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5.6.성령의 사람이 되야 할 이유(고린도전서 2:6-11)

[성경본문] 고린도전서2:6-11개역개정

6.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7.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령의 사람이 되야 할 이유(고린도전서 2:6-11/2007.5.6.오전)
1. 우리가 올해는 한 사람이 3사림씩은 전도하자고 하면서 열심히 기도하며 전도하고 있습니다마는, 전도할 때 흔히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수준과 형편에 맞추어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전략상으로 그런 시도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나라와 민족의 문화나 성향을 면밀히 조사함으로 복음을 전파하는데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는 접촉점을 찾아내면, 이 접촉점을 통해 문화와 타민족이라는 갈등의 장벽을 쉽게 넘어가서 복음을 용이하게 전할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인도 선교사의 자녀로 태어나 인류학을 전공한 폴 히버트의 「인류학적 접근을 통한 선교현장의 문화이해」나, 뉴기니아의 식인종을 복음화시킨 「화해의 아이」의 저자인 돈 리차드슨의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과 같은 저서들은 선교현장을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탁월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하기 전에, 아덴에 머물면서 그곳 사람들의 지혜와 웅변의 뛰어남을 알고 그들의 지혜와 웅변을 통해 복음을 전하려고 했다가 큰 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 실패를 통하여, 이 고린도서에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십자가의 구원의 복음이 결코 세상의 지혜를 의지하여 전파되어 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로 인하여 선교의 역사는 세상 지혜있는 자들에 의하여 멸시와 천대를 받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결코 세상의 지혜나 방법을 동원하여 사람을 구원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복음 자체에는 이미 하나님의 지혜와 구원의 충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담대하게 말하기를,「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선포하면서, 동시에 세상에 있는 모든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고전1:18-19)고 했습니다.

2. 우리가 크게 나누어 보면, 세상에는 두 가지의 지혜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세상의 지혜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철학입니다. 그런데 잠언에서는 이 철학을 가리켜 사람을 피곤케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관원의 지혜가 있습니다. 이 또한 사람들의 통치 수단에 따라 수시로 변화되는 불안한 것들입니다. 문제는 이런 것으로는 도무지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행하심도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사실, 즉 세상의 지혜나 능력으로 복음을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증거하는 사건이 있으니, 그것은 8절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알았더라면 결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학문이나 세상의 지혜로는 결코 하나님의 계시를 받지도 못할뿐더러, 우리의 전인격적인 구원을 이루시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로 영접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 하나님의 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 7절에 보니 「감추어 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놀라운 구원의 비밀을  택한 백성만이 알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명백하게 구원받은 우리를 위한 지혜요, 자기 백성 되고 자녀된 우리에게 당신의 영광을 나누어주시고, 우리를 영원히 영화롭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3. 여기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는 복음을 말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의 부활의 사건을 통해, 택함 받은 자들이 영원히 입을 사죄의 은총이요, 구원의 은총이며, 하나님의 자녀 되는 영원한 축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세상의 지혜로는 그 어느 것 하나도 알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빌립보 가이사라에 들어가시면서 제자들에게 한 가지의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했을 때, 베드로는「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때 주님은「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7)고 했습니다.
이 말은 베드로가 놀랍고도 엄청난 고백을 했는데, 이런 신앙고백은 결코 세상의 철학이나 그 어떤 학문이나 경험이나 이성의 자랑들, 그리고 혈통이나 권세의 그 어떤 능력으로도 알 수 없
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십자가의 복음인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은, 인간의 모든 이성, 모든 경험, 모든 지혜, 모든 감각을 초월한 하나님의 능력이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지성과 학문의 전당이라고 하는 대학교나 각종 연구소에서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논문들 가운데, 아직까지 세상 지식이나 경험이나 이성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깨닫거나 증거되어짐으로 구원받았거나 그것이 제대로 논증되어진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도리어 십자가의 구원의 도를 멸시하고, 거부하는 시도만 무성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의 복음은 시대마다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문화와 사상적으로 거부되어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역사를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으며, 도리어 박해를 받으면 받을수록, 거부되면 되어질수록 더 큰 구원을 이루면서 오늘에 이른 것은, 복음 자체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있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4. 문제는「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누가 알수 있으며, 어떤 사람을 가리켜 과연 지혜자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사실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참된 지혜자는 성령의 사람,  곧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보내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섭리란 무엇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까?
예수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택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미 만세 전부터 준비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은, 그 분의 예정과 계획을 따리 이루어진 것입니다.
찬송가만 8천여 편을 쓴 패니 크로스비 여사는 생후 6주만에 소경이 되었으나 96년의 평생에 한 번도 불평 원망이 없었다. 어느 목사님이 동정하면서 하나님이 다른 축복은 넘치게 주시는데 왜 당신의 눈은 볼 수 있게 하지 않을까요? 물었더니, 만일 내가 태어난 자리에서 하나님께 한 가지 요청이 있었다면, 그것은 소경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는 것일 것이다. 왜냐면, 내가 천국 가서 뵈올 예수님의 얼굴이 내가 보는 첫 얼굴이 되기 위해서랍니다.
그녀야말로,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와 계획을 전연 의심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감사로 충만한  삶이었습니다.
오늘 나의 나된 것, 다시 말해서 일본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이 거룩한 삶의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따라 이루어진 일임을 믿기 바랍니다.

