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6.7.십자가는 무엇인가?(요한복음12:23-24)📺
[성경본문] 요한복음12:23-24개역개정
2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십자가는 무엇인가?(요한복음 12:23-24/2026.6.7.오후)
1. 1970년대 시작된 한국의 아메리칸드림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절정기를 이루었습니다. 그때 미국 내 이민 국가의 순위가 1위는 멕시코, 2위는 필리핀, 그리고 3위가 한국이었습니다.
모두 가난한 국가들이었습니다. 오죽하면 한국인으로서 미국으로 가는 길이 쉽지 않아서 한때는 일본을 거쳐서 미국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선교사로 일본에 왔고, 주위 사람들은 제가 미국에 가기 위해서 일본에 왔다고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을 향한 이민이 감소하기 시작했고,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 꾸준히 역이민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렵게 미국에 가지 않아도 이제는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또한 이민 1세대들의 노령화로 인해 귀소본능이 작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교포들이 막상 한국에 와보니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2의 문화충격과 사회적인 고립감으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습니다.
같은 한국인이면서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유튜브에서 어느 60대 역이민자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한국에 들어올 때 미국에서 타던 벤츠를 가져왔고, 미국의 재산도 처분해 어느 정도 가져왔으니 경제적인 큰 어려움은 없었고, 그러다 보니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과 몇 번 어울리면서 느낀 것은 도대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모이면 자식 자랑이니 과거의 경력이나 노후의 보장된 재산 자랑이나 하고, 늘 놀고먹는 것에 관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거리가 생겼고, 결국에는 가까이하면서 만나 식사하고 대화하는 사람들은 같은 처지의 역이민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살다가 돌아와 보니, 한국 사람들과 생각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르고, 그러다 보니 아무리 대화를 나누어도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 공감대라는 것은, 어떤 상황이나 감정이나 의견에 대해서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네가 생각하는 것을 나도 생각하고 있고, 당신들이 느끼는 감정을 우리도 느낀다는 것입니다.
내 나라에 돌아와서도 이런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해서 미국으로 되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은퇴하고 나면 취미생활이나 맛집을 찾아다니며 소일하고, 자식 자랑에 내 노후가 얼마나 많이 준비되어 있는지 그런 것들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수십 년 살다 온 사람들은 돈이 있어도 알바를 하면서 남은 삶을 충실하게 살려고 하는데, 이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결국 만날수록 이질감이 생기고 그래서 거리가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주님의 몸 된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와서 잠시 예배하고 대화해 보다가 가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그들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또한 우리도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친절하게 대해도 새로 나온 사람들과 기존 성도들 사이에 이런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면 결국 사람들은 그 교회를 떠나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해서 사람들이 떠나는 이런 현상에 대한 문제를 오늘 본문이 그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 교회의 모습을 생각하며, 또 우리 신앙의 모습을 재조명함으로 믿음의 새로운 발걸음이 시작되었으면 합니다.
3. 예수님은 본문 23절에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때에 관해서 많이 말씀하셨는데, 본문의 이때는 어떤 때였습니까?
고난의 십자가를 앞에 둔 상황이었고, 그래서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막14:34)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죽을 것 같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막14:36)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할 수만 있다면 십자가를 피하고 다른 방법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앞에 두고 내가 영광을 얻을 때라고 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십자가는 어떤 것입니까? 십자가는 과연 무엇입니까?
