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31.여호와께 감동된 사람들(학개 1:12-15)

[성경본문] 학개1:12-15개역개정

12.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

13.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

14.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15.그 때는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이십사일이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여호와께 감동된 사람들(학개 1:12-15/2006.12.31.오전)
1. 지금에 와서 이야기하지만, 이 교회를 처음 개척할 때, 염려도 있었지만 정서적으로 많이 흥분해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이 저에게 감동을 주시는데,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자다가도 갑자기 깨어나면 마치 제 자신이 구약의 선지자가 된 것처럼, 이 시대를 향한 강렬한 메시지가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제 머릿속에 차고 넘쳤습니다. 그러다가 아침을 맞이하고, 어떤 때에는 새벽기도도 가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메시지라면 어느 곳에서 가서도 선지자처럼 외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세월이 5년쯤 흘렀는데, 그 사이에 많은 귀신들을 쫓아내고, 병든 자들이 치료받고, 많은 기도에 응답이 넘쳤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문제 있는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는데, 한 번은 신칸센을 타고 후쿠야마까지 가서 귀신 쫓아내고 그곳에도 교회를 개척하려고 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7년을 사역하고 탈진을 했는데, 3년간 방황했습니다. 교회 오면 설교는 잘 나오는데, 정작 제 자신은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고, 심지어 하나님이 돌아가셨는가 생각했습니다.
새벽기도는 하지만, 그야말로 기도는 허공을 치는 허무한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떤 때에는 너무 심해서 수요일에 교회를 갈 수 없어서 아내보고 가서 설교하라고 하고 저는 집에서 혼자 끙끙 앓았습니다.
그런데 교회 처음 시작할 때 저희 부부를 포함하여 7명이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 아니라 그야말로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켜 데려다 놓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잠을 못 자도록 많은 생각과 말씀들을 주시니까 설교를 준비할 때, 타자기로 치는데, 정말 손가락에서 설교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타자기를 두드리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지난 9월 달에 눈물방울의 흔적들이 남아있던 그 때의 원고들을 다 버렸습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은혜였고 모든 것이 훈련이었습니다.
지금도 권사님들, 집사님들이 잘 하고 계시지만, 그 때 우리는 너무 가난했고,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보다 더 열심이었고, 순수했습니다.
그 때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제목대로 여호와께 감동된 사람들입니다.

