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15.내게 있는 예수의 흔적(갈라디아서 6:16-18)
[성경본문] 갈라디아서6:16-18개역개정
16.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17.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18.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제공: 대한성서공회
내게 있는 예수의 흔적(갈라디아서 6:16-18/2006.10.15.오전)
1. 갈라디아서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삶이라고 할 것입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서신의 마지막에서도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의 삶을 강조하면서, 17절에서는 자신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정체성을 심도 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에게 있는 이 「예수의 흔적」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오늘 그의 몸에 남겨진 이「예수의 흔적」을 밝히면서 갈라디아서 강해를 마치고자 합니다.
2.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이 흔적은 헬라어로「스티그마」로, 역시 같은 문신 자국이나 종교상의 낙인들을 가리켜 말하고 있습니다.
「스타그마」의 원형인 「스티조」라는 단어는 찌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 나타난 형태로는, 어떤 일을 하다가 그 일 때문에 얻은 상처나 흔적을 나타내기도 하고, 노예처럼 그 소유를 표시할 때에 일부러 만든 상처를 의미하기기도 합니다.
사도바울 당시의 로마제국에는 바울 같은 시민권을 소유한 사람들과 더불어 많은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노예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들도 많았지만, 이웃나라와의 전쟁을 통해 많은 노예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예들에게는 이마나 손등 같은 곳에 낙인을 찍어 그 신분을 표시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경우에는 도망을 방지하고, 그 소유를 인정받기 위해서 찍었습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의 경우에도 여러 가지의 이유로 인한 문신들이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이유로서는 신전에 사제로 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그 신전과 섬기고 있는 신의 소유됨을 나타내기 위해서 스스로의 몸에 낙인을 찍었습니다.
또한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병사들의 경우에는 지휘관의 이름으로 그 소속을 나타내는 문신을 몸에 새기기도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상품의 마크나 브랜드를 표시할 때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이「스티그마」는 전 신약성경을 가운데 오직 오늘 본문에만 유일하게 등장하는 단어라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새사람 된 갈라디아 교인들처럼, 아니, 자기 자신에게는 그들의 「신생」의 의미 이상으로 중요한 흔적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예수의 흔적」인 것입니다.
3.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예수의 종 사도로서 부름 받은 자기 자신만이 가진 복음의 흔적입니다.
직업을 가지고 일하다가 보면 험한 직업일수록 직업병도 얻지만, 그 사람의 몸의 어딘가 그 직업으로 말미암는 상처나 흔적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목수의 경우는 멍든 자국이나 찔리고 잘린 흔적들이 있고, 용접공의 경우는 사방으로 튀는 불똥으로 인해 여기저기 작은 화상들이 남기 마련입니다.
바울은 경우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에게서 받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처럼,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당해야만 했던 많은 시련과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복음 때문에 억울하게 맞은 수많은 맷자국들입니다.
유대인에게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고, 3번의 태장과, 한 번의 돌로 몰매를 맞아 죽음직전 까지 간 것들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 번의 여행의 위험과, 강도와 동족 유대인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 그리고 광야의 위험, 거짓형제들로 인한 위험이며,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춥고 헐벗음의 위험들을 그는 전도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경험해야 했습니다.
4. 그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입고 당한 이 수 많은 흔적들을 부끄러워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이 흔적들을 자랑했고, 오늘 본문에서도 그 흔적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해 아래서 수고하는 인생의 모든 것들이 다 헛되다고 4번씩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롭고, 능력 있고, 위대한 일을 이루었다해도, 과연 그것이 그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전도자 바울은 자기 몸에 난 수많은 상처자국들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십자가 복음으로 인한 상처이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전파는 주님이 그에게 주신것 가운데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몸에 어떤 상처자국을 가지고 있습니까?
미친개에게 물린 상처입니까? 술 취해 넘어져 다친 상처입니까?
아니면 이웃 사람과 싸우다 입은 상처입니까? 혹은 나라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서 얻은 애국의 상처입니까?
5. 우리가 세상에서 입은 상처가 그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었든지 간에,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말미암는 상처보다는 더 값진 것이 없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세상으로 말미암아 얻은 상처들, 내 육체를 위한 상처들은 내 생명이 다하여 내 몸이 땅 속에 묻히는 순간, 모든 명예와 자랑들과 그것들을 얻기 위해 씨름하다가 입은 모든 상처들도 함께 장사지낸바 됨으로, 지구상의 모든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이지만, 십자가 복음을 위해 받은 상처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영원한 영광으로 바뀌는 줄 믿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 예수 복음으로 말미암아 입은 이 상처들은, 바울로 하여금 복음의 열정을 더욱 부채질하고 말았습니다.
갈리디아 지역을 전도하던 중, 루스드라에 이르러서는 그곳에서 돌에 맞아 죽음 직전까지 갔지만, 다시 깨어나서 루스드라에 들어갔다가, 성하지 못한 몸을 가지고는 다음 날, 더베로 가서 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하노라」(갈4:19)고 고백하였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일본 복음화를 위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소명이 있는 줄 믿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하나님이 이 땅에 우리를 보내시고, 이곳에서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우리의 몸에 복음으로 인한 영광의 상처가 넘쳐나기를 원합니다.
6.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는 말의 두 번째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인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려고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의 흔적입니다.
십자가의 흔적은 복음을 위해 당한 흔적처럼 우리의 몸에서는 잘 보여지지 않지만, 우리의 심령과 인격의 지성소에, 그의 흘리신 피로 붉게 물들어져 있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나를 위해 고난 당하신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눈물이 없이는 바라볼 수 없는 그 사랑에 감격하여 흘리는 눈물의 십자가가 되고 만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과거가 예수 십자가를 저주하고, 믿는 무리들을 핍박하여 교회를 파괴하는 죄인 중의 괴수의 신분이었던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구속하실 뿐 아니라, 복음을 위하여 사도로 불러주신 그 소명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이 구원받는 일이라면, 자신은 저주를 받아 영원히 죽는다 할지라도 내가 원하는 바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내 민족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이라면 그 어떠한 결과도 기쁨 마음으로 감사하겠다는 것입니다.
7. 정말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것에서 나를 위해 살을 찢고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혹한 모습이, 하나님 앞에 버림받아 절규하는 그의 모습이 보입니까?
그렇다면 그가 나를 위해 죽으신 그 사랑이 무엇이며, 또한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144장)
교회 안에는 지금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흔적들과 증거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옆 사람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바로 이 사랑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가 십자가에서 생명을 버림으로 영원히 얻은 생명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 자신들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환란과 풍파가 우리를 향해 달려온다고 하여도, 바울의 고백처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고 하면서, 그 어떤 것들도 「우리를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롬8:35, 39)다고 하였습니다.
8.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는 말의 마지막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보는 소망의 흔적입니다.
환란과 고통 속에서 이 허무한 인생의 하루 하루를 연명하는 것은 불신자들에게는 산 지옥 같은 곳이 바로 이 세상입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이 모진 목숨을 어쩔 수 없이 연장해 가는 것이 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진 목숨을 이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절대적인 당위성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그것은 영혼 구원하는 일과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우리에게는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14:2-3절에,「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믿음의 조상들은, 고난의 인생의 그늘에서도, 환란과 핍박의 고통 속에서도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믿음의 인내를 경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우리 몸에 새겨진 복음으로 말미암은 고난의 흔적들과, 십자가에서 한 방울의 피도 남기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 다 쏟으신 그 사랑의 보혈의 흔적들을 우리 심령과 인격의 지성소에 새긴 채,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그의 베푸실 상이 있는 줄 믿습니다. 이 예수의 흔적으로 마지막까지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