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7.2빌립보 교인들의 행복(빌립보서 1:1-11)
[성경본문] 빌립보서1:1-11개역개정
1.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빌립보 교인들의 행복(빌립보서 1:1-11/2008.7.2)
1. 바울은 빌립보 편지 서두에서「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편지를 보낼 때, 빌립보가 아니라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 보냈다는 의미입니다.
그 당시에 빌립보에 사는 사람도 아니고, 그 당시의 빌립보의 교인들만이 아니고, 모든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그리스도 예수 안에」있는 자들에게 보냈기 때문에, 이 편지는 오늘 우리도 받아 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여 모든 만민에게 그분의 구원과 생명력을 나타내는 것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읽을 때, 빌립보 교인들과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문안하고 있는 바울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남들의 뒤만 따라가면서 믿지 말고, 내가 누구며, 지금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손자병법에도 적을 이기려면 적을 알아야 하듯이, 나를 이기려면 먼저 나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자기 자신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돌발적 행동을 일으키기도 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쉽게 속아 넘어가기도 하고,
방황하는 사람들과 함께 멸망의 길을 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2. 고린도 교회의 분쟁의 원인 중에 하나는 그들이 서로 나뉘어 나는 바울파다, 나는 아볼로파, 나는 게바파 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모르는 것 하나가 있으니 그것은, 믿는 자에게는 예외 없이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6절을 보면,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서 어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신 분이 계신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그 분이 누구입니까?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면 왜 그 분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시지 아니하고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이미 그 분을 우리 안에 영접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지금 우리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은 우리 안에 계신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결국 기독자의 정체성은 예수님과 내가 하나 됨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가 늘 불행한 사람과 함께 한다면, 그 불행이 내게도 찾아오고,
외로운 사람과 함께 하게 되면, 내게도 그 외로움이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가 행복한 사람과 늘 함께 한다면, 내게도 그 행복이 넘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늘 예수님 안에 있으며, 예수님은 늘 내안에 계신다면, 우리는 그 분이 자신의 소원을 따라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이루어 가시는 줄 믿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믿는 자의 행복입니다.
3.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교회가 내 뜻대로 되기를 많이 몸부림쳤습니다. 마치 내가 교회의 주인인 것 처럼.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보니, 아! 이것은 내가 하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모든 일들을 주님께 맡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처럼 주님께 맡긴다는 것이, 내가 혼자서 몸부림치던 세월보다 더 어려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맡긴다는 것처럼 쉽고 간단한 것은 없는데, 실제로 해 보니 너무 어려웠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믿음이 없이는 어떤 작은 것도 절대로 맡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나에게 많은 일들을 통하여 먼저 믿음을 키워 주셨습니다.
이 믿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라났고, 믿음이 자란 만큼 주님께 더 많은 것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사실 우리 인생이란 존재가 얼마나 부족한 것이 많습니까? 그런데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을 때 하나님이 보여 주셨습니다.
애급에서 죽음의 재앙이 지나갈 때에, 그곳의 모든 장자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죽음의 재앙이 지나가면서 죽일 사람과 죽이지 않을 사람을 무엇으로 판단했습니까?
문설주에 양의 피를 보고, 피 없는 집에는 죽음의 재앙이 들어갔고, 피 있는 집은 넘어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사건을 유월절이라 부릅니다.
양의 피를 바르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애급인이던지, 히브리인이던지 상관없이 넘어갔습니다.
그 안에 모인 사람들이 몇 명냐? 어떤 사람이 있느냐를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문설주에 바른 피를 보고 넘어갔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입니다.
내가 잘났느냐 못났느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것을 보고, 모든 재앙과 고통이 물러가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도「빌립보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예수 안에서 사는 모든 성도」에게「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오는)은혜와 평강」을 빌고 있는 것입니다.
