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29.주님이 우리에게 오신 목적(요한1서 3:4-9)

[성경본문] 요한Ⅰ서3:4-9개역개정

4.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5.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6.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7.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9.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주님이 우리에게 오신 목적(요한1서 3:4-9/2006.11.29)
1. 사도요한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또한 자녀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 없이 완전한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의 이중성에 대한 갈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함으로 인한 갈등과 무거운 짐을 진 것 같은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 괴로워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는 거룩한 삶이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몇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확신과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사도요한은 먼저 본문 4절에서, "죄는 불법" 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와 불법은 동일하다는 말입니다.
이 "죄"는 헬라어로 "하말티아"며, "불법"은 "아노미아"라고 하는데, 이 두 단어가 똑같이 관사 "헤"를 앞에 붙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죄"와 "불법"이 똑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러므로 서로 바꿀 수 있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것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을 행하지 아니하거나, 행해서는 안 될 것을 행할 때, 이 두 가지를 죄라고 합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정한 법에 위반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과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교통위반을 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불법이라고 말합니다.
이 하나님 앞에서의 죄와, 세상 질서를 위반했을 때의 불법은 그 죄의 무겁고 가벼움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그 결과는 같은 죄요 같은 불법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죄인 동시에 불법이며, 교통위반도 역시 불법이며 죄가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법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이것을 거역하면 당연히 죄가 되고 불법이 됩니다. 그런데 세상의 법과 각종 질서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창조의 질서를 따라 온 것이기 때문에, 이것 역시 우리가 위반하면 하나님의 법과 질서를 어기고 무시한 것이 되기 때문에 교통위반도 당연히 불법이며 동시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3.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의 범죄함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에서 교통질서를 위반함으로 발생하는 작은 죄의 문제까지도 우리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통위반 정도야 벌금을 물거나, 말만 잘 하면 해결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법을 범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사람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 가운데 있음을 교통위반을 통해 드러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큰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는 자신의 죄 문제는 물론이고, 남의 죄 문제도 해결할 능력이 전연 없다는데 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인간의 죄 문제는 전적 무능력이요, 절망의 상태일 뿐입니다.
단언하기는 인간이 세상에서 살면서 죄 짓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스스로에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죄를 지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갚을 능력이 없으면서도, 살기 위해서 대책없이 계속해서 고리대금의 빚을 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상태를 방치 하면 결과는 파멸이며, 고통입니다.

4. 그런데 5절에 보니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이하려고 나타내신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죄에 관해서는 소망없고 대책도 없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우리에게 오셨다는 소식입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죄는 마귀의 유혹을 받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가 존재하는 한, 인간이 인간다울 수 없기 때문에 이 죄를 없애기로 작정하셨고, 이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 그의 독생자에게 맡기셨던 것입니다.
그런데,"없이하다" 는 말, "아레"는 들어올리다, 가져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가운데 있는 죄를 자신의 십자가로 가져가시고, 그곳으로 옮기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의 죄와 자신의 생명을 맞바꾸셨습니다.
그야말로 죄와 불법이 동일한 가치를 지닌 것임으로 그것들을 맞바꾸어도 전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생명을 주고 우리의 모든 죄를 가져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하고 의롭게, 그리고 능력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첫 번째 비결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알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사53:11)는 말씀대로 죄인 되었던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감당하시려고 우리의 죄짐을 짊어지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세례요한은 더욱 분명히 나타내기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1:29)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과거의 죄는 물론이고,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 문제를 주님은 십자가에서 해결하신 줄 믿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에게는 양심의 가책이나 갈등이나 무거운 짐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그의 값없는 구속, 놀랍고도 완벽한 속죄의 은혜에 감사만 있을 것입니다.

5.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는 두 번째 비결은 6절에 기록한대로,"그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6절에,"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하였고, 9절에도,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이유가 바로 "그 안에"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그 안에" 있다는 그 안은 어떤 곳입니까?
5절에,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하였으니, 이것은 죄는 물론이고, 죄의 원리조차 없는 완벽한 거룩의 상태를 나타내는 곳입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용서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죄 가운데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이지만, 일단 우리가 "그 안에" 거하기만 하면, 우리는 누구라도 죄와는 상관이 없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사도바울의 경우를 보면, 그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빌4:13)있었기 때문에 그는 복음을 위하여 최고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누구에게 속하며,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죄의 영향력 아래 머물기 때문에 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육신은 여전히 마귀의 종노릇을 하며, 죄악의 도구로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죄 없으신 그리스도 안에 머물기를 힘써야 합니다.

6.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고 그 죄를 그냥 두시지 않고 대적하시고 심판하시는 가를  "그가 우리 죄를 없이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 이라는 말씀을 통해서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죄를 멸하시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아들까지도 희생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자신의 아들보다 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됩니다. 당연히 아들을 더 사랑하셔야 하는데 말입니다.
왜 죄 없는 아들은 희생하시고, 죄 많은 불법의 아들, 반역자된 우리는 용서하시고 구원하셨습니까?
한마디로 죄인이 불쌍하기 때문입니다.
죄에 사로잡혀 신음하고 고통하는 인간의 그 처절한 모습을 하나님은 외면하시거나 참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그의 자비하신 은총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 이 은혜가 얼마나 놀랍고 귀한 것인가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가장 귀한 것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할 수 있으며,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받은바 사랑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7. 배고픈 사람의 사정을 어떻게 해야 잘 알 수 있습니까? 나도 그 사람만큼 배 고파보면 압니다. 그 사람의 수준, 그 사람의 형편, 그 사람의 현재의 모습까지 내려가서 그 상태를 함께 나눌 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도 내가 남을 사랑함으로 내 자신을 희생해 보지 아니하고는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나의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리고, 주님께 내 몸을 바쳐, 내 육체가 찢어지고, 피가 쏟아지는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서면, 그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아,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셨구나".
겉으로 보면 순교의 길이 끔찍하게 보여도, 이 사랑을, 이 은혜를 체험한 자는 너무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몸 바쳐 충성해도, 내 정성과 수고가, 그 분의 사랑과 은혜에 비하면 너무 부족함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그의 사랑과 은혜가 우리를 넉넉히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가 우리에게 오신 목적은 죄를 없이하고,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의롭고 거룩하게 살뿐 아니라, 하나님의 그 놀랍고 큰 사랑을 누리며 살도록 하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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