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4.믿음과 사랑(요한일서 3:20-24)
[성경본문] 요한Ⅰ서3:20-24개역개정
20.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21.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 믿음과 사랑(요한일서 3:20-24/2007.1.24) 1. 초등학교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급식을 받을 때, 어떤 음식을 먹고 있는지 일반인은 물론이고 학부모들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학교급식이 일반 시중의 가격에 비하여 상당히 싼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먹는 음식에는 유통기한이 있고, 그 기한을 넘기면 어떤 물품이라도 폐기 처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업자는 유통기한을 앞둔 제품들은 싼값에라도 처분하려고 하고, 학교는 싼값에 아이들의 급식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짐으로, 이런 것들이 대량으로 각 지역의 초등학교로 쏟아져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그러다 보니, 약간의 관리 소홀이 자녀들의 건강과 학교급식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일본에서 일어났던 토막살인들은 그 충격과 비참함은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가장 최근에 일어난, 후지야가 기한을 넘긴 상품을 위장하여 시중에 출하하거나, 사용기한을 넘긴 유제품을 사용하여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를 기만한 사건과, 관서테레비의 건강에 관련된 방송인 낫토를 먹으면 다이어트에 대단한 효과가 있는 것처럼 연구자나 체험자의 날조된 내용과 자료를 제시하여 시청자들을 속인 일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토막살인보다 더 큰 충격과 심각한 문제점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사람들에게 배심감을 가져오고, 한결같이 신뢰를 무너뜨리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할 뿐입니다. 2. 이런 사건들의 배후에 있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도덕적인 타락입니다. 도덕적인 타락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짐승처럼 살기를 작정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급식에서 유통기한을 코앞에 둔 그런 음식을 먹고 자란 내 아이들이 이 사회에 나가면 과연 어떤 사람들이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까? 오늘 주어진 본문을 통해서 볼 때,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모든 사건들은 믿음과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현상들이요, 또한 동시에 그나마 우리 주위에 남아 있는 믿음과 사랑을 더욱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은, 기독자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이고, 어떻게 행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깨끗한 양심입니다. 본문 20-21절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스스로의 양심에 비추어, 자신이「책망받을 일」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사람에게는 3가지의 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의 양심이고, 둘째는 사회의 법이고,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도요한은 이 첫 번째에 해당하는 양심의 법에 먼저 자신을 비추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스스로가 율법이 되어 자신을 살피고 판단하여, 자신에게 먼저 거슬리는 것이 없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3. 이유가 무엇입니까? 만일 우리 양심에 가책되는 부분들이 그대로 있다고 하면, 그것은 우리 자신을 부끄럽게 하며, 이것 때문에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능력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만,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시기 때문입니다. 유통기한을 넘긴 물건은 이미 상품의 가치를 상실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물건을 출하하는 것은 법을 어기는 차원을 넘어 이미 도적질이고 강도질입니다. 사회에서 신뢰와 존경을 받으며, 또한 이 사회의 리더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책임이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먼저 자기의 양심을 살펴야 합니다. 더러워진 양심,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가증한 일입니다. 사도요한의 편지는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을 향한 편지가 아닙니다. 당시의 믿음의 사람들과 오늘 우리 자신들에게 보낸 말씀입니다. 그런데,「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이라는 말씀은, 우리가 무죄한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함이 아닙니다. 또한 자기 확신이나 기만도 아닙니다.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아니하는 것, 책망할 것이 없다는 것은, 주께 받은 그 사랑으로 행함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4. 믿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능력 있는 믿음은 기도응답으로 나타납니다. 사도 야고보는 말하기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고」,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많」(약5:15,16)다고 했습니다. 여기 힘이 많다는 말은, 「폴뤼 이스퀴에이」로 기록되었는데, 이것은 그 효력이 매우 강력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만으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자신들과 더불어 우리 주위에는 무능력한 신자들로 가득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양심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회복된 양심이 아니라, 양심이 화인 맞은 그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말하는 것이나 행하는 것이 세상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의 사람은 다릅니다. 22절을 보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하였습니다. 기도응답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마18:19절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그대로의「무엇이든지」라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도응답이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계속해서 22절을 보면,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이는」은 「왜냐하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응답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요 분명한 이유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5. 그러면 기도응답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계명들을 지키며,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요15:12절에 보니,「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계명은 사랑입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위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양심에 책망 받지 아니하는 것은, 무죄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심같이 우리가 사랑으로 행할 때, 스스로의 양심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으며, 부끄럼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실천은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됨의 보증이 되는 것이요, 이 사랑의 마음을 가짐으로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과 두려움이 없는 온전한 교제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응답의 비결, 능력있는 믿음의 삶은 사랑으로 행하는 데 있습니다. 사도요한이 말하는 믿는다는 것은 단순하게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 이상입니다. 그가 말하는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함과 더불어 그가 나의 목자로서 늘 동행하심에 대한 확신과, 더 나아가서는 그의 계명에 따르는 헌신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6. 그리고 마지막부분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참된 믿음, 참된 사랑이란 주님과 우리가 사랑으로 하나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일본 국가도 하루에 1천억엥이라는 빚이 쌓이면서 막대한 부채를 안고 대책 없이 표류하고 있습니다. 많은 재물과 인적 자원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국가에 대한 신뢰감을 잃어버릴 때,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을 잃고 믿음을 잃어버린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사랑이란 내 한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주님처럼 자신을 내어 줌으로 다른 사람이 살도록 하되 영원히 살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도 가장 어려울 때, 죄악이 관영하였을 때 사랑의 주님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오셔서 정치적인 힘이나 물질이나 그 어떤 종교적인 힘도 빌리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개혁도 부르짖지 않으시고, 조용히 자신을 세상을 위해 희생하셨을 뿐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소망을 두고,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불쌍히 여기며, 낙심하지 아니하고 사랑으로 행할 때, 이 땅에도 온전한 사랑, 온전한 믿음의 열매로 가득할 줄 믿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