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7.17.적은 교회(요한계시록 3:7-13)

[성경본문] 요한계시록3:7-13개역개정

7.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8.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제공: 대한성서공회

적은 교회(요한계시록 3:7-13/2011.7.17.오후)

1. 소아시아 교회 7교회 중에 오늘은 6번째로 빌라델비아 교회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교회의 영어명은 필라델피아로, 미국 펜실베니어주에서 한 때는 최대의 도시였고, 미국의 독립선언이 있었던 도시가 필라델피아입니다.
필라델피아는 형제 사랑이라는 의미로 볼 때, 이 빌라델비아는 믿음의 공동체 사랑이 남다른 교회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서머나 교회와 더불어 주님께 책망을 받지 않은 교회로서도 유명합니다.
이러한 교회에 주신 주님의 은혜, 주님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그 교회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열린 문은 몇 가지의 해석이 있지만,
첫째로는 복음의 문이 열린 교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복음이 책망을 받을 일이 없는 신앙적으로 건전한 교회를 통해서 전파되어야만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적으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형제의 사랑이 뛰어난 교회를 주님이 기뻐하시고, 그런 교회를 통해서 영혼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은, 사도바울도 영적으로 가장 순수한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를 통해서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지길 원했기 때문입니다(딤전4:15).
아무튼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의 전도의 문을 열어주신 영적으로 큰 축복과 능력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또 한 가지는 기도 응답의 문이 활짝 열린 교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의 능력은 모인 사람들의 능력이나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 그 능력과 영광과 권세가 있기 때문에, 교회의 능력은 다름 아닌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에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넘치면 교회는 힘을 얻으며,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다」(고후2:12)고 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이러한 영적인 축복의 문을 열어 주신 주님이 오사카중앙교회에도 크게 문을 열어주셔서 전도의 열매와 기도의 넘치는 응답이 쏟아지는 줄 믿습니다.
어느 정도로 열어 주시며 어느 정도로 축복해 주십니까?
한 번 열린 축복의 문을 「능히 닫을 사람이 없을」정도로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2. 그런데 빌라델비아 교회가 이렇게 큰 축복을 받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한」것입니다.
여기서 「적은 능력」 이란 세상적으로 볼 때 매우 작고 시시하게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과연 말 그대로 형제 사랑에 남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교회였습니다.
소위 교세가 작은 교회입니다.
교세가 작다는 것은 교회 성도들의 숫자가 작다는 것이고, 그래서 교회의 재정적인 능력도 약하다는 것이고, 세상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지 않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가진 믿음의 능력은 크고, 서로 간에 나누는 형제 사랑은 크고, 전도의 역사나 기도응답이 대단했지만 교회는 작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적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주님께 받은 칭찬, 곧 이 교회가 세상과 우주 만물 앞에서 자랑할 만한 것들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곧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때로는 힘이 들고 때로는 슬프고 연약하여 감당하기 어려울 때에도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오늘에 이른 것을 주님은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교회를 향하여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믿음에서 나오는 주님을 향한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종과 희생을 알지 못하지만, 주님은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 칭찬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도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주님께 칭찬받는 교회가 되도록 모두 열심을 내고 모두 사랑과 전도와 모든 수고에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말 우리의 남은 생애만큼이라도 주님께 드리고 주님께 인정받는 자 되기를 바랍니다.
    
3. 또 한 가지는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환경과 조건에도 불구하고 주님과의 관계가 변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기독교 박해사를 보면, 급성장하는 천주교를 저지하려고 예수님의 초상화를 가져다 놓고 그것을 밟고 지나가게 할 때 많은 기리시단들은 그것을 거부함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잃어버릴 그런 상황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아니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킨 것이 곧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한 것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주후 2세기 중반에 빌라델비아 교회 출신의 11명의 성도들이 서머나 교회의 폴리갑과 함께 순교했다고 합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이 가다 아니 가면 처음부터 가지 않음만 못하다고 하듯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렵다고, 환경이 좋지 않다고 믿음을 포기하거나 헌신된 삶을 중지한다면 지금까지의 믿음이 무엇이란 무엇입니까?
주님은 분명히 선언하시기를, 「내가 네 행위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몰라도, 세상은 무관심해도 주님은 우리의 믿음과 모든 수고를 아시고 그것을 영원히 기억하시는 줄 믿습니다.

