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5.23.세상을 사랑해서는 안되는 이유(요한일서 2:15-17)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되는 이유(요한일서 2:15-17/2010.5.23.오후)
1. 사도요한은 1세기 말에 교회들이 이교도의 영향을 받아 성도들의 순수한 사랑이 식었음을 보고, 처음 사랑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3:18절에서도,「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서신의 주제는 사랑과 진리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됩니까?
우리가 사랑해야 할 진정한 대상은 무엇입니까?
더 나아가서 우리가 사랑할 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에 대한 바른 대답을 사도요한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2.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절에,「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세상」이란, 헬라어로 「코스모스」로 이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게 대립되는 악의 세력의 지배 아래에 놓여 있는 세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 자체는 잘못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의 죄로 말미암아 부패되고 타락하고 오염됨으로 사단의 지배를 받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할뿐더러,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를 받을 수 없는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곧 죄를 사랑하는 것이요, 그 죄의 배후에서 역사하는 사단에게 순종하는 것이 됨으로,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흔히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말합니다마는, 우리의 바른 신앙과 바른 신학은 육체의 도덕적인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가 도덕적으로 타락하면, 말씀의 능력이 효과를 잃게 됩니다. 물론, 전파되는 말씀은 전하는 자보다 위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메시지보다는 메신저에게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도덕적인 흠은 결국 영적인 타락까지 불러오고 마는 것입니다.
3.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난 상태는 어디까지나 영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 상태를 가리켜 이스라엘이 간음했다고 육체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사랑하는 영적 타락이 도덕적인 타락과 밀접하게 관련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육신과 영혼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서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의 질투와 하나님의 미움을 받게 됩니다.
호세아 9:15절에, 「저희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내가 거기서 저희를 미워하였노라 그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하나님의 죄인을 향한 사랑하심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 그 영혼까지도 잃는 것입니다.
다 잃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랑은 집을 나간 탕자와 같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잃고 그 인생이 방황하고 고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림을 당한다 하여도, 하나님 사랑 이 한 가지만 얻으면 모든 것을 영원히 얻는 줄 믿습니다.
4.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두 번째 이유는, 세상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정욕의 노예가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세상을 사랑하는 그 정욕을 3가지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것은 세상 사랑의 온갖 정욕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나오는 것이 육신의 정욕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자 하는 세력을 말합니다.
육신의 정욕은 일시적이고, 약하고, 더러운 것이며, 아무리 사랑해도 만족을 얻지 못하는 사랑이요, 사랑하면 할수록 사랑의 갈증만 더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좋아하는 것이나 취미생활, 그리고 생활의 태도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본인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세상 사랑하는 정욕이 각 사람의 육체에 각인이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소나 양들에게는 소유주를 알리는 화인이 있고, 표시가 있습니다.
사람에게도 그런 것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젊었을 때에 무엇을 했는가, 어떻게 살았는가, 무슨 물을 마시고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씻는 것은 보혈의 능력뿐입니다.
영적으로는 한 번 씻는 것이지만, 우리 육신은 자주 씻는 사람이 깨끗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씀과 성령으로 자신을 매일 씻어야 합니다.
5. 두 번째로 나오는 것이 안목의 정욕이라 했습니다.
사람들의 대부분의 죄와 허물이 눈으로 보는 것을 통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첫째 것이 육체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에 비하면, 이것은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의해 일어나는 죄의 세력입니다.
보지 않으면 안보는 대로 살아가는데 일단 보면, 그 보는 것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이 본다는 것의 영향력이 얼마나 센지, 마귀가 예수님을 유혹할 때에도 이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우선 천하를 다 보여주고 내게 절하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너무 돌아다니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도리어 말씀 묵상과 기도로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5:28절에서,「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다고 하셨고, 구약에서도 눈이 자랑의 죄와 정욕, 음란함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여러 곳에서 밝히고 있습니다(창3;6, 39:7, 수7:21, 전9:8, 사5:15).
어린이 찬송에도,「네 눈이 보는 것을 조심해 네 눈이 보는 것을 조심해 위에 계신 하나님 사랑스레 보시네 네 눈이 보는 것을 조심해」라 했습니다.
사람의 눈을 통해 죄가 들어오고, 이 눈을 통해 마귀가 들어옵니다.
혀도 지키고 귀도 지켜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눈을 말씀과 성령으로 지킬 때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 수 있습니다.
6. 세 번째로 나오는 것이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성 속에 자리 잡은 교만과 허영이 자랑을 통해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최대의 약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자랑일 것입니다.
가만 보면, 사람들이 별것을 다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 헛된 것입니다.
약4:14절에,「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인생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니라」했습니다.
아침에 잠깐 어른거리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안개 같은 인생이 누구 앞에서 무엇을 자랑하겠습니까?
대한민국 사람들 외국 나가보면 제일 씩씩하고 흥분 잘합니다. 그러나 소용없습니다.
잠간 지나면 전부 헛된 자랑인 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자랑할 것이 있으면 오직 십자가를 자랑하고 복음을 자랑하고 예수 이름을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이 자랑 외에는 다 헛된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 죄짓는 것입니다.
7. 우리가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에서 우리가 사랑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대로, 아버지의 사랑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하여 죄 가운데 빠지고 하나님과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세상은 범죄한 인간들의 정욕의 배출구와 같은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음란한 창녀와 같은 이 세상을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의 「육체」라는 단어는 전부 중성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왜냐면,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정욕은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이 육신이 문제가 아니라, 이 육신을 사로잡고 있는 죄의 세력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도 「육체의 정욕」,「안목의 정욕」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육신을 묶고 사로잡고 있는 정욕이라는 더러운 욕심에 묶인 것입니다.
8.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왜 우리는 이 세상을 속히 떠나지 않고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까?
17절에 그 답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는 말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분이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나를 살리고 나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그의 사랑을 맛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도록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충분히 맛보아 알도록 하나님은 이 세상에 우리를 두신 줄 믿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 사랑을 세상에 알리고 나누는 사명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 세상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한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참된 사랑이 있기 때문이며, 맛보지 않으면 안 될 진실하고 영원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9.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자녀의 현주소는 분명 이 세상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눈만 뜨면 세속적인 것으로 둘러싸여 살아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 또 한 가지는,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 있으면서도 결코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매를 맞고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결코 내가 감옥에 있다고 말하지 않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있다고 했습니다(빌4:13).
연꽃이 더러운 연못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그 고인 물을 마시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신선한 이슬을 마시면서 생명을 연장하고,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것처럼, 우리가 세상에 있는 목적은 세상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곧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그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더불어 영원히 사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