4. 본문 5절에 보면,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감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 했다는 이 말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바울의 매임과 복음을 변호하는 일과 주님의 몸된 교회를 굳게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이 어떤 도덕적인 잘못 때문에 갇히고 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 전하는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고, 고난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빌립보 교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변호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지도자의 위치는 매우 어려운 자리입니다. 외롭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사람들은 지도자를 믿고 따라 오지만, 지도자는 다른 사람들을 가장 바르고 복된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순간순간 결단을 해야 하고, 가장 최선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선택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의 공격과 비난도 감수해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쇠고기 문제 때문에 일시적으로 코너에 몰렸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지하고 격려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의 형편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변호하고, 더 나아가서는 바울의 복음 전하는 그 일에 동참하여 자신을 희생하기를 기뻐하였고, 이 일로 바울은 위로와 큰 용기를 얻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몸바쳐 사역하는 이 복음을 위하여 빌립보 교인들이 팔을 걷고 나선 것입니다.
아니, 바울이 지금 갇혀 있으니 우리가 바울의 분량까지 더 많이 수고해야겠다는 각오로 더욱 열심을 내었습니다.
5.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은, 사람들의 숫자나 재정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의 노고를 생각하고 그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고난 받기를 기쁨으로 자청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도 이 복음에 함께 참여 했다는 자부심이,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인들이「첫날부터 지금까지」라고 했으니 이는 대단한 충성심과 열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교회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충성된 성도들로 인하여 이 교회가 든든히 서게 됨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물질의 축복을 받는 것도 감사할 일이고, 건강한 것도 감사할 일이고, 어려운 중에도 기쁨과 감사로 살아가는 것은 더욱 더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더 큰 감사는,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인정함을 받아서 복음의 일꾼이 된 것이 감사하고, 받은바 축복과 건강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감사에 감사를 더할 일인 줄 믿습니다.
6. 그렇다면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과 지혜 있는 성도들이 힘써야 할 또 다른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10절에「너희가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계속해서 11절에「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갈수록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데, 믿음을 지키며, 이 믿음이 파선되지 않도록 힘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적인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무기가 필요합니다.
첫째로, 선한 것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 분간이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전부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무익한 것에 자기 인생을 소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의 사람,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주님이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지혜를 주십니다.
그 지혜를 말씀과 기도 중에 깨닫게 하시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바른 길로 가도록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 누린 사람이지만, 그러나 선한 것을 분별할 줄 몰라서 결국에는 하나님께 버림 받고 말았습니다.
왜 그토록 훌륭한 사람이 이렇게 불쌍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까?
욕심에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믿음에서 파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나친 물질적인 욕심과 영적인 욕심들이 우리를 잘못된 길로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선한 것을 분별한다는 말은, 선과악을 분간한다는 말이 아니라,「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쫓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막혔으면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를 구해야 합니라.
성령님은 반드시 우리를 복되고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7. 또한 진실하여 허물이 없어야 합니다.
여기서 허물이 없다는 이 말은,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넘어지도록 어떤 장애물을 놓지 않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안팎의 사람들에게 불쾌감이나 고통을 주는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윤리, 도덕적인 문제에도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나 언어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면, 전도의 길이 막히고, 하나님 영광을 가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윤리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윤리적인 문제, 즉 말과 행동이 잘못되었을 때에는 남의 구원의 길을 방해하고 막아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당하셨으나 죄와 흠이 없으셨습니다.
우리도 그 분의 형상을 본 받고, 그 분이 보이신 본을 따라 행할 때, 더 많은 사람들을 얻게 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허물이 없이 진실한 마음과 태도를 가지면 많은 열매를 얻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적과 소원을 이루려고 열심을 내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위해 살고, 또 이 복음으로 인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며 사는 이것이 빌립보 교인들만의 행복이 아니라 우리의 행복이 되기를 원합니다.
빌립보 교인들을 구원하시고, 구원받은 그들이 복음을 위해 살도록 은혜와 능력을 베푸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은혜와 능력을 주사 더 많은 일들을 감당하여 하나님께 큰 영광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