4. 특히 본문에서 강조되고 있는 부분이 무엇입니까?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입니다.
말 못하는 짐승들도 대적이나 경쟁 상대를 만나면, 몸을 부풀려 자신을 크게 보이도록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에서는 크기에 따라 상대방의 능력을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도 막대한 빚을 내서라도 일단은 크게 짓고 봅니다.
몸집을 불려 놓아야 무시를 못하고, 힘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교회요, 적은 능력을 가진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큰 교회들, 큰 능력을 가진 교회들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해냈습니다.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감당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빌라델비아 교회가 주님께 칭찬을 받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스스로에게서 나온 능력이 아니라 이 교회를 칭찬하시고 이 교회의 성도들을 기뻐하시는 주님에게서 그 모든 능력이 나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세상적으로 보면 모든 면에서 사이즈가 작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고 나서 그 작은 것이 더 축소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남다른 능력과 자랑이 있습니다.
교회의 27년의 역사가 그렇고, 이 긴 세월동안 받아 누린 수많은 기도의 응답이 그렇고, 초창기 때부터 이어온 일본복음화와 세계선교의 열정과 수고가 있으며, 자녀들에게 이어지는 바른 신앙과 말씀에 순종하는 남다른 삶이 우리의 능력이요 자랑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내가 아니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도우심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준은 세상이 어떻게 보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이 어떻게 보시며 평가하시는가에 달려 있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 빌라델비아 교회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 한 일이 무엇입니까?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5. 이러한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사단의 회에 속한 유대인들이 자발적으로 교회 앞에 무릎꿇은 사건입니다.
로마황제가 영토를 정복하고 조공을 거두어 가도, 종교의 자유를 준 나라는 유대나라 뿐이었습니다.
로마의 권력으로도 굴복시키지 못한 민족이 유대인입니다.
권력의 칼 앞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순교의 제물이 되려고 하는 이 사람들을 누가 굴복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은 이 적은 능력을 가진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유대인들이 굴복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다름아닌 교회를 박해하는 사단을 무릎 꿇게 만든 중대한 사건입니다.
이런 사실을 놓고 보면 여기서 이 오사카중앙교회의 미래를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형제 사랑의 능력 위에, 주님 사랑하는 순수한 신앙의 열정으로 그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이 땅 이 민족이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는 전민족적인 회개의 역사가 곧 오리라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이 교회를 왕성하게 하사 일본복음화와 세계 선교에 귀하게 쓰임받게 하실 줄 믿습니다.
유대인이 교회 앞에 굴복했다면 일본 사람들이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능력이나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시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6. 둘째는,「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마24장의 큰 환란의 때를 말하고, 우상숭배를 강요당하며, 또한 그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도록 강요 당하는 큰 환란의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때에 주님은 이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특권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곧 그 환란의 때에 이 교회로 하여금 영적 싸움에서 승리케 함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게 하며, 그 환란의 고통을 유월절처럼 넘어가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세상에 특권이 있고 기득권이 있듯이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특권이나 기득권은 불의와 부조리로 가득차 있지만, 영적인 기득권 곧 주님이 교회를 향해 베푸시는 은총은 생명을 걸고 신앙생활을 하고, 순교자적인 각오를 가지고 교회를 지키는 자들에게만 허락하시는 값진 특권이요 영광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교회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이 지상에서부터 시작하여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 이르도록 영원히 그 백성을 축복하시기 위한 은총의 수단으로 이 지상에 교회를 세우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회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게 하며, 지상에 사는 날 동안에 교회로 말미암아 받는 영육간의 큰 복을 받게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도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교회로 인하여 시험의 때를 면하고, 환란의 때에 도리어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며 영원한 복을 누리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결코 우리 인생의 걸림돌이 아니라 축복의 수단이요, 교회는 인생의 무거운 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누리는 특권이요 은총의 수단입니다.

7. 셋째는, 승리자를 위해 예비한 영원한 면류관을 약속하셨습니다.
여기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은, 이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미 영원한 면류관이 보증된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지금 손에 잡힌 것은 없지만 주님의 분명한 약속이 있고, 그러므로 면류관은 보증수표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미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주님은 빼앗기지 않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통해 밝혀진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우리에게 이미 보증되고 또한 손에 잡은 것이라 할지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잃어버리거나 빼앗길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다.
도적에게 빼앗기든지 사기꾼에게 속아 빼앗기든지 우리의 잘못된 실수로 인해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미 보증된 것을 영원히 빼앗기지 아니하는 비결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계시록 2:10절의 말씀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는 말씀입니다.

8. 넷째는,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따르되 생명을 걸고 따라 오는 자들을 영원한 새 예루살렘의 하나님 아버지가 거처하시는 그 기둥이 되며, 우리 이름을 그곳에 기록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은 자국의 독립과 나라를 지키려는 전쟁과 국가에 크게 공헌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포상하며 메모리얼 파크에 그 이름을 새기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금도 일제의 치하에서 빼앗긴 나라와 민족을 찾으려고 목숨을 걸고 싸운 충성된 사람들을 찾아내어 그 유공자들은 물론이고 유족들과 후손들을 대우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저희 장모님의 부친이 독립운동에 크게 공헌한 것이 밝혀져 97세의 장모님이 훈장을 받고 포상을 받았습니다.
우리 주님도 자기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고 그 말씀에 생명을 걸고 따라오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새예루살렘에서 그 이름을 영원히 빛나게 하실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처럼 바른 신앙과 신학을 위해 생명을 건 사람들, 사신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킨 사람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몸바쳐 충성한 사람들, 이 적은 교회를 위해 수고한 성도들의 모든 행위 하나하나를 주님은 기억하시고, 영원한 생명과 영광으로 값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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