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8.2.코이노니아(요한일서1:5-7)
[성경본문] 요한Ⅰ서1:5-7개역개정
5.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6.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코이노니아(요한일서1:5-7/2006.8.2)
1. 일본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和」라는 글자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합니다. 이것은, 온화하다(おだやかな)、포근하다(なごやかな)、또는 한가로운(のどかな)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를 뜯어 분석해 보면, 이네라고 불리는 벼, 즉 쌀을 구찌라는 입과 붙여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이것은 농사지은 것을 더불어 나누어 먹는 것을 「和」로 표현한 것입니다. 즉, 사람과 사람사이의 좋은 관계, 즉 화목, 친화의 관계를 말합니다.
또한 일본의 정신을 야마또다마시(大和魂)라고 하면, 일본민족 고유의 정신을 말하는데, 이것은 용감하면서 깨끗함을 나타내는 정신세계로, 이것 역시 「和」가 중심에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동쪽 끝에 떨어져 있는 섬나라이고 보니, 서로 화합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긴장감에서 나온 것입니다. 오래 살다보면, 일본 사람들의 사이사이에는 그래서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긴장감이 늘 깔려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2.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귐」이라는 단어는 일본의 「和」하고는 반드시 일치한다고는 볼수 없지만, 이「사귐」이란 헬라어로「코이노니아」라고 하는데, 이것은 「나눈다」는 어원에서 파생한 것입니다. 그 뜻은 친교, 교제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도들끼리의 신령한 교제를 표현하는데 사용되고 있는 단어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사귐」인 「코이노니아」를 먼저 빛 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만들어 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차적 사귐의 대상인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왜 우리는 그 분과의 사귐인 「코이노니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까?
3. 우리의 사귐의 대상인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에서,「하나님은 빛이시라」고 밝히고 있는데, 인간은 빛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빛은 생명을 주고, 어둠을 밝히며, 모든 것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빛이야말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가장 적절히 표현하는 단어라 생각합니다. 그의 영광과 그의 거룩하심, 진리와 그의 행하신 모든 일들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속성에 관해서 빛은 가장 타당한 표현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빛을 창조의 행위를 통하여 나타내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3-4). 그의 능력과 권능을 창조의 빛을 통하여 유감 없이 발휘하셨습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은 빛 되신 하나님이 만드셨고, 이 세상 가운데 그의 만드신 빛을 두심으로 우리의 육체와 영혼에 비취게 하셨습니다.
또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빛을 온 세상에 나타내셨습니다.
요8:12절에,「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세상의 생명의 빛으로, 구원의 빛으로, 진리의 말씀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를 통하여 온 인류가 생명의 빛을 얻게 하셨습니다.
4. 사도요한은 요한1서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 가운데서의 삶을 살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빛 가운데서 살 수 있습니까?
빛 되신 하나님과의 사귐인, 「코이노니아」를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7절에 보면,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다 하였는데, 이 사귐의 전제 조건은 우리가 먼저 빛 되신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거듭 인용하거니와, 주님은 우리에게,「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하였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빛이 될 수 없습니다. 먼저 빛되신 주님과의 사귐을 통하여 그 분의 빛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마치 달이 스스로 빛을 낼 수 없고, 태양의 빛을 공급받아 빛을 내는 것과 일반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의 사귐을 통해서만 우리는 빛을 드러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코이노니아」라는 것은, 내가 사귐에 힘을 써야 유지되는 것입니다.
7절에서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다 하였으니, 이것은 행하고자 하는 내 자신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거룩한 사귐 더 나아가서 교회의 공동체의 사랑의 사귐도 결국은 내 스스로 하기 나름입니다.
5. 문제는 이런 사귐을 통해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갑자기 이런 말이 나오게 됩니까?
우리가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서, 이 사귐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우리 안에 있는 죄와 더러운 것들, 온갖 문제점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죄인 된 자신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의 공동체 안에 있는 온갖 문제점을 보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과의 거룩한 「코이노니아」를 통해서 우리는 매일 새로워질 수 있고, 하루하루 성화 되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과 사귐이 있을수록 우리는 더욱 위대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함을 강조하지 않아도, 거룩함을 지나치게 힘쓰지 않아도, 그 분과의 사귐을 통해서 저절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좋던 것도 싫어지고, 이전에는 좋게 보였던 것들이, 그 속에 감추어진 추악함을 발견하게 되고, 습관이 변화되고, 태도가 변화되고, 가는 길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힘으로는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하물며, 남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빛 가운데 행할 때, 그와의 거룩한 사귐을 통해, 먼저 내 자신이 변화되고, 그 변화된 행함을 통해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6.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는 위대한 변화, 즉 재창조의 능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분과 사귀면 사귈수록 내 안에 있는 온갖 어두움은 물러가고, 감추어진 모든 더러움은 사라지는 줄 믿습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들, 고통과 저주와 어둠의 조건들이 변하여 화목과 기쁨과 넘치는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과의 사귐인 이 「코이노니아」는 또 다른 의미에서 거룩한 영적인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재벌회장의 아들이 후계자 수업을 받기 위해 아버지 밑에서 훈련을 받습니다.
모든 것이 보장되었고,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아버지와의 사귐을 통해 그는 날마다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유괴되고 말았습니다.
유괴범들을 그를 묶어 어두운 곳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재벌의 상속자라 할지라도, 풀려날 때까지는 모든 것들이 정지되고, 모든 것들이 박탈된 상태입니다.
7.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코이노니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된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것이지, 우리가 스스로 이 사귐에 게을러지고, 이것을 거부한다면, 우리 또한 모든 것을 잃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을 쉴 때, 어두움과 고통은 우리를 다시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빛의 사귐, 거룩한 사귐 속에 행하는 동안에는 그 어떤 어두움과 고통과 문제들은 우리를 찾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는 성도들과의 아름다운 「코이노니아」를 재창조하며, 이 사귐은 사랑안에서 나와 우리의 모든 것을 복되고 은혜롭고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