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4.27.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린도전서 12:28-31)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2:28-31개역개정

28.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31.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린도전서 12:28-31/2008.4.27.오전)


1. 교회는 주님의 몸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이루어 가는 방주 같은 곳입니다.
그러므로 주인 되신 주님의 계획을 따라 교회가 움직이고, 진행하며, 또한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교회에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우리가 능력이라 하면 주로 신비적이거나 기적과 같은 특별한 것을 생각하기 쉽지만, 그러나 교회를 향한 주님의 부어주시는 능력은 소리도 없이, 소문도 없이 의외의 방법과 장소에 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떤 방법으로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이러한 능력을 교회에 부어 주시고 계십니까?
먼저 신실하고 충성된 일꾼들을 세우셔서 그들을 중심으로 부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보면, 사도란, 당시의 순회 전도자로 각 교회를 개척하거나, 이미 개척한 교회를 시무하던 자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선지자는, 말씀을 강론하는 자로, 주로 교회의 성도들을 교육시키는 자들입니다.
또한 교사는, 평신도 지도자들로, 경건한 신앙을 가진 자로 주로 신앙의 연수가 깊은 사람들로, 남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은사는 자신의 노력이나 소원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고 세우시는 직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편지를 기록한 바울의 경우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부활하신 주님께 사로잡혀 사도가 되었습니다.

