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4.3.복 있는 사람들(요한계시록1:1-8)

[성경본문] 요한계시록1:1-8개역개정

1.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

2.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4.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복 있는 사람들(요한계시록1:1-8/2011.4.3.오후)

1. 한 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본의 사교집단인 옴진리교가 의외로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빈번하게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만큼 현대인들에게 있어서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그런 만큼 장래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스위스의 저명한 신학자며 목회자였던 에밀 부룬너는 요한계시록을 가리켜, 위기를 만나게 되면 관심을 가지게 되는 말씀이라고 하면서 그러나 잘못 읽으면 위험한 말씀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요한계시록을 미래에 되어질 어떤 일들에 대한 열쇠나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그런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알리는 말씀으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이며, 이러한 계획을 가지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배워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날까지 그 분께 순종하는 삶을 이어가는 것이 이 요한계시록을 배우는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존재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8절에 보면 우리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알파와 오메가는 신약성경을 기록한 언어인 헬라어의 알파벳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언어의 첫째 글자와 마지막 글자를 이용해서 하나님을 알파와 오메가로 표한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의 처음이요 마지막이 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류가 시작되기도 전에 만물이 조성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은 계셨고, 지구의 역사가 종말을 고하고 난 이후에도 하나님은 지구의 운명과는 상관없이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래서 8절 후반부에「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오실 자」라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아니하시는 영원하신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2. 전에도 계셨다는 말씀 곧 알파가 되신다는 것은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며, 장차 오실 자란 말씀은 오메가로서 인류의 심판의 주가 되심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제도 있으시다는 것은, 이 땅에 믿는 자들을 홀로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성경 66권의 첫 권은 창세기이며, 그 가운데서 제일 첫 내용은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만드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왜 성경 첫 부분에 창조이야기가 나오는가 하면, 우리 하나님은 천하만물과 온 우주와 인간들을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그가 없이는 세상 어느 것 하나 저절로 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첫 출발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아는 데서 출발하고, 그 첫 내용은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요, 모든 것의 시작의 근원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라는 것입니다.

3. 둘째는 우리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과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구절 속에는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시간에 대한 표현들입니다.  
「속히 될 일」,「때가 가까움」.「이제도 전에도 장차」,「먼저 나시고」,「알파와 오메가」등입니다.
사람은 시간에 지배를 당하는 존재입니다. 세월이 가면 튼튼한 육체도 쇠잔합니다.
어린 사람은 아무리 유능해도 미숙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것에 제한을 받지 아니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흘러간 시간은 인간의 힘으로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80세된 노인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는 지도자로 사용하셨습니다.
내가 늙었고, 인생의 기회는 다 가버렸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너를 나의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밧모섬에 유배되어 손바닥만 한 섬에 갇혀 있던 사도요한을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그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갇혀 있어도 혼자 있어도 섬 가운데 홀로 미래가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런 사람도 찾아 오셔서 은혜를 베푸시고 사명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는 분입니다.

4. 셋째는 우리 하나님은 독생자를 고난의 죽음에 내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요한에게 찾아오셔서 무엇을 주셨고, 어떻게 그를 사용하셨습니까?
19절에「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는 것입니다.
요즘 인생 70, 혹은 80부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표현과 가깝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월을 탓하고 있습니다.
두려워말고 평생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까지 쓰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밧보섬에 유배된 사도요한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신을 소개할 때, 9절에서「나 요한은 너희의 형제요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왜 이런 표현을 가지고 자신을 소개합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받았고, 그것 때문에 여기 밧모섬에 갇혔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버리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이 시대에 누가 복된 삶을 살며, 누가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는 복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기를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기원90년쯤에 기록되어졌다고 하는데, 그 때의 로마 황제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였습니다.
기독교를 가장 가혹하게 핍박한 사람입니다.
그 당시의 어느 고관이 기록한 내용을 보면, 기독교인으로 의심될 만한 사람을 붙잡아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부정하라고 합니다.
그 때 조금이라도 주저하는 빛이 나타나면 가차 없이 기독교인으로 간주하고 처형을 해 버렸습니다.
사도요한은 그런 시대에 밧모섬에 갇혔고, 그런 시대에 하나님의 주신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5. 그런 시대에 교인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하였습니까?
자꾸 숨어 들어가다 보니 개미처럼 땅 굴을 파고 그곳에서 예배하다가 점점 핍박이 심해지자 아예 그 속에서 살면서 신앙을 이어갔던 것입니다.
열악한 지하 환경이고 보니 사람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죽는 사람들을 남은 사람들이 땅 속에서 옆에 구멍을 내고 시체를 안치합니다.
한 마디로 산자와 죽은 자가 동거하는 곳입니다.
그것이 로마 지하의 카타쿰이라는 곳입니다.
얼마나 열심히 파고 내려갔던지 지금도 잘못 들어가면 찾아 나올 수 없어 곳에서 헤메다 죽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카타쿰으로 내려가 보면 극히 일부만 공개하고 나머지 위험한 곳은 전부 막아 놓았습니다.
이런 형편이고 보니, 이 당시의 사람들의 예배는 곧 목숨을 건 행위였습니다.
여름에 산에 가면 잘못하면 벌에 쏘임을 당합니다.
그런데 벌은 엉덩이의 침을 한 방 놓고는 날아가지만 침을 잃어버린 벌은 곧 죽는다고 합니다.
적을 향한 일격에 자신의 생명을 걸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시의 크리스천들은 한 번의 예배에 자기 생명과 바꿀만한 그런 상황에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3절에「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6. 성경이 말씀하는 복은 육신의 것을 누리는 복 보다는 하나님의 선물인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난에 동참하고 자기 생명을 기꺼이 십자가 제단의 희생의 제물로 드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 5절에 보면, 「충성된 증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증인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말투스로 이것은 순교자를 의미합니다.
왜 증인라는 말과 순교자라는 말이 같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까?
법적인 증인의 증거, 곧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말하고자 할 때 그것을 막는 세력이 있기 때문에 생명을 걸지 아니하고는 증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핍박과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기에 말투스는 그런 의미에서 가장 적절한 단어인 것입니다.
과연 기독교 2천년의 역사에서 복음의 증인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았고,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의 순교의 피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이 복음이 전파되었고, 오늘의 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것도 역시 성도들의 순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성도의 죽음을 귀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축복이요 복 받은 자들의 이 세상의 여정입니다.

7. 이 계시록에 기록된 말씀은 세상의 그 어떤 세력들이 복음의 길을 막는다고 하여도, 세상 세력들이 증인들의 피를 땅에 쏟으며 그 입을 막는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어긋남이 없이 완벽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시오, 과거나 현제나 미래를 통하여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분이시오, 알파와 오메가가 되며,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내 심령속에 새길 때, 이 세상을 새롭게 하며 구원하는 사명자가 될 것이며, 또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신앙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받은 영광이요 오늘 우리가 받은 축복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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