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7.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학개 2:1-5)
[성경본문] 학개2:1-5개역개정
1.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
3.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4.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5.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학개 2:1-5/2007.1.7.오전)
1. 학개 선지자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 감동 받은 이스라엘은 16년 간 방치했던 성전재건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성전 재건을 시작하는 시기가 안식일과 더불어 나팔절기, 속죄일, 그리고 유월절 이 계속 이어짐으로 사역을 중지해야 하는 날들이 많았고, 그 위에 1년 동사의 농사를 거두어들이는 수확기와 맞물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성전 재건의 속도가 상당히 늦었습니다.
또한 두 번째 이유로는, 본문 3절에도 나타나듯이, 자신들이 아무리 열심을 내고, 정성을 다해 성전을 재건한다고 하여도, 이전에 있었던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해 볼 때, 자신들의 수고의 결과가 너무도 초라할 것이라는 사실로 인하여 사람들이 벌써 낙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그의 부친 다윗 왕 때부터 준비해온 것으로, 많은 재물과 금은보화로 오랜 세월동안 준비해 왔고, 외국으로부터 수많은 숙련된 기술자들을 불러와서 성전건축을 돕게 하였고, 성전 내부는 순금으로 치장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자신들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결과를 보여 줄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아무래도 16년의 세월동안 방치되고 중단되었던 일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힘이 더 들었기 때문입니다.
2. 그러므로 학개 선지자는 다시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 그들에게 선포합니다.
본문 3절 이하에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포함한 전 이스라엘을 향하여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하였고, 계속해서「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유월절 기간의 마지막 날에 주어진 멧세지로,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였을 때, 그 때 하나님이 지도자 여호수아를 포함하여 그 백성들에게 하셨던 말씀입니다.
이 반복된 메시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5절에 보니,「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했습니다.
여기 머물러 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오메데트」로 그 의미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끊임없이 계속 머물러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의 조상인 히브리민족이 출애굽 하던 그 때에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을 도우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 지금 하나님께 감동되어 성전 재건의 사명을 위해 일어선 이 사람들에게도 변함 없이 함께 하시며, 그들을 도우심을 확신케 하도록 함에 있었습니다.
과연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그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함께 하시며 그를 도우셨고, 출애굽의 역사를 이끄신 그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지고 오늘 21세기의 한 가운데로 통과하고 있는 이 오사카 중앙교회의 성도된 우리들 가운데 임재하시고, 도우시고, 또한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3.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면서 그 백성을 도우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받은 바 사명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아직도 어려운 환경과 조건 속에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사명을 위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고국 산천을 다시 밟고, 이전에 이스라엘의 영광 속에서 예배하던 예루살렘의 성전이 무너진 것을 보고는 살을 베고, 뼈를 깎는 수고를 해서라도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해야겠다는 감동과 은혜가 있었지만, 결국에는 주어진 환경과 조건 때문에 그 받은 사명과 감동을 헌신짝처럼 던져 버렸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아무리 노력해도 풍요함을 맛볼 수 없었고(1:9,2:16),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함을 맛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1:6).
도리어 기근과 질병과 환란과 재앙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이 특별한 사명을 현실과 타협함으로 망각했던 것입니다.
주신 사명을 망각하고, 성령에 감동된 것을 애써 외면할 때,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은 결과를 맛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렵더라도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학개 선지자는 이스라엘 가운데는 하나님이 임재하실 뿐만 아니라, 성전재건의 사역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음을 확신케 하면서, 온 이스라엘의 전적인 순종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19절에서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선포하였습니다.
4.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며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오늘에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으면서 소위 문화생활 하는 것들 속에도 유대인들이 세계시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백화점을 최초로 시작한 사람도 유대인이고, 우편 주문 방식의 홈 쇼핑도 유대인이 만들어 냈고, 프란차이즈 방식으로 세계를 석권한 던킨 도터츠도 로젠버거라는 유대인이 만들어 성공했습니다. 의류, 디자이너계통, 헤어스타일, 심지어 샴퓨도 유대인이 창안하고 그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영화감독이나 제작사도 유대인들이 지배하고 있고, 노벨상이며, 세계 경제, 정치, 문화도 지배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청바지인 리바이스도 레위 스트라우스라는 유대인이 만들었고, 켈빈 크라인, 게스, 죠다쉬, 폴로, 다 유대인이 만든 메이커입니다.
