함에 그 능력과 그 효과가 극대화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자, 다른 일부의 사람들이 그것을 시기하고 질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는 고소하게 생각하고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눈엣 가시 같은 존재가 사라지고, 자신들에게 복음으로 인한 더 많은 기회와 이익이 주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복음사역에 종사하는 자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화평의 하나님이시요, 분쟁과 시기와 질투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 복음을 가진 자의 생각은 어떠해야 합니까?
다른 사람들이 잘되면 나도 기뻐하고, 나보다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당하는 어려운 일도 하나님이 더 좋은 길을 여시는 기회라 생각하고 감사하면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도 자유를 잃고 자신이 옥에 갇힌 것을 도리어 기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바울을 볼 때, 그는 머리가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무엇을 위해 살 던 사람이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위해 죽기를 각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길이요, 이 복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곧 주님 사랑인 줄 알았고, 또한 자신의 영광인 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이 일을 하다가 옥에 갇히고 자유를 잃어버렸으니, 과연 이것은 잘 한 일이요, 잘된 일이요, 기쁜 일이었습니다.
4. 그런데 그 위에 더 잘된 일이 또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옥에 갇히면 자유를 잃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옥에 갇히고 보니 비록 자유는 잃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은 겪었지만, 그 감옥 속에서도 여전히 복음이 전파되더라는 것입니다.
함께 갇혀 있는 자들은 물론이고, 간수들이나, 옥을 지키는 군인들에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바울은 정말 기뻐하였고, 이런 결과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죄수의 몸이 되고 난 후에, 두 명의 총독, 즉 벨릭스와 베스도와 그의 아내들에게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전파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얻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로마 사회의 상류층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빠르게 침투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온 시위대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복음을 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2절에서 증거하기를,「복음의 진보가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을 소유한 자의 생각이요 태도인 것입니다.
콘스탄틴노플의 대 설교가였던 크리소스톰은 백해로 유배를 떠날 때,
「내가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가? 아니다!
내가 사는 땅에서 쫓겨나서 귀양살이 할 것인가? 아니다!
땅과 거기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 아니던가?
나는 소유를 잃어버렸는가? 아니다!
내가 세상에 올 때 가지고 온 것이 없으니 세상을 떠날 때도 가지고 갈 것이 없지 아니한가? 저들이 나를 쫓아낸다면 나는 엘리야 같이 될 것이고, 저들이 나를 구덩이에 던진다면 나는 예레미야같이 될 것이고, 저들이 나를 바다에 던진다면 나는 요나와 같이 될 것이고, 저들이 나를 사자굴에 던진다면 나는 다니엘같이 될 것이요, 저들이 나를 돌로 친다면 나는 스데반같이 될 것이고, 나의 목을 벤다면 나는 세례요한이 될 것이고, 나를 때리기 시작한다면 나는 바울같이 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5. 예수 십자가의 복음은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지 상관이 없이, 그 생각을 바꾸도록 만들어 줍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불평하던 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낙심하는 사람을 소망의 사람으로, 소극적인 사람을 적극적인 사람으로 만듭니다.
지금 나는 무엇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만일 세상 욕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 욕심을 따라 더럽고 추악하고 못된 생각에 사로잡힐 것이고, 결국에는 죄가 주는 고통에 시달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뜻을 바꾸어 주시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의의 열매와 영광을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6. 그렇다면 바울의 이러한 긍정적이고 건강한 이 생각이 어디서 왔다고 생각합니까?
그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았고, 지금도 소유하고 있는 이 십자가의 복음에서 온 것입니다.
곧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 데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이러한 생각이, 바울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바울의 주위에 있는, 복음을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복음과 더불어 함께 나누게 된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함께 복음을 위해 동역하며 수고하던 더 많은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까지 이 영향이 미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14절에 증거하기를,「형제 중 다수가 나의 메임을 인하여」,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아니하고, 불평도 원망도 없이. 도리어「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17절에 보면, 어떤 사람들은 순전치 못한 마음을 가지고 바울을 미워하고 시기함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14절의 이 사람들은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다가 옥에 갇힌 바울을 도리어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가 못다한 일들을 자신들이 대신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바울의 투옥이 다른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거나, 전도 활동에 지장을 준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 고무되었고, 더 자극을 받음으로, 두려움이 없이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7. 우리가 예수 믿고 잘되고 못되는 것은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되고 못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 이전에 우리의 생각의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아직도 나는 복음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왜? 복음은 그것을 받은 사람의 생각과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바꾸는 위대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 히11장의 믿음의 영웅들은 처음부터 위대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전도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그 마음과 생각에 성령과 더불어 복음이 부음바 되고, 복음을 위해 살다보니,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위대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서 복음의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새롭게하시는 것입니다.
14절에 나타나는 것처럼, 복음을 소유하면 겁쟁이들도 담대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정적이고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도 긍정적으로 변화되고 올바른 생각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8. 마지막으로 바울은 18절에서「무슨 방도로 하던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대적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시기와 질투심을 가지고 복음을 전한다 하여도 그것이 결국에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너무 기쁘다는 것입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아예 미쳐버린 사람처럼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는 누구에게 임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일에 긍정적이고, 복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의 경우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죄수의 몸이 되어도, 옥에 갇혀 있어도 전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지장을 받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더 잘된 일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18절에「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복음은,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결국 하남님의 놀라운 축복의 세계까지 인도하는 능력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바울도 고백하기를,「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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