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8.30.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것(요한일서 2:12-14)
[성경본문] 요한Ⅰ서2:12-14개역개정
12.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13.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4.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것(요한일서 2:12-14/2006.8.30)
1. 사도요한은 본 서신을 통하여 기독자의 신앙의 본질에 대하여 말하면서, 특히 본문에서는 이 서신을 보내는 이유를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을 믿어 구원에 이른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금보다는 그들의 신앙이 더욱 성숙함을 얻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기본적인 신앙의 본질을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믿어 구원에 이르렀을 때, 그의 이름으로 얻은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모든 종류의 스포츠의 실력은 기본적인 체력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초보자는 물론 대단한 경지에 이른 프로 선수라도 어떤 기술을 습득하기 전에 항상 기본적인 체력을 쌓아갑니다. 성가대의 연습도 먼저 발성연습을 한 후에 곡조 연습에 들어가듯이, 신앙의 세계, 특히 영적인 싸움이 치열한 이 믿음의 세계에서도 기본적인 신앙의 확신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입니까?
2. 첫째로, 사함 받은 자의 은총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 믿어 죄 용서 받고 구원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희생하심으로 말미암은 은총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가운데는 이 사죄의 은총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다른 세상적인 어떤 것들을 추구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욕되게 하고 있습니다.
죄인 되었던 내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된 것, 이것은 축복중의 축복이요 경이로운 역사입니다.
죄 용서 받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도무지 맛볼 수 없는 은총입니다. 이 죄용서 받음이 왜 경이로운 일이며 축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사함 받지 못하면 내 죄가 영원히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영원한 죽음을 가져올 뿐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온갖 저주와 고통으로 사람을 묶습니다.
죄는 택함 받은 선민이라도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멸망하는 결과를 가져오며(민14:33), “그 식물이 창자 속에서 변하여 뱃속에서 독사의 쓸개가 되”게하며(욥20:14),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출20:5) 저주받게 하며, “죄의 삯은 사망”(롬6:23)에 이르게 합니다.
3. 그러나 용서받음이란, 이런 모든 것에서의 자유요, 해방이며, 더 나아가서 하나님 자녀된 자의 권세를 누리게 하는 줄(요1:12) 믿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죄사함의 은총이란, 어떤 일시적이거나 제한적인 용서가 아니라 완벽하고도 영원한 용서라는 사실입니다.
본문 12절의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의 사함이란, 헬라어로 "아페온타이"로, 이것은 완료시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곧,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에서 이미, 그것도 완벽하게 용서받은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과 그 어떤 환경을 초월하여 죄 용서가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한 것뿐이며, 이것은 그 누구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하시는 그 분의 완벽한 사역인 줄 믿습니다.
4. 그런데 이 사죄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고 감사하게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우리가 사죄의 은총을 입었을 때, 우리에게는 남을 용서하는 또 다른 사죄의 능력과 권세가 우리에게 임했다는 사실입니다.
요즈음, 날마다 올라오는 살인 범죄의 뉴-스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물론 사탄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오늘 본문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볼 때 그것은 용서받지 못한 자들의 고통과 분노가 모든 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는 있어도 용서는 없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참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에서 용서받았으며, 더 나아가서 내가 모든 사람을 향하여 용서하고 이해하며 용납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며, 경이로운 사건입니까?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의 영적 동기와 힘이 되는 줄 믿습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그의 사랑과 그의 희생으로 값 주고 사신 바 된 하나님의 자녀인 줄 믿습니다.
5. 둘째는, 하나님을 아는 영적 지식에 충만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나면, 그의 생명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영안이 열리면서, 배우고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놀라우심과 그의 행하시는 능력에 경탄하게 됩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분입니까?
본문에 보니,“태초부터 계신 이”라고 거듭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분은 아무것도 없는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의 깊음”(창1:2) 가운데에 만물과 인생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엡3:9절에 보니,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이라 하였고,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히1:3),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11:36)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아버지가 창조주 하나님되심을 믿을 때, 믿는 자 안에서도 이 능력이 나오는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말하고 배운 만큼 행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3층 천국까지 체험함으로 그의 영적 경험, 영적 지식을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그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인 체험이 그로 하여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산 것이라”(갈2:20)고 고백하게 했던 것입니다.
6. 그런데 13절과 14절의 "알았다"는 단어가 3번씩이나 반복되고 있는데, 이것은 어느 시점에서 정체되거나 제한된 지식이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계속되는 지식의 성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계속된 지식의 성장은 하나님과의 더욱 밀접하고 바른 관계를 가져오는 결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식은 관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식물학자는 나무, 식물과의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물학자는 동물들과 밀접한 관계를 통해 그들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 분과의 바르고 온전한 교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지식이 없어 불행한 사람들을 성경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장자의 명분을 한 그릇 팥죽에 팔아먹은 에서나, 하나님이 막으시는 그 길을 억지로 가자고 한 발람의 모습이 있습니다.
발람은 물질의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자 당나귀가 보는 것도 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영적으로 눈이 어두우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입은 사실조차도 모르고 이스라엘백성들처럼 광야에서 방황하며 고통할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정하신 길이 보이고, 그의 능력과 은혜가 내 안에 풍성함을 알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7. 셋째로, 영적인 승리를 얻습니다.
어린아이가 출생하면 처음에는 어머니의 사랑밖에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라나면서 세상을 알고, 세상을 경험하는 것만큼, 배우고 훈련받으면서 성장하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영적으로 새롭게 출생하면, 자신이 지금 영적 전투장의 한 가운데 있음을 알게 됩니다.
본문 13절의 “악한 자”는 사단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가 온 세상을 자기의 능력대로 죄악에 가두고 고통하게 합니다. 그런데 세상과 어두움의 지배자인 이 사단을 우리가 이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겼다는 말은, 어느 시점에서의 일시적인 승리가 아니라, 이미 과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단과 싸워 이기신 그 승리가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승리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육신을 포함한 모든 영적전쟁의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인 줄 믿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모든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의 십자가의 흘리신 보혈의 능력입니다.
지금도 역사하시는 성령의 도이심입니다.
그의 말씀의 능력이 우리를 강하게 하고 영적 무장을 하게 함으로 승리하게 하는 줄 믿습니다.
8. 본문에 근거하여 우리가 싸우는 영적 싸움의 구체적인 것들이 무엇입니까?
이단들과의 싸움입니다. 그들은 이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교적인 생활 환경에서의 도덕적인 성결을 지키는 것입니다.
말씀과 성령의 도움으로 자신의 영적 수준을 높이는 것입니다.
예배와 전도와 봉사로 사랑과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굳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함 받은 것 자체가 영적 싸움의 승리를 보증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믿고 사함 받은 그 순간에 우리는 이미 세상과 사단에 대하여 승리를 약속 받은 줄 믿습니다.
우리는 지금 22년된 이 공동체의 영적 자산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유전하는 중요한 시기에 와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 자신의 영적인 기초작업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그것을 굳게 해야 할 것입니다. 사죄의 은총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며 은혜인가를 먼저 우리 가운데서 체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이 영적 지식이 가져다 주는 놀라운 능력을 우리의 삶 한가운데로 가져옴으로, 악한 자와 세상을 이기는 이 영적 싸움에서 마지막까지 승리를 얻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