폴로의 랄프로렌은 어려서부터 페인트공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페인트 일을 돕다가 색각감각에 눈을 뜨고, 나중에는 탁월한 실력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특이한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부모와 함께 생활하면서, 부모의 일에 함께 참여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장을 보면, 아이들을 시설에 맡기고, 백화점의 탁아소에 맡기고 혼자서 장을 봅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어린 아이를 데리고 함께 장을 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경제와 물건을 보고 선택하는 것에 남들보다 뛰어난 감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이 모든 성공의 배후에는 살아계시고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을 도우시고 축복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5. 비록 성전이 외양으로는 이전 것보다 보잘 것이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들의 수고와 희생으로 완성되는 성전을 통하여,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며(1:8),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1:13).
뿐만 아니라 성전이 완공될 때까지 그들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도우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2:4).
오늘 우리에게도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국가와 민족적으로 온 세상이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우리가 주께 받은 바 사명 앞에 새 힘을 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낙심했고,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했고, 얼마나 많은 사명 앞에서 핑계하면서 도망갔습니까?
그러나 더 이상 그렇게 도망갈 필요가 없습니다.
낙심한 자들을 일으켜 세우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오, 그들을 감동시켜 새 힘을 베푸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19절의 「오늘부터는」이라는 말씀은 우리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과거와 비교해서는 안됩니다. 남들과 비교해서도 안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며, 그를 의지하고 따라가면서 순종하는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중요한 것입니다.
6. 성전의 건축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적은 능력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성전 재건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는 하나님을 향한 흔들리지 아니하는 믿음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건축물이지만, 그곳에서 자기 백성을 향하여 축복하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 임마누엘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사실 이스라엘에게는 성전이 이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중요하고 절박한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전 민족의 공동체의 중심입니다.
제사장들은 이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르쳤고, 백성들은 이곳에 찾아와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면서 예배와 기도를 올렸고, 사죄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이곳에서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한 자기들의 충성과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지도자들은 이곳에서 가난한 자들과 어려운 자들을 성전의 소유한 것으로 보살피고 도왔습니다.
하나님은 이곳 예루살렘 성전을 통하여 자기 백성들을 만나시고, 그들을 거룩하게 하였고, 그들을 이끌며 다스렸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 나라의 축소판이요 그림자였고,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장소였으며, 장차 올 미래의 영원한 메시야의 왕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침공할 때, 성전의 기물들을 다 빼앗고, 성전을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선민된 이스라엘의 민족적, 종교적, 정신적인 맥을 성전을 파괴함으로 끊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7.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이 없으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기 어려웠고, 그의 영광을 볼 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맥을 이어가는 것도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 재건은 온 이스라엘에게는 그 만큼 중요한 사명이요 절박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학개 선지자는 다시 외치기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하였고, 또한「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전 건축에 온 힘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께 받은 바 사명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많은 난관과 어려움, 시험을 만나게 됩니다. 그 때 대부분의 경우에는 낙심하고, 사명에서 떠나고자 하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향하여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슥4:6절에 보니,「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내 힘과 능력을 믿고 달려왔기 때문에 실망하고 낙심하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받은 바 사명에 충성한다면,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한국의 안산제일교회의 어느 집사님은 남편 없이 어린 자녀들을 키우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불치병에 걸렸습니다. 의사도 고칠 수 없는 이 병을 붙잡고 결사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보름만에 기적적으로 완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3-4달이 지난 후에, 장녀가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고 장학금을 받아 왔습니다. 집사님은 자신이 병중에 아이들이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친척집을 다니면서 이리저리 신세지면서도 1등을 했으니, 이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요 도우심이다.
그러니, 이 장학금을 하나님께 드리자고 했더니 딸아이도 찬성하고는 교회 헌금으로 드렸습니다. 이것은 누가 시킨 일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축복을 생각할 때, 스스로의 가슴속에서 견딜 수 없는 뜨거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의 큰 역사를 바로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그들의 믿음을 붙들고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어진 영광과 미래의 놀라운 축복에 이르기까지는 내 힘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현실은 너무 어렵고, 우리는 너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어 그의 도우심을 구하고, 성령님을 통하여 베푸시는 확신과 그의 능력에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진 것과 우리의 능력을 보지 않습니다.
그를 의지하고자 하는 그 믿음을 보시고, 그 믿음을 붙잡고 역사하시는 줄 믿습니다.
성전건축의 소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때 위로부터 놀라운 능력과 은혜가 임하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