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22.인생의 제 1순위(학개 1:1-11)

[성경본문] 학개1:1-11개역개정

1.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2.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3.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4.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5.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6.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7.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8.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9.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10.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11.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인생의 제 1순위(학개 1:1-11/2006.10.22.오전)

1. 학개 선지자는 말라기, 스가랴와 더불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B.C536년에 고레스왕의 칙령에 의해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유대인들 속에서 사역한 포로기 이후의 선지자들입니다.
학개를 포함한 그들의 사역을 마지막으로, 온 이스라엘에는 선지자들의 외침이 끊어졌고, 세례요한이 오기까지 약 400여 년 동안 이스라엘은 선지자가 없는 암흑의 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학개 선지자의 음성은 구약시대의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음성이기도 했습니다.
학개는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을 격려하고, 장차 오실 메시야를 소망하며, 그것을 준비하도록 성전을 재건하는데 중점을 두고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귀환한 유대인들은, 조국의 황폐한 모습과 무너진 성전을 외면하고 자기들의 집을 짓는데 만 열중함으로, 하나님의 성전은 16년 동안에 방치되고 말았습니다.
이 때 학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을 먼저 짓는 일의 중요함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는 성전건축에 중요한 의미를 두었고, 이 성전건축은 장차 오실 메시야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이며, 동시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중요한 기회임을 강조하였습니다.
한국교회가 성전건축에 지나치도록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메시야를 만나고자 하는 열망과 동시에 하나님의 축복을 동경하는 신앙적 동기에서 출발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이 시대의 학개 선지자를 통해 성전건축을 명령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먼저 성전의 의미, 특히 학개 선지자 시대에 있어서의 성전의 의미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계심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애급에서 고통하는 히브리민족을 모세를 통하여 구원하여 자기 백성을 삼으셨고, 택한 백성인 그들 가운데 계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광야시대의 어려운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그들 12지파 가운데 성막을 짓고 법궤를 안치하여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계심을 나타내었던 것입니다.
또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성전을 건축하여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은 그들 가운데 오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둘째로, 이 성전은 선민된 이스라엘의 신앙의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나라와 민족의 구심점이 왕이나 어떤 세상적인 힘을 중심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택함 받은 선민이 성전을 중심으로 여호와를 믿고 따르는 하나님 중심의 이 신앙이 이스라엘의 공동체를 이루고 유지함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 교육이 성전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잃고 지구촌 사방으로 흩어져 버린 디아스포라가 되었을 때에도, 회당을 만들어 회당이 그 지역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심점이 되게 했습니다.

셋째로, 이 성전은 장차 오실 메시야를 대망하며, 그의 오심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상징적인 장소로 여겼습니다.
메시야가 오셔서 견고하고 영원한 이스라엘을 이루심을 믿었습니다.

3. 그러므로 선지자 학개는 무너지고 황폐한 성전으로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도록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온전한 신앙의 공동체를 맛볼 수도 없었으며, 대망하는 메시야를 바라보기에는 너무도 부끄러웠던 것입니다.
저들은 지금도 자기 집을 짓는 일에만 바빴고,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만들면서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그 위에 그들의 좋은 핑계거리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혼혈과 혼합종교로 인하여 유대인 공동체에서 배제되었던 사마리아인들에 의한 성전재건의 방해가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핑계거리와 방해는 결국 16년의 세월을 허비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시대에도 믿음의 공동체 안에는 늘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귀환한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마치 구경꾼들처럼 다른 사람들의 뒷전에 서서 머뭇거리면서 주어진 사명과 소임을 게을리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자신을 드리기 보다는, 도리어 자기의 몸을 아끼고, 자신의 재산이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하고, 환란과 어려움이 올 때에는 제일 먼저 숨거나 도망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결과, 오늘 본문 6절에 기록된 것처럼,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 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계속해서 10-11절에 기록된대로, 모든 만물들과 자연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좋은 것들을 막아버림으로, 아무리 수고하여도 남는 것과 얻는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4. 그러나 또한 부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뜨거운 신앙심을 가지고 믿음의 공동체의 선두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거룩한 소명과 소임을 감사히 여기고, 주신 그 소명에 충실하고자 자신의 전부를 주를 위해 희생하기를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야말로 그들의 모습은 불나방이 뜨거운 불 속에 자신의 몸을 스스로 던져 불사르는 것처럼, 사람들이 볼 때에는 너무 어리석고 무모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하여 자신을 불사르고자 하는 그런 믿음의 열정을 가진 자들을 축복하셔서,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놀라운 계획들을 성취해 나가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더 큰  믿음을 주시고, 더 큰 능력을 주심으로, 그들의 삶과 모습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를 나타내고 계십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다니엘의 3친구가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걸었을 때, 당장은 풀무불에 떨어졌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생명을 그 풀무불 속에서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그 불꽃 가운데에서 함께 하셨고, 또한 그들의 생명과 육신을 건지셨습니다.
또한 다니엘은 왕명을 어기고,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을 향하여 하루 3번씩 창문을 열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 기도함으로 사자굴에 떨어졌지만, 하나님은 모든 사자들의 입을 봉하여 그의 생명을 지키시고, 머리카락 하나도 손상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바로 그 밤에, 다니엘이 사자굴에 떨어진 그 시간에, 하나님은 다리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킴으로, 다니엘을 대적하는 모든 대적들을 그 사자의 밥이 되게 하시고, 다니엘은 그곳에서 구원하셨습니다.

5. 오늘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생명을 걸고 소명에 충실한 자를 우리 하나님은 절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끝까지 도우시고 축복하시듯이,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에 신실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은 분명한 대가를 치르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에게는 핑계할 만한 그럴듯한 이유들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속지 아니하셨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1:2)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예정된 시간표에 부정적이었고, 그러므로 불평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그들의 삶의 우선순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때가 되었기 때문에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선포되어진 말씀을 실행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생각과 형편만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세상에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하시며,“세상에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는(고전1:27-28)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무능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 없음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지혜가 없으심이 아니라, 우리의 게으름과 충성되지 못한 자세가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의 병을 치료하며, 잘못된 삶을 바로 잡아주며,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에 평안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6. 주님은 우리의 의식주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분명한 사실 한 가지를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가난과 실패, 그리고 내 힘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이 많은 문제와 고통들이 어디서 왔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핑계하면서, 뒤로는 자신의 개인적인 일에 열심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지혜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은 시골 목동 출신이었지만, 하나님 잘 섬기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15살에 사무엘을 만나 기름부음 받았고 20살에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겨, 이스라엘을 구원하였고, 30살에 유대왕이 되었고, 35살에는 통일왕국을 이루었습니다.
우리의 삶, 우리의 모든 문제를 주님께 의탁합니다. 주님이 행하시도록 맡깁니다.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온전히 드리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의 성전 건축은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며, 깨어지고 흩어진 민족의 공동체를, 메시아 신앙으로 새롭게 구성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7. 이 시대에도 우리에게는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소명이 있습니다. 그 소명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모든 문제들과 행함을 주님의 십자가 밑에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그리고는 지금 이 시점에서,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내 인생의 제1 순위가 무엇인지 깨닫고 주신 말씀에 지금 즉시 순종하는 축복된 결과를 있기를 바랍니다.  
그 후에,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고, 하나님은 우리의 삶과 영혼에 넘치는 축복과 은혜로 채우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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