5. 인생이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이며, 누가 참된 지혜자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지혜는 성령의 도우심에 의해서만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10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하셨고, 계속해서 11절에서는,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으니,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창조주 하나님을 알 길이 없으며, 복음을 통하여 구원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치 못하면 복음을 깨닫지도 못할뿐더러, 늘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일만하게 되고, 그러므로 그의 삶들은 고난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라는 이 말은 성령이 아니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구약 66권의 성경말씀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성경을 가리켜 말하기를,「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말한 것」(벧후1:21)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로 택함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의 특권 중의 특권은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입는 것인 줄 믿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성령님을 알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하고 도움을 입을 수도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도, 그의 구원의 능력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는 줄 믿습니다(13).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신 자는 하나님의 지혜와 비밀과 온갖 능력을 알며, 넘치는 축복을 다 누리는 줄 믿습니다.
20세기 과학계에 크게 공헌한 여성 과학자가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피에르 퀴르의 부인인 마리 퀴르와 아인슈타인의 부인인 밀레바 마리치가 그들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외국의 유학생활을 거쳐 당시 최고의 과학분야를 연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같은 분야의 과학자들과 결혼하면 인류에 크게 공헌할 것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마리 퀴르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함께 연구하여 라듐과 플로륨을 발견하여 마침내 제3회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하게 되었지만, 밀레바 마리치는 남편의 도움을 받기는 커녕 부부관계도 악화되어 결혼 파경에 이르렀고, 그토록 원하던 연구도 하지 못하고, 인생이 파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누구를 만나느냐, 누구의 도움을 받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났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았으며, 그분의 은혜로 성령의 사람이 된 줄 믿습니다.

6.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의 지구촌은 참으로 험한 세상이요, 한 치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시대를 위태위태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이 시대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성령 충만 인줄 믿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10)분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모시고,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뿐만 아니라 그의 약속과 장차 되어질 미래의 영원한 것까지 다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베푸시는 모든 능력과 신령한 은사들이 이미 하나님의 자녀된 내 안에 다 들어와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더 이상 세상의 지혜나, 관원의 지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눈치를 보면서 살 이유도 없습니다. 세상은 전부 가변적이고 불완전한 것이므로,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은 그것들과 함께 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참 지혜가 없다고 하는 사실이, 예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다면 그들은 하나님은 구원의 능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결코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 우리가 구할 것은 한 가지,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인도함을 받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나는 무지하고 무능하고 연약해도, 그의 지혜와 능력이 내 안에 성령으로 충만하면, 우리 평생에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고, 그러므로 우리는 늘 승리하는 삶을 사는 줄 믿습니다.

コメントを残す

メールアドレスが公開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が付いている欄は必須項目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