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7.23.복음에 합당한 삶(빌립보서 1:27-30)

[성경본문] 빌립보서1:27-30개역개정

27.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복음에 합당한 삶(빌립보서 1:27-30/2008.7.23)


1. 요즘 뉴스를 보면, 비행기 안에서 발가벗고 난동을 부리는 사람 때문에 비행기가 회항을 했다든가, 승객끼리 싸워서 회항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사건들은, 어제도 동경에서 33살의 회사원이 서점에서 칼부림을 해서 한 사람이 죽고, 다른 한 사람이 다쳤는데, 범행의 동기가 하는 일이 제대로 안되고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고민을 받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동경 아끼하바라의 살인사건도 비슷한 동기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궁금한 것은 사람들이 왜 자기 개인의 문제를 가지고 사회 전체에 분풀이를, 그것도 극단적인 방법으로 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사회를 포함한 현대 사회가 그 구성원들인 일반 시민들에게 시민적 정신을 고양시키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법치 사회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과 규범을 망각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만 찾는 시민들의 잘못된 의식이 이런 비극적 현상을 낳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은 일본 사람들도 자동차나 보행자가 다 함께 도시의 선과 신호를 지키지 않고 자동차는 자동차대로, 자전거며 보행자며 제 마음대로 활보하는 것을 보면서 도덕과 질서가 무너진 현대사회에 대한 우려를 넘어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은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현대교회도 이 사회의 우려할만한 현상과는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고 말씀하는데, 과연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무엇입니까?
교회에 대한 개념은 물론이고 자신의 신앙생활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며 쉽게 쉽게 신앙생활 하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은 더욱 우려할 만한 일입니다.

2. 헬라 사회에서의 국가라는 개념은 사람이 사는 장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개개인으로 하여금 최고의 선에 이르게 할 목적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의미했었습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립 상태가 아니라 상호 협력하는 가운데, 자신의 재능과 잠재력을 향상 시키고, 그 가진 능력을 극대화 시켜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시민으로 사는 것은, 권리와 특권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의무와 책임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입각하여 생각해 볼 때, 그리스도인으로 산 다는 것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곧 이 세상 국가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지고 살면서, 동시에 하늘의 영원한 예루살렘의 시민으로서 살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동시에 부여된 것입니다.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시민은 그 나라와 그 민족을 위해 살아야 하듯이, 하나님의 백성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왜내면 교회는 천국을 보여주는 이 자상에서는 유일한 공동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합당하게 산다는 것은, 교인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믿음 안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이 믿음의 공동체를 위하는 것입니까?

3. 바울은 여기에 대한 대답으로 본문에서 「일심으로」,「한뜻으로」라고 함으로, 한 마음 한뜻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마음 한 뜻이 되려면, 먼저 공동체인 교회로 모여야 합니다.함께 모여서 목소리 높여 찬양하며, 합심하여 기도하며, 은혜로운 말씀의 떡을 떼면서 서로가 서로를 섬기야 합니다.
사회생활도 혼자 살 수 없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27절에서 협력하라고 했습니다.
일본 복음화나 세계선교는 결코 혼자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하여 하나가 될 때 가능한 일입니다.
특히 우리에게는 영적인 대적이 많습니다.
군대라는 단어처럼, 공동체라는 말 자체가 대적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적을 어찌 혼자의 힘으로는 이길 수 있겠습니까?
서로가 협력해야 하며, 이 하나로 된 힘으로 큰일을 하고, 대적도 물리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협력이라는 대전제를 위해 무조건 손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흔들리는 사람과 손을 잡으면 나도 흔들리기 마련이고, 범죄자와 손을 잡으면 나도 같은 죄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손을 잡고 협력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믿음의 반석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협력이란 말처럼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되어야 하고, 내 스스로가 굳게 서서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4. 또한 28절에 보니, 복음에 합당한 자의 삶이란 다름 아닌 대적하는 자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군대가 아무리 숫자가 많고 화력이 월등하여도, 일단 병사들의 마음에 두려움이 임하면 전열은 흩어지고, 군사들은 대열에서 이탈하여 그 싸움은 완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사용하는 최대의 무기 중에 하나는 바로 이 두려움입니다.
교회가 받은바 소명을 완수하려고 하면, 반드시 마귀는 그 공동체 속에 두려움을 심어 놓고, 이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걸림돌이 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전도여행 중에 수많은 대적과 위험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는 받은바 소명을 완수하기 까지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마귀는 유대인들을 동원하여 바울을 향하여 수많은 협박과 테러를 가했고, 총독 앞에도 끌려갔고, 광풍과 독사를 통하여 그의 생명을 앗아가려고 했고,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는 고통 속에서 두려움과 좌절을 맛보게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두려움 대신에 확신에 넘쳤고, 낙심 대신에 기쁨으로 충만하였습니다.
왜?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과 확신이 그 안에 넘쳤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고 하시면서, 요16:33절에서도「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셨습니다.

5. 그런데 28절을 보면,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멸망과 구원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즉, 대적자로 인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진 것은, 두려움에 떠는 그 사람이 멸망의 자식이기 때문이요, 두려움이 아니라 확신과 담대함으로 대적을 향해 나가 싸우는 것은 구원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불신앙의 특징은 두려움이지만, 믿음의 특징은 반대로 담대함입니다.
어떤 겁쟁이라도 믿어 구원받으면 확신에 넘치고, 이 구원받은 자의 확신이 우리에게 기쁨과 감사와 평안을 가져다주는 줄 믿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두려움이 임할 지라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우리에게는 확신과 능력이 넘칠 것입니다.

6. 마지막으로 29절에 기록된 대로 복음에 합당한 자의 삶은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기를 기뻐하는 삶입니다.
구속의 역사란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전하면서,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옛 선지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까지 변함없이 예외 없이 내려온 것입니다.
그들은 두려움 없이 이 믿음과 이 복음을 위하여 기꺼이 고난의 대가를 치렀습니다.
그러므로「믿는다」는 것은 곧「고난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위하여!!
과연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며, 어떤 경우에도 그분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어떻게 그분을 의지하였으며, 어떤 방법으로 그를 따르고 있었습니까?
그 답은 오직 「고난받음」으로 입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를 통하여 박해자들은 이 그리스도를 향한 지지와 확신을 버리도록 말로 다할 수 없는 박해와 고통을 우리 믿음의 선배들에게 주었지만, 그들은 이 고난과 박해를 통하여 오히려 주님을 지지하였고, 그 박해와 고난이 도리어 그들에게 주님의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는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도 고백하기를,「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고 하였습니다.

7. 우리는 세상에서 의롭고 성실한 시민이 되어야하지만,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더더욱 거룩하고 의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복음에 합당한 자의 삶을 사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박해와 고난과 어려움 때문에 두려워하고 뒤로 물러난다면 이는 구원받은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이 복음에 합당한 자의 삶을 사는 것은, 곧 이 길이 주님 가셨던 길이요, 믿음의 선배들이 달려간 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 하나 되는데 힘쓰는 것이요, 무슨 일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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