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8.우리의 자랑(갈라디아 6:11-15)
[성경본문] 갈라디아서6:11-15개역개정
11.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12.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13.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1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5.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우리의 자랑(갈라디아 6:11-15/2006.10.8.오전)
1. 사도바울은 편지를 쓸 때에는 다른 사람을 시켜 대필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 부분에 가서는 직접 펜을 들어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눈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갈라디아 서신만큼은 사도바울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기록하였습니다.
11절에 보면,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는 말씀은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바울의 직접 쓴 편지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 있는 거짓교사들인 유대주의자들로 인하여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는 갈라디아교회의 신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감정이 매우 흥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대필을 했다면 그의 솔직하고 강한 감정이 그대로 나타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은혜 받고자 하는 내용은 우리 인생의 자랑에 관한 것입니다.
세상에 나가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자랑거리가 있습니다.
권세를 자랑하고, 지식을 자랑하고, 돈을 자랑하고, 건강이나 가문을 자랑하고, 자랑할 것이 없으면, 이전에 보니까 양말에 붙은 배용준이 얼굴 사진을 자랑합니다.
세상의 자랑이란 한 마디로 타인에 대한 우월감에서 오는 것들입니다.
바울이 11절에서 큰 글자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친필로 쓴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 자랑은 다 헛되고 죄 된 것이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자는 것입니다.
2.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의 것들로 자랑할 수 없습니까?
15절에 보니,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즉, 세상으로 말미암은 육체적인 것들은 율법에 의하여 할례를 했던지,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말미암은 무할례가 되었던지, 육체 그 자체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도리어 우리의 신앙생활에 방해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대단한 자랑거리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전에는 권세도 있었고, 학문도 있었고,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이요, 유대인으로서 로마 시민권이라는 특권 계급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입은 이후로는, 세상에 대하여 더 이상 힘 있는 자도, 자랑거리가 있는 자도 아니며, 그야말로 죽은 자와 방불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고 했습니다.
3. 이것은, 예수 십자가 사건이 바울로 하여금, 자랑스럽고, 좋았던 세상에 대하여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존재가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바울로 하여금 세상에 대하여 죽은자가 되게 하였고, 세상 또한 바울에게는 죽은 자 같이 되고 말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바울의 가치관 변화를 말합니다. 15절에 보면 “새로 지으심을 받는 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고후5:17절의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과 똑같은 말인 '카이네 크티시스' 라는 헬라어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카이네'는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고, '크티스마'는 이미 창조되어진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후5:17절에서,“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새 사람은 생각하는 것과 행하는 것에 있어서 옛 사람과 다릅니다.
지금까지는 경험이나 지식이나, 전통으로 세상을 보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을 볼 때에는,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여, 지금까지는 느낄 수 없고 경험할 수 없었던 것들이 경험되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통용되던 세상의 기준들은 내 삶에 영향을 주지 못함을 깨닫게 됩니다.
과연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바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4. 우찌무라 간조는 一日一生이라는 자신의 일기에서 6월20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에게 자신을 주셨다.
그에게 있는 생명을 주셨고, 성령을 주셨다.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다.
인내와 소망과 기쁨을 주셨다.
그렇다, 그는 나에게 하나님을 주셨고,
하나님과 더불어 우주 만물을 주셨다.
그는 나의 죽을 영혼을 살리시고, 부하게 하시고
또한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나의 모든 것 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경험을 누리는 자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숩니다. 그 은혜와 사랑과 기쁨은 세상 모든 것을 준다고 해도 결코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 안에는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도리어 육체를 자랑하며 남들의 믿음을 파선시키는 거짓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위 유대주의 자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보다는 율법을 더 중요시 하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이 사람들의 간교한 꾀를 간파하여 본문 12-13절에서 다음과 같이 그 정체를 폭로하고 있습니다.
1)육체를 자랑하는 사람들이요,
2)복음으로 인한 핍박을 면해 보려는 사람들이요,
3)자신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서, 남에게는 그것을 강요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5. 그들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13절을 쉽게 해석하면 그 대답이 나오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할례받는 그들 자신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너희 육체를 이용해서 자기의 자랑을 하기 위하여 너희로 할례 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라”.
오늘날에도 이와 유사한 유대주의자 같은 거짓된 교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정체는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도적이며 강도며, 삯군 목자들입니다.
그들이 와서 이리처럼 양들을 늑탈하고 헤친다고 했습니다(요10:10,12).
그러나 선한 목자되신 주님은 양들인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주님의 이 같은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습니다.
6.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부터 무엇을 해야 합니까?
바울의 고백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1)먼저 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죽은 사람의 특징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어떤 마음도 먹을 수 없습니다.
오직 모든 뜻은 산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100% 순종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새로운 피조물로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3)그 결과, 나를 새롭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 십자가의 복음을 자랑하며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7. 자녀들이 공부를 하다가도 군대에 가면 신분이 변화됩니다.
학생이나 직장인이 군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신분의 변화는 생활의 변화를 의미하며, 동시에 목적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목적은,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벧전2:9)에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 일본 사람들과 세계 지구촌의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증거할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가 영원히 자랑하고 증거하고 기념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