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3.당신은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요한일서 3:10-12)
[성경본문] 요한Ⅰ서3:10-12개역개정
10.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11.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12.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당신은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요한일서 3:10-12/2007.1.3)
1.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미국, 영국, 소련이 모여 일본에서 해방된 한반도를 놓고 유엔에서 최장 5년 간 한반도를 신탁통치를 하기로 결의하자, 2천만의 모든 국민이 신탁통치를 거부하며 연일 데모로 들끓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일부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꾸어 신탁통치를 지지한다고 데모를 함으로, 신탁을 반대하는 이승만, 김구를 대표로 하는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와, 김일성과 소련의 앞잡이들이 세운 인민공화국의 신탁찬성을 지지하는 세력 사이에 첨예한 대립이 일어났고, 마침내 남북은 분단되고 만 것입니다.
50여 년의 세월이 지난 후, 한국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 때의 좌익과 우익의 대결이 재현되면서 대한민국은 10년 동안 양극갈등의 현상을 빚고 있습니다. 당신의 소속은 어디냐는 것입니다.
좌익이냐 우익이냐? 남이냐 북이냐? 미국이나 북한이냐?
그 결과 민족적 이념의 갈등은 역사를 50년이나 후퇴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상적인 대립보다 더 심각하고 무서운 갈등과 분쟁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세계의 좌냐 우냐? 위냐 아래냐? 의 영적 소속의 갈등과 분쟁입니다. 영적인 세계에도 두 가지의 소속이 있습니다.
2. 10절에,「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하나님께 속한」자들과「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는 마귀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교회 출석한다고 다 하나님의 자녀는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도 마귀의 자식인 가롯유다가 있었고, 예수님도 비유를 통해 같은 밭에서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란다고 하셨습니다.
먼저 마귀는 어떤 존재이며 그에게 속한 마귀의 자녀들과 어떤 존재들입니까?
마귀란 헬라어로「디아볼로스」로, 스스로 범죄하여 타락한 자를 말합니다.
또한 유혹하는 자, 살인하는 자, 거짓말의 아비, 대적하는 자, 참소하는 자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디아볼로스」라는 이름 그대로의 인격과 행동을 가진 존재가 마귀요 사탄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3가지로 시험하여 넘어뜨리려 했습니다(마4:1-11).
그는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시험하여 온 인류를 죄와 저주가운데 빠지게 했습니다(창3:1-24).
지금도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벧전5:8).
마귀는 믿음의 사람 다윗을 격동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아니하는 일을 하게 했습니다. 곧 자기 백성의 숫자를 계수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도록 했습니다(대상21:1). 그 결과 온 이스라엘에 재앙이 임하고 말았습니다.
까닭 없이 의로운 욥으로 고난을 당하도록 했습니다.
마귀는 지금도 교만케 하고, 낙심케 하고, 분쟁케 하고, 미워하고 거짓말하도록 합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하며, 절제하지 못하게 하며, 잠자는 사이에 가라지를 뿌리고 갑니다. 하나님과 원수로 행하도록 합니다.
3. 마귀에게 속한 마귀의 자녀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10절에,「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더 정확하게 말하면, 의를 알고도 행치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를 입어 사랑의 능력을 가지고도 그 사랑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를 말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12절에 보니, 「악한 자에게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 많지만, 소속만큼 중요한 것 또한 없습니다.
여행을 해 보니, 방글라데쉬의 수도 다카에서 태어난 사람과,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방글라데쉬 사람과 이야기 해 보면, 알고 경험하는 것이 다카 수준을 넘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뉴욕의 사람은 세계를 알고, 세계를 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북한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것 밖에 모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람은 많은 것을 알고 누립니다. 선택의 자유까지 주어졌습니다.
마귀와 마귀에게 속한 자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8:44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하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는 말씀입니다.
4. 오늘 본문에 가인이 아우를 죽였다고 했습니다. 왜 죽였습니까?
미워서 죽였나요? 화가 나서? 다 맞는 말입니다 마는 근본적인 답은 아닙니다.
그가 아우를 죽일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본문에 나옵니다.
본문에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라는 말은 무엇 때문에 죽였느냐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우를 죽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고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을 말하기를,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롭」기 때문입니다.
같은 형제가 하나는 악하고 다른 하나는 선하다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근본적인 이유는 그 위에 보면,「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가인은 처음부터 마귀에게 속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에 이해가 잘 안 간다면, 야곱과 에서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롬9:13)는 말씀은, 야곱은 하나님께 속한 자요, 에서는 하나님이 버린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에서의 행위가 악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야곱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동생을 죽인 것은 그의 인격이, 그의 영혼이, 그의 삶의 모든 중심이 마귀에게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죽였」다는 말은,「에스팍센」으로 그 뜻은 죽이다, 도살하다, 목을 자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생을 죽여도 그냥 죽인 것이 아니라 짐승을 잡듯이 아주 잔인하게 죽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질투는 살인과 동일합니다. 마귀가 교회를 파괴하고,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기 위해 심각한 죄를 동원하는데, 질투와 교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일 뿐만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세균전쟁과 같습니다.
5. 우리의 인격, 우리의 삶과 습관과 사상은 자기가 속해 있는 곳에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가인이나 에서처럼 마귀에게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속한 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9절에 보니,「죄를 짓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여기 죄를 짓는다는 말의 의미는 전연 죄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인 범죄함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때때로 넘어지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한 번 나를 넘어지게 한 죄가 다시 올 때에는 강력하게 저항하고 거부하여, 그것이 두 번 다시 나를 넘어지게 해서는 안됩니다.
유괴범이 달콤하게 유혹할 때, 부모의 사랑을 입은 자녀는 울고 고함지르면서 저항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부모나 주위의 사람들이 달려와 도와 주듯이, 우리는 약하지만 의지적으로 저항해야 합니다. 힘이 약해도 싸워 물리쳐야 합니다. 왜?
약4:7절에 보니,「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6. 둘째로, 10절에 말씀에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다」고 했으니, 의를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 의를 행함도 습관적으로 행하는 의를 말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좋은 습관을 만들어 갑니다. 전도, 기도, 봉사, 헌금생활도 처음부터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잘 안됩니다. 그러나 자꾸 행하다 보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습관은 마침내 그 사람의 인격이 되고 삶이 됩니다.
어려운 사람을 보고 도와 주는 것도 처음에는 망설이게 되지만, 몇 번 용기를 내어 실행하다가 보면 도리어 기쁨과 감사를 알게 되고, 나중에는 당연한 삶의 일부가 됩니다.
도적질도 처음에는 두렵고 덜리고 망설이지만, 자꾸 반복하면 담대한 마음을 가진 도적놈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 일찍 와서 예배를 준비하는 것도 좋은 습관입니다. 그런데 지각하는 사람은 날마다 지각합니다. 왜? 그것이 그 사람의 인격이고 삶이고 정신세계이기 때문입니다.
7. 셋째로, 무엇보다 사랑으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1절에,「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처음 들었을 때 무엇을 만났습니까? 어떤 경험을 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그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살을 찢고 피 흘려 죽으신 그 사랑, 그 은혜를 받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에게 먼저 부음바 됨은,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고 희생하셨듯이, 우리도 하나님께 받은 바 그 사랑을 이웃에게 베풀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고, 용서하면 할수록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옵니다. 이 사랑도 우리의 습관이 되고 인격이 되고 삶의 가장 중요한 일부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란, 신앙고백이나, 기독교 사상이나, 세례 받고 교회의 조직에 속해 있는 것으로 구분되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그의 말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죄의 세력을 거부하고 멀리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이 사실을 귀하게 여기고, 이 일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