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10.코이노니아(고전10:14-22)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0:14-22개역개정
14.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15.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16.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17.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18.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19.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20.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21.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22.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코이노니아(고전10:14-22/2008.2.10.오전)
1. 지금 동경에서 열리고 있는 G7은 몇 번의 석유위기에 놀란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서방 6개국이 1975년에 처음으로 모여 세계경제의 재건을 논의한 것으로 출발하여 이듬해에는 캐나다, 최근에는 러시아가 참가하여 G8이 된 국제기구를 말합니다.
여기에는 G8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1년에 몇 번씩 모여 세계경제를 조정하고 협조를 구하며, 1년에 한번씩은 각국의 정상인 대통령이나 총리들이 모여 정상회담도 하는데, 이번에는 중국, 인도네시아와 함께 한국도 옵서버로 초청이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계 초일류 국가, 선진국들도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협력해서 세계의 경제를 회복하고 바로잡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그 누구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회의 기초단위로 가족관계가 있어야 하고, 가족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그 사회가 국가와 민족과 교회와 여러 크고 작은 단체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개인에서부터 시작해서 국가간의 관계에서도 긴밀한 상부상조가 필요합니다.
바로 여기서 「코이노니아」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입니다.
이「코이노니아」는 원래, 헬라세계에서는 조화와 선한 뜻이 다스리는 이상적인 사회를 의미했습니다.
여기에는 상호간에 교통하고, 친밀한 연합을 이루고, 상호 공유하는 것과, 참여적인 관계 등을 나타내는데, 이 단어를 신약성경에서는 성도가 그리스도와의 연합된 관계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었고, 또한 성도와 성도간의 깊은 공유와 사귐을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2. 그러나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코이노니아」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본문 19-20절에 나오는 내용으로 우상과의 교제가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는 우상숭배의 도시였고, 이곳에 사는 기독자들은 늘 우상숭배의 위험에 노출되었고, 피하기 어려운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밝히기를 우상숭배는 다름이 아닌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20절에「대저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 함으로, 우상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그 배후에는 사단이 있고 귀신이 있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우상과 조상 제사에는 사단이 역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밖에도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각종 탐심과 세속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것들도 일종의 우상숭배로 보았으며, 성도는 이러한 우상숭배를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행위요,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배후에 역사하는 사단에게 사로잡혀, 자신을 죄의 종으로 내어주는 것이요, 교회를 오염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시고 질투하시는 것은 다른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 중심, 말씀중심, 교회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바로 하면, 사단이 손도 못 대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이 삶에 넘치지만, 각종 탐심과 우상숭배에 빠지면, 마귀에게는 종처럼 시달리고, 하나님께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로 저주받은 자들-
3. 본문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 하나는, 주님은 우리가 우상이나 귀신이 아닌 주님과의 교제를 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14-17)
본문 16절에서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라는 말씀에서 「참예한다」는 말이 바로 헬라어로「코이노니아」입니다.
이것은 이미 서두에서 밝혔지만 성도의 교제, 친교 등을 나누는 것으로,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성찬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와 더불어 거룩하고 신령한 교제를 나누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성찬을 통하여 두 가지 분명한 사실을 체험하게 되는데, 첫째는 성만찬을 통하여 주어지는 떡과 포도주를 통하여,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그분의 고난과 인격과 삶을 기념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성찬에 참여하는 믿음의 형제들과의 하나되는 동맹을 이루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함으로 믿음의 아름답고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어가면서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고전1:9「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함으로 주님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으며, 또한 행2:46-47「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고 함으로 믿음으로 함께 형제된 사랑하는 성도간의 교제를 말하고 있다.
특별히 성찬에 관하여서는 주님이 직접 제정하시고 이것을 지켜 기념하라고 친히 명령하신 거룩한 예식이기 때문에, 이것을 거룩함으로 지키며 이 예식을 통하여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믿음의 형제간의 우애를 더욱 돈독히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찬식 이외에도 우리에게는 거룩한 「코이노니아」가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계속 진행되고 있으니, 그것은 곧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모든 예배를 통해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남으로 점진적인 성화를 이루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개인적인 말씀과 묵상의 생활입니다.
4. 이 죄 많은 세상에서 살 동안에 성도의 정체성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도로 불리는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이 다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적어도 이 싸움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싸워 이겨야 하는 당위성이 주어졌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이 영적 싸움의 승리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신령한 자의 삶을 사는 것으로 곧 우리의 거룩함을 이루고 그것을 주님 오실 때까지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 영적 싸움의 승리를 통하여 마지막까지 우리의 믿음을 지키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무엇입니까? 영적인 싸움에서 보면, 세상은 우리의 믿음을 파괴하고 파선케 하여, 우리가 원하는 소원의 항구인 하늘나라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세력입니다.
