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4.내 안에, 주님 안에(요한일서2:26-29)
내 안에, 주님 안에(요한일서2:26-29/2006.10.4)
1. 바벨론 신화에 의하면, 태초에 '타아말'이라고 하는 바다의 괴물이 있었고, '말둑' 이라고 불리우는 신들 중의 왕이 이 괴물을 무찔렀지만, 완전히 죽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아마겟돈'과 같은 지구 종말의 전쟁에서 다시 한 번, 이 괴물과의 싸움이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보면, 이 괴물을 가리켜, 구약에서는 '날샌 뱀'이라고도 하고, '리워야단' 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작은 뿔 가진 짐승' 으로 그 존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같은 이 괴물을 가리켜,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계11:7)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표현은 결국 하나를 지칭하는 것으로,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세력인 적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적그리스도의 특징은, 주님 재림을 기다리는 종말의 날이 임박하면 할수록, 더욱 강력하고, 우는 사자처럼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말세의 징조 중의 하나로서 이 적그리스도의 미혹하는 활동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마24:5).
기독자는 세상의 온갖 죄의 세력만이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적그리스도의 강력한 도전과 유혹을 동시에 받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양쪽의 싸움을 감당하고, 승리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을 주님의 재림의 그 날까지 지키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2. 그러나 결코 두려워하거나 근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27절에 보면,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곧, '기름' 이란 성령을 말씀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이 “기름부음”은 성령께서 이미 믿는 자들인 우리 안에 와 계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20절에서 밝히고 있는 말씀으로, 본문에서 다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위에 기름부음인 곧, 성령으로 우리의 심령이 충만해질 때 가능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진리를 깨닫게 하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요16:13절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고 하였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이미 듣고 배운 말씀들을 생각나게 하시어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도록 도우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거룩한 지성소에는 성령과 진리가 함께 거하시고 계십니다.
3. 바로 여기서 교회의 중요성이 다시 강조되게 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 성령을 부어 주시고, 이 성령님을 통하여 구원받은 백성들이 거룩함을 유지하고, 말씀을 깨닫고 자신을 온갖 유혹과 적그리스도의 공격으로부터 보존함을 받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7절에 기록된 대로,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27절 후반에 기록된 대로, 오직 성령이 주님을 대신하여 우리를 가르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첫 강림은,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주님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간절히 사모할 때, 그들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에 함께 모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게 해 달라고 부르짖을 때, 교회 전체가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할 수 있으며, 이 충만함이 오사카와 일본 전체, 우리가 복음을 들고 가는 곳마다 초대교회의 역사처럼, 일본의 복음화를 이룰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더 나아가서 교회는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 그리고 오고오는 모든 믿음의 후손들의 영혼과 육신과 그 삶을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지키고 보존하는 노아 시대의 방주와 같은 사명을 가진 줄 믿습니다.
4.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28절에 기록된 대로, “그 안에 거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곧 주님 안에 거하라는 말씀이며, 또한 요한1서 2장에서 여러 번 거듭거듭 강조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 가운데 때때로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도중에 파선해 버리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 이유는 '주님 안에' 보다는, 주님 바깥쪽에 소망을 두고, 그곳에서 자유와 기쁨을 맛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지 못합니다.
도리어 낭패와 실망을 안고 영원한 좌절만 맛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어진 본문에 근거하여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해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가장 중요한 것으로 28절에 기록된대로,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함” 에 있습니다.
5. 많은 경우에 믿다가 도중에 사람들이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기도응답에 실패하고, 내가 의도한 대로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하나님의 사랑과 이미 받은바 된 구원까지 의심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방황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과, 그 위에 내 안에 계신 성령의 도우심을 입을 때, 이 사람에게는 두려움과 의심이 설 자리를 잃고 마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주님의 품 안에 있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다니엘은 사자 굴에 떨어졌지만, 구원의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다.
본문의 “담대함을 얻어” 의 ‘담대함’의 헬라어는 ‘파레시아’로, 일반적인 의미로는, 어떤 한 시민이 공중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민주주의적 권리를 가지고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기탄없이 말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성경적인 의미로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의 두려움이 아닌 용기 있는 태도를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할 수 있습니까?
기도할 때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의 태도로서 두려움과 의심, 주저함이 없는 것들입니다.
6. 둘째는 주님도 우리에게, “내 안에 거하라”(요15:4) 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사도요한은 거듭거듭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셋째로는 적그리스도의 집요한 공격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있어서 요새며 반석이며, 능력입니다.
그의 품안에서 안식함을 얻은 자들을 향한 놀라운 약속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잠시잠깐 우리 곁을 지나가지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베푸신 구원의 능력은 영원합니다.
적그리스도의 공격도 잠깐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말씀으로 굳게 하시고, 성령으로 도움으로 우리를 담대하고, 영원토록 부끄럽지 않게 하셨습니다.
모든 적그리스도의 공격과 세상의 유혹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오직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방어능력인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