2. 그 외에도 보충하는 여러 은사들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서로 돕는 은사로, 능력, 병고침, 서로 도움, 다스림, 각종방언과 통역하는 은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교회 구성원인 모든 성도들에게는 이미 주께로 부터 받은 은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받은 은사는 지위의 높고 낮음이 없이 다 귀하고 요긴한 것들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은사는 집중적으로 주시지 않고, 서로 협력하라고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은사를 주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7절에 보니,「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고, 25절에「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계속해서 27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 같이,「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 되게 함이라 고 했습니다.
이로 보건대 교회란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예배하고 교제하는 것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닙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인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서로 존경하고, 그야말로 포도나무의 비유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에서 일사불란하게 하나가 될 때, 참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은사가 결코 한 두 사람들에게 집중되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주어지는 이유는, 받은 은사가 자랑이 되지 않도록 하며, 그 어떤 은사라 할지라도 또 다른 은사의 도움을 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은사는 받은 그 한 사람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 전체를 유익하게 하며,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각 지체로서 서로 돕고 보살피고 존경할 때, 주님의 몸된 교회가 온전해 질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3.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며, 이 삼위의 역사가 곧 한 하나님의 역사이듯이, 교회는 각종 은사가 모여서 하나의 훌륭한 교회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군대에 육군, 해군, 공군의 3사가 있고, 그 안에 각각의 기능을 가진 부대들과,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은 부대들이 있으며, 그 밑에 또한 세부적인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쟁이나 유사시에는 이 부대들이 긴밀하게 상호지원을 함으로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받은 은사로 2가지의 목적을 수행합니다.
그것은 첫째로, 영적인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이 오실 때까지 교회, 즉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믿음 안에서 보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영적인 은사들을 서로 연결하고, 연결된 은사들이 제 기능과 목적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있는데, 곧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각 사람이 받은 은사들이 잘 활용되어 주님의 몸된 교회가 아름답게 유지되도록 마치 전쟁터의 전군을 지휘하는 최고의 사령관처럼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은사는, 자기 능력이나 지혜나 경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4. 우리가 받은 은사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실은 31절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받은 은사에 만족하고 있는데, 본문 31절에 보니,「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했고, 더 중요한 사실은「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아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우리 몸의 사용하지 않는 기능들이 쇠퇴하는 것처럼, 은사들도 사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설교의 경우도 계속 설교의 사역을 이어가면서, 그 과정에서 실수와 실패와 어려움을 겪으며, 자신의 설교에 부족함과 한계점을 느낄 때마다, 또 연구하고 개발하면서 꾸준히 이 사역에 임할 때 설교는 점점 새로워지고 달라집니다.
남을 섬기는 은사를 받았으면, 섬겨 보지 않으면 섬김의 은사가 무엇이며, 이 은사를 통하여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이 은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체험할 길이 없습니다.
설교의 은사처럼 섬김의 은사도 섬겨가면서 느끼고 배우고 체험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보다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섬기게 되며, 점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더욱 크게, 그리고 더욱 위대하게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결코 주어진 은사 자체가 위대하고 큰 것이 아니라, 받은 은사를 어디에서 어떻게 사용하고, 받은 은사에 대한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내게 주어진 은사가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5. 사도바울은 빌2:12절에서,「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였고, 롬13:11절에도「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다」고 함으로, 우리의 삶이 구원의 과정에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된 믿음의 사람들의 정체성이란, 이미 구원의 보증은 받았지만, 시기적으로는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는 아직 완성된 구원이 임하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도 마찬가지다. 어떤 은사를 받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받은 은사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며, 꾸준히 개발하며, 이 은사를 통하여 교회에 덕을 끼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도 초대교회 시대를 원시교회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주님의 몸된 교회라는 원형은 생겼지만, 기능적으로는 아직 불완전한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은사도 처음 받았을 때에는 방언의 은사처럼 서툴기만 하고, 그러잖아도 못 알아듣는 말이 더욱 이상하게 들리지만, 한 두 시간씩 계속해서 기도의 시간을 늘려가면서 기도에 정진할 때, 방언이 천사의 노래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더욱 큰 은사」란 받은 은사의 완성도를 말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이 모든 은사의 바탕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물론이고 교회 안에서조차도 사람들은 「제일」혹은,「최고」를 지향하지만, 아무리 크고 위대해 보이는 최고의 은사를 받았다 하여도, 이 은사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개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며, 주님의 몸된 교회, 믿음의 공동체를 사랑하지 않고는 은사가 은사로서의 바른 기능을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6.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적은사에 흐름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2장 전체를 통해서 보면, 먼저 성령님이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고, 그 다음에 각 자가 이 받은 은사를 사용함으로 영적인 성장을 가져오고, 그 다음에는 본문의 말씀대로 더 큰 은사를 사모함으로, 이 은사를 받은 사람의 마지막은 받은 은사가 그냥 은사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성품의 은사에 이른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받은 은사가 내 안에서 나의 새로운 인격이 되고, 바깥으로는 나의 새로운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을 본문 31절에서,「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는 말씀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제일 좋은」것은, 최상급의 용어로 지극히 큰 것, 혹은 모든 것을 능가하고, 그 어떤 것 보다 탁월한 것을 나타내는 단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은사 받은 성도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더욱 큰 은사를 사모」해야 하며, 이렇게 사모하는 자에게는 더 이상의 것이 없을 정도의 좋은 것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은사의 측면에서 볼 때, 우리 교회를 포함한 이 현대교회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은사는 있으나 사랑이 결핍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식주의 결핍으로 굶주리고 헐벗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하면 흔히,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입을 것을 주거나, 몇 천엔, 몇 만엔을 도와 주는 것쯤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아니라도 세상 사람들이나 다른 종교들이 우리 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우리 성도들은 이런 세상적인 가치관에 머물러 있는 도덕적인 차원이 아니라, 더 높고 더 고상하고 더 위대한 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더 높이 더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그 육체 안에 있는 한 영혼 한 영혼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사랑이ㅏㅂ니다.
31절은 더 큰 은사를 사모하는 자들에게 이런 사랑을 부어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7. 인간은 한계성과 제한성에 갇혀 있는 존재인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육신을 입으시니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 분도 연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과 사단의 유혹에 시달리기도 하셨습니다.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 때문에 많이 괴로워하셨고, 눈물을 흘리셨고, 많이 고통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을 가리켜「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림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사53:3)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도 이 분을 가리켜, 그는「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주님은 교회 안의 각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 잘 아시며 우리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얼마나 어렵다 하는 것을 잘 아시기 때문에 각종 은사를 내려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은사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우리에게 더 큰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시며, 은사를 사용하면 할수록 주님의 몸된 교회는 든든히 서 갈 것이요, 이 은사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우리는 신령한 사람, 복된 사람, 하늘 나라의 상급을 누릴 것입니다.

8. 모든 은사의 중심에는 반드시 예수님의 사랑에 있으며, 은사의 목적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함에 있는 것입니다.
날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오늘 우리 가운데서 변함 없이 재현되도록 우리 각자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받은 은사로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의 아름다움과 능력은 각양 여러 가지의 은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중심으로 하나됨에 있습니다.
각 자가 받은 은사에는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영혼의 구원과 영적 성장을 위해 사랑으로 섬길 때, 우리교회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 제일 능력 있는 교회, 주님께 가장 많은 영광을 돌리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구원을 날마다 이루어 나가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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