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7.19.생명의 말씀되신 예수 그리스도(요한1서 1:1-4)

[성경본문] 요한Ⅰ서1:1-4개역개정

1.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생명의 말씀되신 예수 그리스도(요한1서 1:1-4/2006.7.19)

1. 이 서신을 기록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영원한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 그 분을 소유함으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과, 둘째는, 이 생명을 대적하는 자, 곧 적그리스도가 있음을 알리고 이것을 경계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귀한 것일수록 노리는 적이 많고, 그 만큼 위험과 어려움이 많은 것처럼, 영적인 세계도 동일한 것이다. 이 당시에 많은 이단들과 대적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요한서신이 경계하고 있는 것은, 그노시스 사상, 즉 영지주의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스스로의 직관으로 알 수 있다는 지식 중심의 신앙사상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영과 육의 이원론의 사상을 가지고, 영은 선하고 육신은 악하다고 보았기 때문에,육은 무시하고, 금욕주의를 주장하며, 죄를 가볍게 여김으로,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매우 어지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신학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을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그들을 가리켜, 마귀에게 속한 자(3:8)요 마귀의 자녀(3:10)요, 형제를 미움으로 살인하는 자(3:15)며, 거짓말하는 자(4:20)로 강력한 용어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영적으로 미숙한 신자들을 미혹하여 마귀의 자녀가 되게 만드는 이단 사상과, 적그리스도며 사이비 신학들이 사도요한의 시대보다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으니, 바른 신앙과 신학으로 무장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영혼과 생명을 지키기가 어려운 것이 이 시대의 현실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1절에, “생명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2절에서,“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고 함으로, 그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도 이 사실을 증거하기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곧 하나님과 함께 계셨” (1:1)다고 하면서, 14절에서는,“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일반적인 사랑 때문입니다.

이 사랑은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은 자신을 통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계시하셨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립이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 달라고 할 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14:9)고 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는 33년의 전 생애에서, 능력과 순종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고, 십자가를 통하여 그 자신이 하나님의 복음이 되심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요,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신과 그의 일을 계시하셨습니다.

3.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의 본체이십니다.

2절에서 이 나타나신 생명이 “영원한 생명” 임을 밝히면서, 이것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 라고 하였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모든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공급하시는 생명의 근원 되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리스는 말하기를, 이 영원한 생명을 단순하게 시간적인 영원, 즉 시간의 연장만을 생각해서는 안되고, 그의 아들을 통해 주시는 생명의 근본적인 것, 즉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영원한 교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17:3절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여기 안다는 것은 지식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을 초월한 관계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곧 아버지와 아들간의 깊은 교제인 코이노니아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이란 무덤 속에 누워있거나, 혹은 깊숙한 금고 곳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며, 그 가운데서도 생명과 생명의 만남, 부딪힘 즉 교제를 통하여 그 가치와 목적을 절대화 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 자신에게도 기쁨이 된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거룩한 교제에 있었고, 이것이 힘이 되어 그리스도로서의 사역을 완수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능력과 가치는,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는 하나님과

의 코이노니아를, 영생을 소유한 모든 그리스도인과의 코이노니아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영원한 생명 속에서 발견되는 놀라운 사실 한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곧 생명 속에 있는 미션입니다.

이것은 이미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속에, 십자가를 통한 온 인류의 구원을 이루는 미션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소유한 이 생명에는 이 세상을 향한 거룩한 복음의 소명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때, 받은 생명으로 이 소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놀라운 것들을 주셨으니, 곧 믿음의 능력과 위로부터 내리는 각양 좋은 은사들입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 그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으로 주어졌고, 그 생명 속에 있는 위대한 사명이 우리를 통하여 세상에 생명을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5.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하나님과 그의 뜻을 우리에게 나타내셨고, 그 자신의 삶을 통하여 말씀의 본질을 나타내셨습니다.

그것은 생명은 말씀을 통하여 주어지며, 말씀은 오직 그리스도임을 말하며, 그래서 사도베드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행4:12)을 기탄 없이 증거한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받아 누리는 생명의 유일성에 대한 무한한 기쁨과 긍지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요한도 4절에서 증거하기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소유나 명예나 능력이나 온갖 자랑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생명의 절대적인 가치와 그 능력을 복음을 통하여 알고, 믿음으로 그것을 소유하고, 마침내 코이노니아를 통하여 체험한 것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하고 자랑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6. 암으로 고통받으며 죽어가던 사람이 기적적으로 생환하였을 때 맛보는 생명의 기쁨처럼, 아니 그런 것으로는 비교할 수 없는 예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얻은 이 영원한 생명은 결코 우리 가운데 가두어 둘 수 없는 기쁨이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원한 생명을 위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와 더불어 교제함으로 그 생명의 능력과 풍성함을 더할 것이요, 더 많은 사람에게 증거하고 자랑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코이노니아를 통해 풍성히 누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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