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9.18.십사만 사천인(요한계시록7:1-17)
[성경본문] 요한계시록7:1-17개역개정
1.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
2.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4.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5.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6.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8.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9.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13.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십사만 사천인(요한계시록7:1-17/2011.9.18.오후)
1. 15년 쯤 전이라 생각됩니다. 온 교우들이 고오베서 떨어진 수마라고 하는 해수욕장에서 여름 일일 수양회를 가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아침 일찍부터 곧 큰 비가 내릴 것 같이 캄캄했고, 교인들이 행사가 취소되는지 알아보려고 사방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만 두자고 했지만 우리는 기도하고 출발했습니다.
그날 하루 종일 큰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금방 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지만 우리는 태양을 가린 구름 덕분에 시원한 피서를 즐기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각자 교회에서 흩어져 집으로 돌아갈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종일 내리지 못했던 비가 집에 도착하는 순간에 큰 비로 변해 천둥 번개를 동반하고 온 세상을 깜깜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때의 비가 하나님이 천사들을 동원하여 비가 내리는 것을 잠시 멈추도록 비를 붙잡았다고 확신하고 있으며, 그 때의 경험이 이후로 영적인 문제들에 대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전도하고 영혼 구원하는 일이며 섬기는 일에 기쁜 마음을 가지고 수고하면 하나님은 이 일들을 이루도록 모든 환란과 어려움, 방해들을 막아 주실 것입니다.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서 믿는 자들이 앞으로 향해 나아가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걸음을 지켜 주시고 원하는 일을 이루게 하심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습관적으로 듣고 습관적으로 행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듣고 감동을 받으며 아멘으로 받아들인다면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서 능력과 기적으로 나타날 줄 믿습니다.
2. 오늘 본문의 서두에도 보면, 하나님이 4 천사를 동원하여 그들이 각각 지구의 네 모퉁이에 서서 세상으로 부는 바람을 붙잡아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잡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가끔 한 여름에 아라비아 반도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있는데 이것은 열풍으로 한 번 불기 시작하면 모든 초목이 말라죽을 만큼 그렇게 뜨겁고 공포스러운 죽음의 바람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 본문에서 천사들이 붙잡고 있는 이 바람을 단순한 열풍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곧 이 지상에 일어날 크고 두려운 전쟁이나 대재앙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잠시 천사들을 통해서 그 바람을 불지 못하게 잡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문제는 왜 하나님이 이 바람을 불지 못하게 잠시 막고 있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그 답은 3절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 가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도록 함에 있었습니다.
곧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한 택자의 구별과 동시에 그들의 구원완성을 위함입니다.
4절 이하를 보면 이스라엘의 12지파가 있고, 그 지파들 중에서 각각 1만2천 명씩 성별하여 그들을 불러내어 그들의 이마에 인을 치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마에 인을 쳤다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는 동물이나 노예가 도망을 가거나 다른 사람들의 소유물과 혼동되지 않도록 자신의 소유로 표시하기 위해서 인을 쳤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그 어떤 것도 무효화 할 수 없는 완전한 효력을 발휘하는 소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3. 믿는 자들 가운데 때때로 믿음의 확신이 없이 흔들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서 왜 이렇게 환란이 많은가?
과연 하나님이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는지? 아니면 나를 버리셨는지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인을 다 칠 때까지 지상의 그 어떤 것도 해하지 말라는 것은, 그들이 많은 환란과 두려움 속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 아래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사도바울은 갈6:17절에서,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도바울에게 주신 흔적이요 인입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은 자기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물이란 사실을 의심하지 아니하고 늘 그런 의미로 이 인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몸에 성령으로 말미암은 예수님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흔적이기 보다는 보이지 않는 영적 흔적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흔적인 줄 믿습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삶이야말로 예수님의 흔적입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그런 모습이야 말로 예수님의 흔적이요, 겸손과 순종으로 믿음을 이어가는 하루하루야말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남기신 사랑의 흔적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위로가 되고, 끓어오르는 분노가 가라않으며,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진다면 그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이 있을 뿐 아니라, 도리어 이 인을 치기 위해 잠시잠간 지상에 바람을 멈추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그분의 은혜와 성도 보호하심에 확신과 넘치는 감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4.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이 이마에 인을 맞기 까지 세상은 잠시 고요함 속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고요함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다름 아닌 전도의 마지막 기회라는 것입니다.
마치 십자가의 한 편 강도가 함께 못 박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23:42)함으로 그에게 구원을 간청하였고, 주님은 그의 간청을 들어주사 그 영혼을 구원하심처럼, 하나님의 예정하신 구원받는 숫자가 차도록 영혼구원의 마지막 기회로 삼아야 마땅하다는 사실입니다.