하루를 살면서 끊임없이 유혹과 시험이 우리를 엄습해 옵니다.
그것이 경제적인 문제로, 때로는 성적인 유혹으로, 때로는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삶의 여러 모양의 문제로 닥아오기도 하며, 우리의 믿음을 파선시키려는 권력자의 모습으로도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5. 「죽으면 죽으리라」는 저자인 안이숙여사는 20살에 일본의 신사참배 반대로 온갖 고문과 협박과 회유가 있었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녀의 신앙적 투쟁을 담은 노래가 있습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입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험한 이길 가고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내미사 내 손 잡아 주소서」
「좁은 이길 진리의 길 주님 가신 그 옛길 힘이 들고 어려워도 찬송하며 갑니다
성령이여 그 음성을 항상 들려주소서 내 마음은 정했어요 변치 말게 하소서」
그녀의 고백-나는 주님께 절했기에 일본순사에게 할 것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기에 더 고백할 사랑이 없습니다.
나는 주님께 신앙의 정조를 드렸기에 일본신사에 바칠 정조가 없습니다.
일제 36년간과 6.25동란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버렸지만, 그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믿음을 지켰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오늘도 주님의 몸된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줄 믿습니다.
이 믿음을 지킨 다수의 사람들과 소수의 순교자들이야말로 주님과 더불어 나누었던 거룩한 영적「코이노니아」를 빛나게 한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주님과 교제하고 주님과 더불어 사는 이 일「코이노니아」에 자기의 생명을 걸었고, 자신의 모든 삶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인류의 역사 이래로 지금까지 세상에 온 수많은 생명들이, 무엇 때문에 세상에 태어난지도 모른채 방황하고, 자신의 육체의 소욕을 따라 온갖 죄악을 물 마시듯이 하면서 멸망을 향하여 달려갔지만, 주님은 우리를 믿음 안에 불러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살도록 하셨고, 영원한 생명까지 주셨기 때문에, 이 잠시잠깐 세상의 순간들 속에서 오직 주와 더불어 축복된「코이노니아」를 이루게 하셨으니 우리의 생명을 드린 들 무엇이 아까울 것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 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고전15:42-43)
게 되니 이것보다 더 영광스럽고 감사할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6.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을 떠날 그 순간까지 주님과의 이 거룩하고 아름다운「코이노니아」를 위해 영적 싸움에 힘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몸에서는 냄새가 난다-각 국과 각 민족대로 냄새가 다르다. 이유는 식사와 생활 습관에 있습니다.
담배 피는 사람, 술 마시는 사람, 병자에게는 병자의 냄새가 납니다.
가난한 자에겐 가난의 냄새, 부자에게는 부자의 냄새, 여자냄새 남자냄새 등 등.
그런데 병든 남편을 위해 간호하는 부인이 있는데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병자의 몸에서 나는 온갖 냄새를 다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아무리 건강하고 아무리 돈을 잘 벌어와도 부인들이 절대 맡을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냄새가 있습니다.
그것은 남편의 몸에서 다른 여자의 냄새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향이 풍기면 기뻐하시고 축복하시지만, 사신 우상에게 절한 냄새, 무당이나 점쟁이 찾아가서 붙여 온 냄새, 죄악과 탐욕에 찌든 썩은 냄새는 하나님이 견디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충만함을 입을 수 있습니까?
거룩한 사람인가? 모든 면에 완벽한 사람인가? 아니다. 그런 사람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유일한 구원의 주로 믿으면서, 영적인 싸움을 통하여 자신의 믿음과 거룩함을 지키려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넘치는 사랑이 충만할 것이요, 바로 이런 영적 싸움을 통하여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것인 줄 믿습니다.
7. 이제 결단을 해야 합니다.
내 삶을 통하여 내 신앙을 통하여 어떤 냄새가 났는지, 주님이 나의 냄새를 기뻐하셨는지 매우 고통스러워하셨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방해하고 깨트리는 잘못된「코이노니아」가 있다면 21절의 말씀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세상과 잡은 손을 놓고, 주님의 손을 붙들기 바랍니다.
주님의 손길은 날마다 은혜의 푸른 초장과 복된 맑은 물로 이끄시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코이노니아」입니다.
오늘 지금의 이 예배도 주님과의 둘도 없는 아름답고 귀한「코이노니아」인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