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17.덕을 세우는 신앙(고린도전서10:23-33)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0:23-33개역개정
23.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25.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27.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8.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29.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30.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31.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덕을 세우는 신앙(고린도전서10:23-33/2008.2.17.오전)
1. 좌파정권으로 불리던 지난 10년 간의 한국 사회에서 특이할만한 변화 중에 하나가 바로 기독교에 대한 반기독교 정서인, 소위 안티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특히 작년의 아프가니스탄의 단기선교팀의 피랍사건을 계기로 한국사회에서는 노골적으로 반기독교 운동 세력들이 고개를 들고 증오심을 가지고 교회를 비판,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가 아니라 개독교라고 부르면서 특히 대형교회 목사들을 싸잡아 비난해왔습니다.
2007년도 8월7일자 부산일보는 종교별 영향력에 관한 조사를 통하여 나타난 결과를 발표하기를, 대한민국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큰 종교는 천주교와 불교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개신교는 더 이상 기대할만한 종교집단이 아니라는 결론입니다.
사실 돌이켜 보면, 한국 기독교 120년의 역사에서 선교초기에는 경제, 사회, 문화 전반적인 면에서 불신자들 사이에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와 건국초기, 전쟁을 거치면서 기독교의 애국 및 사회봉사 활동은 매우 역동적이었지만,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역할이 힘을 잃은 것이 사실입니다.
죤 칼빈은 말하기를, 개혁주의 교회의 목사들에게 있어서 성도들에게 참된 경건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직임이라고 강조하면서, 참된 경건이란, 성도가 말씀을 받고 전도의 삶을 살며, 삶의 현장에서 구제와 봉사를 행하는 것이요, 이것이 곧 성도가 세상에서 하나님께 받은 바 소명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적으로 칼빈은 1545년에 제네바로 피신해 온 개신교도들을 위해 「브루스 프랑세즈」라는 국제 구호단체를 설립하였고, 이 단체는 상당히 발전된 복지기관으로 성장했습니다.
2.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인 33절에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모든 일에 모든 사람」그리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라 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이 세상 사람들의 편의를 제공해주거나 그들을 구제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라, 오직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교회의 존재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잘 들여다보면, 이것이 기독자로서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성도가 교회와 세상에서 덕을 세우는, 곧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세상의 소금이요 빛으로서의 삶을 살라는 말씀의 연장선에서 오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의 존재입니다. 이 지구와 세상의 만물과 우주를 해석하는데도 내가 존재함으로 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없는 지구는 그 존재의 가치가 없다고 까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으면 제일 먼저 사람의 생각이 변하고, 마침내 그 사람의 본성이 변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자기 사랑의 중심에서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면서 그런 일에 보람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3.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그리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본문을 보면,「유익하다」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헬라어로「쉼페르」로 함께 한다는 의미의 「쉼」과 가져온다는 의미의「페르」로 구성된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유익하다」는 말은 곧 많은 사람들이「함께 가져갈 수 있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덕을 세운다」는 단어도「오이코도메오」로 이것은 집을 세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신자는 信,不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이방인 같은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세워나가는데 책임 있는 존재라는 사실과, 더 나아가서는 이런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있어서 능력 있는 리더가 되어야 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사카중앙교회가 속해 있는 이 세상,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고,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그들 가운데서 이루어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4. 첫째로, 24절에 기록된 대로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말고 남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사실 신자가 세상에서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신자라는 존재가 말씀과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인의 정체성과 더불어 한편으로는 사회인으로서 세상의 가치와 질서를 무시할 수 없는 경제인의 모습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정체성으로 인하여 적지 않은 성도들이 혼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이란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도 타인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절제할 뿐 아니라,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주는 영원히 변하지 아니하는 사랑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이러한 사랑에 기초한 우리의 삶을 생각하면서 본문을 들여다보면서 느끼는 것은, 먹고 마시는 음식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세상의 모든 음식은 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만드시고 준비해 주신 것들이니, 내가 무엇을 먹고 마시든지 그 음식 자체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음식이 그 어떤 경로를 거쳐서 왔던지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깨끗한 양식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을만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얼마든지 많이 있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이 있다는 사람들의 먹고 마시는 모습을 보고 실망하고 시험에 빠질 수 있으며, 이 사람들의 강한 믿음 때문에 도리어 실족하여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덕을 세우는 신앙이란 다름 아닌, 자신보다 연약한 사람들의 믿음과 양심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고 절제하는 모습을 가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불신자들 앞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의 말한 바「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5. 두 번째로, 덕을 세우는 신자의 삶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과 계획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그 분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어 나가는데 선한 도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주저함 없이 선포하기를「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이 무엇이며, 이 덕을 어떻게 나타내는 것입니까?
죄인을 향하여 그 은혜가 풍성하시고 노하시기를 더디 하시며, 모든 사람이 구원 얻어 영생을 얻도록 자신의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삶을 통하여 드러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나타내지 아니하면 어찌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의 삶을 통하여 나타내지 아니하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신 줄 알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삶을 통하여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세상에 나타낼 때에,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행하는 우리에게는 축복이요, 세상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구원이 임하는 줄 믿습니다.
6. 셋째로, 덕을 세우는 신자의 삶이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온 세상을 구원하는데 두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한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으며, 주님의 몸된 교회가 이 지상에서 소멸되지 아니하고 2천 여년 동안 이어져 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줄 믿습니다.
문제는 누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그 강퍅한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습니까?
나를 내려놓고 남의 유익과 더불어 교회라는 공동체의 덕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28절에 보면,「누가 너희에게 이것을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혹 믿음이 아직 연약한 사람이나, 불신자들 중에서 내 앞에 놓여진 음식이 우상에게 올려 제사했던 제물이라고 알려 주었을 때에, 그 사람들이 왜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들 나름대로 예수 믿는 사람은 먹어서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나 선입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런 형편에 있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생각이 바르고 정확하기 때문에 내가 그들의 말을 듣고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혹은 그들의 믿음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내 자신이 절제하는 것입니다.
7. 어디서나 마찬가지입니다 마는, 일본에서 사업 하나 하는 것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영주권 하나 얻는 것도 그냥 얻어지는 것 없습니다.
그런데 이전에는 그렇게 크게 보이던 것들도 막상 내 손에 넣고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것 얻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또 많은 희생을 치렀는데도,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하물며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얻고 구원하는 일인데 누워서 떡 먹듯이 될 것 같습니까?
내가 참고, 내가 희생하고, 내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얻기 어려운 것이 사람의 생명이요 영혼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이 한 생명을 얻고자 하늘의 영광도 버리셨고, 33년의 생애를 고난 가운데 보내셨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 주셨습니다.
주님도 그렇게 희생하셨는데 어찌 우리는 그렇게 쉽사리 얻으려 합니까?
요일3:14절에「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 알거니와」했습니다.
덕을 세우는 것은 능력이나 재주나 그 어떤 방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값없이 주고 베푸는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에 교회는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향하여 덕을 세우는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굳센 믿음을 가진 신자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한 영혼을 구원하고자 참고 인내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신자는 많지 않습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이라도 교회를 향해 칭찬할 수 있도록 해야 구원할 기회도 오는 것입니다.
고전13:13절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랑으로 덕을 세우며 구원을 이루어 가는 우리 모두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