끔찍한 죽음이고 고통과 저주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고대 사회에서는 죄수를 처형하는 가장 끔찍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십자가 위에 못이 박히면, 죽는 순간까지 온몸의 피를 천천히 흘리면서 온갖 고통과 절망을 맛보게 하는 방법입니다. 이런 끔찍한 광경을 공개된 장소에서 행하다 보니, 그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들까지도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십자가를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4. 그런데 이런 십자가를 앞에 두고 왜 예수님은 내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씀하셨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이 십자가를 가리켜 영광이라고 생각하신 이유가 오늘 본문에 잘 나오고 있는데, 그것이 24절의 말씀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우리는 본문의 이 한 알의 밀알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그대로 있으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생명은 있지만 그 생명이 잠을 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땅이 떨어져서 썩게 되면, 그곳에는 30배, 60배, 100배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자신은 죽음의 고통과 감당하기 어려운 수치와 저주를 맛보셨지만, 이 귀한 희생을 통해서 많은 생명이 죄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중에 우리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 죄의 세력을 멸하고, 자신의 희생을 통해 많은 생명이 구원받을 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이것 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영광은, 예수님처럼 먼저 나를 버리고 나 자신을 십자가 복음을 위해 아낌없이 희생할 때 주어지는 것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고, 이 순종을 통해서 큰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5. 우리는 지금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남들보다 잘 돼야 하고,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하고, 내가 남들보다 건강하고 힘이 세고, 그래서 남들 앞에서 자랑하고 힘을 과시하는 것이 행복이고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마음대로 안 되면 비교하고 실망과 분노와 고통에 떨어져 지옥의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과연 이런 사람에게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있다면 그것은 영원한 부끄러움뿐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님과 나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이고, 예수님의 나라가 나의 천국이고, 예수님이 받으신 영광이 우리가 받을 영광입니다.
이런 복음적인 공감대를 통해서 우리는 큰 믿음을 소유할 수 있으며, 이 믿음에서 순종이 시작되고, 이 순종을 통해서 기적과 능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로 이때야말로 우리가 참 신앙의 길을 걷는 시간이고, 이때부터 생명과 진리의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생명의 역사와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난번 한국의 6.3 지방선거에서 부정선거의 증거들이 차고 넘치고, 도무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선거를 통해 드러났는데, 서울의 잠실 제7 투표소에는 수 사람들이 모여서 부정선거 규탄과 선거를 다시 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밤을 새우면서 부정투표의 증거인 투표함을 지키다가 출동한 경찰 5백여 명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투표함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고 올림픽 경기장에 모여서 밤낮으로 구호를 외치고 있으며, 지난 토요일에는 10만 명이 모였다고 하고, 전국 곳곳에서 누가 명령하고 강제한 것도 아닌데, 가짜 대통령 물러가고 재선거를 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자유 대한민국에 대한 위기감에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까지 국민 투표는 컴퓨터로 미리 계산된 결과를 위장하려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6. 우리가 선물을 주고받을 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물건이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선물인 뇌물 같은 경우는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아예 돈다발을 안겨 주는 것입니다. 그 돈으로 사고 싶은 것을 사고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선물이라도 받는 사람이 기뻐하고 고마워하는 선물이 따로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이미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기뻐할지 알 수 있기 때문에 비록 작은 것이라도 상대방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요10:14-15절에 보면,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헬라어로 「기노스코」로, 이것은 경험이나 관계를 통해서 안다는 뜻으로,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인격적으로 더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서로서로 잘 아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우리를 잘 알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예수님을 잘 안다는 뜻입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물론 하나님이 예수님을 알고 계시고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시는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완벽하게 예수님을 알 수는 없지만, 그분과 나 사이에 아주 작은 공감대만 형성되어도 예수님은 그것을 귀하게 여기시고 우리가 주님을 잘 알고 있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비록 고난과 죽음이 기다리는 가시밭길이지만, 그것을 가리켜 내가 영광을 얻을 때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도 고난의 십자가를 놓고 나도 예수님처럼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며, 십자가 복음을 위해서라면 내 몸과 마음과 제물도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7. 예수님은 내가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반대로 내가 살아 많은 열매도 맺는다고 생각하고, 내가 살아야 남도 살릴 수 있으며 내가 성공해야 모두가 행복하리라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니다, 내가 먼저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으며, 내가 죽어야 부활의 영광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가장 방해하는 세력이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죄의 세력입니다. 죄는 우리에게 욕망을 심어 주고, 그래서 그 욕심과 고집을 통해서 사람들의 공감대를 파괴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할 때, 그 십자가를 통해서 부활의 영광을 얻으신 것처럼, 나도 내 십자가를 지고 그것이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길임을 확신하고 인내하면서 나아간다면,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으며, 연약함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고 그를 의지할 수 있으며, 불평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내가 아니라 나의 십자가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으니 주님 뜻대로 하시고 주님이 영광 받으시면 그것이 바로 나의 소원이고 기쁨입니다.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처럼 내가 받을 영광입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 영광을 예수님은 함께 나누어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도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너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십자가가 오늘부터 내 안에서 기쁨과 감사를 주고 나를 새롭게 하는 그런 역사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