타임 리밋(Time Limit)이라는 말이 있는데, 제한 시간, 혹은 기한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55:6)고 함으로 이 타임 리밋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모든 것이 때가 있고 기한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선교를 힘쓰고 일본복음화를 위해 열심을 내어야만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아무리 수고하고 희생을 쏟는다고 하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기도할 때 기도해야지 기도할 때를 놓치면 그 기회는 오지 않습니다.
봉사할 때도 마찬가지요, 선교의 열심도 사실 한 때뿐입니다.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평화의 시대에 살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천사들을 동원하여 이 죽음의 공포의 바람을 막고 있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이 때 우리는 주님의 지상 명령인 복음 전파에 더욱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5. 문제는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들이 과연 누구인가 하는 사실입니다.
여호와 증인들은 스스로를 이 144,000인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한 사람들이라고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대환란의 과정 속에서 보호를 받는 유대인 144,000인들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예수님의 신부로 공중에 들리움 당할 때 이 땅에 남겨진 자들로 대환란을 통하여 하나님께 돌아올 자들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이 144,000인을 환란과 박해를 통과한 신구약 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이 숫자가 단순한 숫자로만의 의미가 아니라, 영적인 숫자로 보는 것입니다.
즉 12 곱하기 12 곱하기 1천이 144,000이 되는데, 먼저의 12 숫자는 구약시대의 성도들이고 나중의 12는 신약시대의 성도들이며 그리고 1천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라고 해석하는 경우입니다.
결국 144,000이라는 숫자는 인치심을 받고 대환란을 통과하는 모든 성도의 수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십사만 사천인은 만세전부터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어린양의 피로 씻김을 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들은 흰 옷을 입고 능히 셀 수도 없는 큰 무리를 이루면서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를 향하여 모든 것을 동원하여 찬송과 경배를 올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속한 성도들로 많은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살아남아 주님과 더불어 최후의 승리자가 될 사람들입니다.
인을 치는 또 다른 의미는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 사람들이 당하는 환란과 고통에서 그들을 온전하게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택자와 불택자가 함께 공존하면서 뒤엉킨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만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애급의 노예생활 중에 애급 땅에 임했던 모든 재앙으로부터 그 택한 백성을 보호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애급 땅에 임한 열 가지의 재앙을 같은 땅에 있는 애급 사람들이 전부 뒤집어 쓸 그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온전히 성별하여 보호하셨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6. 마지막으로 13절에 보니,「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라고 물었습니다.
계속해서 14절에 보니, 그들의 정체가 밝혀지고 있는데, 「이는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로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은」자들이라 했습니다.
큰 환란이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때의 최후의 대환란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온갖 핍박과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고 자신의 믿음을 지킨 자들입니다.
특히 어린양의 피에 옷을 씻었다함은 단순한 성결이 아니라 대환란을 통과하기 까지 변함없는 신앙의 충성심을 드러낸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안하고 형통할 때의 믿음도 귀하지만 참 믿음은 불같은 시험으로 연단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라기 선지자는「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의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3:3)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종말이 오기까지 주님의 고난에 제대로 동참하지 못한 자들을 위해 남겨 놓은 마지막 기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시대에서 우리가 주님을 위해 십자가를 대신 지거나 고난 받는 일을 두려워하거나 일부러 외면하였다면,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은 마지막 고난을 남겨 두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길이란 십자가의 길이요 주님처럼 자신을 희생하지 아니하고는 따라 갈 수 없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보호하시고 고난 중에 영영 넘어지지 아니하도록 능력의 오른손으로 붙드실 것입니다.
7. 이렇게 고난을 통과한 십사만 사천인 들이 마침내 맛보는 특권과 그 축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 앞에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입니다.
그들을 천사보다 뛰어난 존재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이곳에서 완벽하게 실현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늘과 땅과 아버지의 보좌가 그들의 찬양으로 가득찰 것이고, 두 번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고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온에 상하지 아니할 」것이며,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 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두 번 다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핍박과 고난이 없을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요, 이것은 영원한 안식과 생명의 축복이 주어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생명이란 고통을 수반하고 때로는 생명 때문에 낙심과 절망과 슬픔을 맛보아야 했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 앞에서 누리는 생명은 영원한 안식과 영광과 위로뿐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는 십자가 복음 때문에 많은 희생과 환란을 겪었지만, 이제는 그 겪은 환란과 희생이 도리어 영원한 복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침을 받은 자인 144,000인만이 맛보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이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는 그날까지 우리도 인내함으로 십자가 붙들고 마침내 영원한 승리를 얻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