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25.그 날에 내가 너를(학개 2:20-23)
그 날에 내가 너를(학개 2:20-23/2007.2.25.오전)
1. 한국교회의 병적인 현상 중에 하나가 말로는 하나님 말씀 중심의 신앙이라고 하면서도 삶에서 보면 전부 자기 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말씀들을 아전인수격으로 자기 좋은 대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것처럼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며 로망, 즉 로맨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말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소위 명목상의 크리스천들이 양산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 중심의 신앙보다는 배금주의와 혼합된 타락한 신앙의 홍수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가리켜 우상숭배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것이요, 말씀에 순종하기보다는 자기 욕망을 따르는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의 우리의 모습이전에 이미 이스라엘 가운데 가득한 하나님 떠난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다윗 왕가인 유대왕국의 계승은 공식적으로 기원전 586년, 시드기야 임금 11년에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당함으로 지구상의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유대왕 여호야긴은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바벨론에 배반하자 바벨론은 그를 폐위시키고 아들 시드기야를 꼭두각시 임금으로 세웠지만, 이 시드기야도 바벨론을 배반하자 예루살렘을 에워싼 바벨론 군대를 피하여 도망가다가 사로잡혔고, 그의 눈앞에서 아들들을 죽이고, 그것을 본 시드기야의 두 눈을 뽑고, 쇠사슬에 묶어 바벨론으로 끌어갔고, 그곳에서 옥사하여 죽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유대나라의 마지막 기록들입니다.
사실은 기록들보다 더 생생하고 처참하다고 누군가가 말하였듯이 유대나라의 마지막은 그렇게 처참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명목상의 하나님의 백성들, 그들의 우상숭배의 결과였습니다.
2. 그리고 50년이 지난 기원전 536년에, 유대인에게 호의적인 고레스왕의 칙령을 받아 약 5만여 명의 유대인들이 1차로 예루살렘에 귀환하였고, 그 이듬해에 성전 건축을 시작하여 다윗 왕조의 재건을 시도했지만, 곧이어 사마리아 사람들에 의하여 방해를 받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사람들은 자기 집들을 짓는데 바쁜 나머지 중단된 하나님의 성전 재건은 생각하지도 못한 채 1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성전재건이 중단된 세월동안 대흉년이 들었고, 그런 고통 속에서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가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재건을 독려하였고, 이 모든 재앙과 흉년이 하나님의 집을 방치해 둔 결과였음을 깨닫게 했습니다.
왜 이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해야만 합니까?
그것은 타락한 인간들의 권력에 의한 왕권이 다스리는 국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메시야의 영원한 나라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를 통한 다윗 왕국의 회복이요, 모든 사람들이 죄의 세력을 이기고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는 영원한 왕국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3. 이러한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위하여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 한 사람을 세우셨으니, 곧 그는 스룹바벨이라 이름하는 다윗 왕가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총독으로 임명을 받아 자기 땅에 돌아와 귀환한 백성들과 더불어 성전건축의 대역사를 이룬 인물입니다.
그의 지도아래 이루어진 이 성전건축의 업적은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성전은 솔로몬 성전 이후의 제2의 성전으로 불리웠고, 이후의 제3성전이었던 헤롯성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흔적도 없이 사라진 유대왕가의 새로운 회복의 의미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스룹바벨은 성전건축을 통하여 유대인의 공동체를 새롭게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성경은 그를 가리켜 장차 이 땅에 임하실 영원한 대제사장인 그리스도의 상징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슥6:10-13).
원래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신정통치를 원하셨으나, 이스라엘은 자신들도 이방인들처럼 왕정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를 원했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왕정제도를 허락하셨지만, 죄악은 갈수록 관영 하였고, 인간의 욕심과 교만은 끝이 없었고, 그 결과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전쟁과 기근과 환란을 맛보게 하셨지만, 그들은 쉽게 돌아올 줄 몰랐고, 또한 돌아와서는 곧 이전의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와 축복의 일들을 쉽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4.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의 통치를 받아야 하며, 누구의 인도와 도움을 입어야 합니까?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목자로 삼고, 그분의 통치하심과 인도하심을 입어야 할 줄 믿습니다.
왜 그렇게 해야합니까?
모든 왕들과 왕조들은 인간의 욕심을 따라 왔다가 자신들의 죄 가운데서 죽었지만, 우리의 목자되는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과 영원한 구원을 위하여 스스로 자신을 십자가에서 내어주사 우리의 죗값을 그의 생명으로 대신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이보다 더 큰사랑을 받을 수도 없으며, 경험한 적도 없습니다.
주님만이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 분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시139:7)하였으며, 그러므로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시119:10)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갈 곳이 많을지는 몰라도 저와 여러분에게는 오직 주님의 품안에만 머물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렘17:5)고 하시면서,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렘17:7)고 약속하셨습니다.
5.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에 은혜를 받고, 말씀이 그들의 심령 속에 불 방망이가 되어 역사할 때, 이스라엘은 믿음과 용기가 충천하여 다시 성전건축에 열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습을 보시고 그들에게 19절의 말씀대로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 헌신되어짐과,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위하여 준비되어지고 또한 쓰임 받는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전 건축을 이루는 역사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축되어진 성전을 중심으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 그리고 오고 오는 우리의 믿음의 모든 후손들이 영적 공동체를 이루어 하나님께 예배하며 영광돌리며, 이 땅에서 부르신 그 부름의 소명을 따라 거룩함으로 살아가는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과거에는 스룹바벨을 세워서 메시야의 왕국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를 통하여 이 땅에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이제 곧 하나님은 21-22절에 기록된대로 온 세상과 열방의 권력들과 부귀와 온갖 능력들, 그리고 하늘과 땅을 포함한 모든 것을 흔들어 넘어뜨리실 때, 이 교회는 넘어지지 아니하고, 도리어 세상을 이기고 죄악을 이기며, 만국 가운데 중심이 되어 열방을 통치하는 능력을 얻을 것입니다.
6. 인간의 가치가 어디에 있습니까? 아무리 지식과 능력을 겸비하여도 쓰임 받지 못하면 무용지물입니다.
감사하게도 세상 사람들과 비교해서 잘난 것 하나 없고, 뛰어난 능력도 없는 우리를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구원하실 뿐 아니라, 만에 하나, 천에 하나로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쓰임 받는 일꾼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그 날을 위하여 우리를 예비하신 것입니다.
엄청난 국가 예산을 소비하면서 국가방위를 위해 군대를 훈련시키고 예비하듯이, 하나님은 당신의 그 날을 위하여 우리를 준비케 하시고, 훈련하심으로 가장 영광스럽게 사용하시는 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본을 주셨습니다. 일본을 복음화하기 위해 우리를 이곳에 보내시고, 이 공동체를 중심으로 이 사명 감당하도록 오늘날까지 축복해 주셨습니다.
일본복음화도 우리의 일이요, 세계 선교와 천국일꾼 양성도 우리의 일이며, 성전건축 또한 다른 사람이 아닌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사43:21)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여호와께 헌신되어지고 감동되어진 여러분, 여호와의 그 날에 주의 영광을 위하여 크게 쓰임받기를 서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