2. 제가 성경을 읽다가 여호와께 감동된 사람들을 제일 처음 접한 곳은 출애굽기 35장에서 성막을 짓는 일을 위해 하나님께 감동된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이스라엘의 남녀들이 앞을 다투어 자원하여 예물을 가져오는데 전부 자기들의 최고의 보물들,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얻었던 보물들을 가져오는데 36장5-6절에는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의 명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다고 했고, 모세는 그만 가져올 것을 명령했고, 그 때에야 사람들이 가져오기를 그쳤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감동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 중에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는 하나님이 지혜와 총명을 부어주셔서 성막 짓는 일에 크게 쓰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머지않아 성전을 건축해야 하는데, 이 일은 우리의 능력이나 의지나 계획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켜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 백성의 남녀를 감동시켜 광야에 하나님의 성소를 세우게 하신 그 감동이 2007년도 새해에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3.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백성 전체가 다시 하나님에 의해 감동을 입게 되는데, 그것을 본문은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켰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흥분은 히브리어로 “우르”라고 하는데, 이것은 눈을 뜨다, 일으키다, 자각하다, 마음에 감동을 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일을 외면하고 자기 일에 바쁜 나머지, 살아 움직여야 할 그 심령이 잠을 자는 것을 일깨우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의 성령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받을 때에 흥분되고 감동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광야시대에도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여호와의 계명을 받고 내려와서, 그것을 백성들에게 전할 때에 백성들의 마음이 흥분되었고, 감동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에도 성막을 지을 것을 명령받자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이 그 마음에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감동의 역사는 여호와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임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히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곧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믿음으로 받으면,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인격과 능력을 가지고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변화는 시간문제입니다. 왜? 주님이 내 안에서 나를 변화시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4. 학개 선지자를 통해 그들이 받은, 감동을 불러일으킨 말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주”가 되심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을 짓다가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 귀한 사역에서 자신들이 배제된 것을 알고는, 이 일을 이루지 못하도록 집요한 방해를 한 결과, 사람들이 낙심하고 이일을 손에서 놓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16년이 흐르고 만 것입니다.
그 잃어버린 16년의 세월을 통해 그들은 급속도록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축복과 은혜가 아니라, 재앙과 고통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은바 사명을 망각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들의 주인이 되심을 잊을 때, 그들의 심령과 삶은 황폐함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토록 수고하며 열매를 열망하여도 만족한 열매를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지만, 최악의 불황이 16년 동안 지속된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받은바 사명을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방치함으로 남은 것은, 이기주의와 황폐한 환경뿐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참담한 상황 속에서 들려오는 학개 선지자의 외침은, 실망과 침륜에 빠진 그들에게 용기와 확신을 주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요, 우리의 능력이요, 우리의 피할 바위며, 견고한 산성이며, 유일한 소망입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목자시요, 그 분만이 우리 인생의 빈 잔을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5. 학개 선지자를 통해 들은 여호와의 말씀은 그들의 잠자는 영혼을 깨웠습니다.
이기주의에 빠졌던 마음을 놀라게 했습니다.
자기 일에 바쁜 나머지 잃어버리고 기억에서 사라져버렸던 거룩한 부르심의 소명에 대한 사명을 자각하고 크게 흥분하게 만들었습니다.
21세기의 기독교인의 특징을 감히 한 마디로 말한다면, 무능한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 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니라”(눅17:6)고 말씀하셨는데, 우리에게는 그만한 믿음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 청종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들어도 행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핑계하기를, 그 일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내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핑계하거나, 물질을 핑계하거나, 건강이나 다른 이유를 말하지만, 언제 하나님이 우리의 능력과 물질을 붙들고 역사한 적이 있습니까?
오직 우리의 믿음을 붙들고 역사하셨고, 우리의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에 은혜와 축복을 주셨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언제 임합니까?
말씀을 듣고 받은 감동을 따라 헌신하려고 일어설 때입니다.
그 때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사 감당할 능력 주시는 줄 믿습니다.

6. 학개 선지자의 설교를 통해 마음에 감동된 사람들이 일어섰습니다.
그들은 16년간 쉬었던 역사를 놀랍게도 3주 만에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마음이 굳세어졌고, 이 일을 이루기까지 두 번 다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으로 감동받은 자는 하나님의 일을 뒤로 미루지 않습니다.
자기 생활의 우선순위에 하나님의 일이 있습니다.
저들은 마침내 기원전 516년에 성전 재건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그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외관으로 하자면,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은 보는 사람을 압도합니다. 이탈리아를 돌아보면, 가는 곳 마다 최고의 건물은 성당뿐입니다.
베네치아에 가면 그 좁은 땅덩어리에 골목을 돌면 성당이고, 길 건너면 성당이고, 온통 교회건물 뿐인 것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그 건물들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 나라의 상징이며, 백성들 가운데의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건축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황폐한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도록 격려하신 목적은, 그들 가운데 메시야의 왕국이 임하도록 함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명령에 감동하고 흥분하여 일어선 하나님의 백성들은 한결같이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였습니다.  

7. 하나님이 선자지를 통하여 말씀하실 때, 무신론자는 무관심으로 반응합니다.
반신론자는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회의론자는 의심합니다. 그러나 12절의 “남은 자”로 불리우는 이 그루터기 같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가지고, 곧장 순종함으로 반응하였고, 하나님은 그들의 일을 이루도록 도우셨습니다.

2007년도는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교회의 4대 목표를 포함하여 하나님의 기쁘신 일들에 큰 역사를 이루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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