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4.28.내 안에 있는 것(마가복음7:1-23)

[성경본문] 마가복음7:1-23개역개정

1.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2.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4.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5.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6.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9.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10.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11.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13.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14.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15.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6.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17.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18.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19.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20.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1.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내 안에 있는 것(마가복음7:1-23/2019.4.28.오전)


1.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가장 즐겨 행하시는 것은 인생에게 복을 주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민6:22절 이하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은 제사장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축복을 약속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24-26)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축복을 주시는 분이고 이스라엘은 그 복을 받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축복하시는 것을 원한다고 3번씩이나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어내려 가다보면, 하나님은 축복을 받아야 할 우리보다 더 안타까운 마음으로 축복을 베풀기를 원하고 계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울리는 축복 받은 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축복은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인간에게 선과 악에 대한 선택권을 주셨고, 또한 선민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계명이고 언약이고 약속입니다.
옛날부터 사람들이 말하기를 복을 받으려면 복 받을 짓을 해야 복이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것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할 때,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시면서,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8) 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그 분의 백성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만세 전부터 예비된 하나님의 축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와, 어떻게 하면 이 놀라운 축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사람도 망하지 않고 다 구원받으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축복을 영원토록 누리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보물 창고에는 우리가 당연히 받아 누려야할 축복과 온갖 능력들이 갈 곳을 잃어버리고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축복은커녕 두려움과 고통과 빈곤 가운데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도 다 소용이 없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식은 것은 겉과 속이 다른 것을 말하는데,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하나님 말씀인 계명보다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지키는데 더 많은 힘을 쏟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보실 때에는 정말 고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죽하면 독사의 자식(마3:7)이라고 하시면서 또한 회칠한 무덤(마23:27)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는 첫째로 인간의 존재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둘째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고, 셋째가 영원히 복 받은 자로 살기 위함인 것입니다.

3. 그런데 본문 1절 이하를 보면,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종교지도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굉장한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유는 예수님의 잘못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그것은 장로들의 유전을 어기는 행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행위를 가리켜 부정한 손이라고 공격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한 그릇 속에 들어있는 음식에 이 사람 저 사람이 수저를 넣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이유는 위생관념이 철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 사회에서 발달한 것이 벤또라고 하는 도시락 문화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루종일 돌아다니다가 돌아와서 씻지도 않은 손으로 남들과 나누어 먹는 그런 빵을 찢어 먹는 것은 사실 비위생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장로들의 유전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비위생적인 문제로 인해 사람들이 병이 들거나 심지어 전염병 등으로 인해 죽는 것을 예방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면 좋은 유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뉴스에 가끔 등장하는 할렐음식이라는 것은, 이슬람의 종교법에 따라 도살한 고기나 그 고기를 가지고 만드는 음식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레위기 11장과 17장의 말씀을 따라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어서는 안되는 것으로 구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슬람도 할랄, 즉 허용된 음식을 구분함으로 그들의 신앙적인 정체성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슬람의 이런 위생적 관리가 종교의 법으로 규정하고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서구사회나 다른 이방 사회에서 종교적 마찰이나 문화적인 거부감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할렐 음식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은, 고전8장에 근거해서 제사음식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 세상의 모든 음식은 본인의 신앙의 양심을 따라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4.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을 공격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단순히 위생적인 문제로 그렇게 한다면 적절한 지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문제는 이 사람들이 율법도 아닌 전통적인 장로들의 유전을 가지고 예수님을 공격했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구약성경인 이사야 29:13절을 인용하여,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한" (6-7) 다고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입술, 혹은 혀로만 표현하는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인데, 그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위선적인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왜 부정한 손, 즉 씻지 않는 손으로 먹는 것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시비를 거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나쁘게 표현하자면 예수님을 걸고넘어지려는 계략에서 나온 것이고, 좋게 표현하자만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것이 15-16절 말씀의 내용으로,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힐 수 없지만, 사람 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히고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5. 결국 정결함이나 더러움은 내 안에 무엇을 쌓아 놓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사람 속에 있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21-22절에 보니,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 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23절에 가서는 이런 것들이 우리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힌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더럽히고 망가뜨리는 것이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전부 원래부터 내 안에 있었으며 그것들이 바깥으로 쏟아져 나올 때, 내 자신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을 더럽히고 더 많은 좋은 것들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나의 문제의 원인은 전부 바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모를 원망하고, 친구나 이웃을 탓하고, 대통령이나 정치 지도자들, 재벌들을 탓하고, 심지어 이웃 나라를 탓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으로서 정말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눅6:41) 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사기를 당한 사람들을 보면, 사기꾼을 욕하고 핑계하지만, 실상은 내 안에 숨어 있는 탐욕을 그 사기꾼이 보고 그래서 나를 유혹한 것이니, 원인은 내게 있는 탐욕입니다.
결국 오늘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내 안에 무엇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실 만한 아름답고 귀한 것들이 내 안에 있느냐, 아니면 지옥 불에 불사르지 아니하면 없어지지 아니할 온갖 악함이 내 안에 있느냐 이것입니다.

6. 제 자신도 생각해 보면,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들과 같은 생각을 가졌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과, 질서, 습관을 가지고 사람들을 판단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도 안 되고 저 사람도 못 쓰겠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의 렌즈로 사람들을 보니 전부 아름답고 소중하고 귀한 사람들뿐이었습니다.
내 주위에는 얼마든지 훌륭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 복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그런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내 잘못된 생각 안에 스스로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도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 주위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그 분의 기쁨이 될 만한 것들이 얼마든지 있지만, 우리의 눈이 어두워서 그런 것을 볼 수 없으며, 찾아낼 수 없으며 분별해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그렇게 소원하던 가나안 땅을 들어가려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땅을 악평하는 10명의 정탐꾼들에 의해 하나님을 원망하며 밤새도록 울며 통곡할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은 아름다우며 그곳의 거민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붙여준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올라가서 그 땅을 우리의 소유로 만들자고 했습니다.
똑같은 사명을 받고 같은 장소에 같은 일을 하고 돌아왔지만 정 반대의 보고를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 속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남다른 아름답고 복된 것들을 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낸"(마12:35) 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의 자녀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7. 현대인의 생활신조는 첫째로 얼마나 편안한가? 둘째는 얼마나 즐거운가? 셋째는 얼마나 유익한가를 중요시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악한 것과 더러움을 쌓아 놓고, 그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고 더럽힌다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두려움을 이런 것으로는 막아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내 안에 무엇을 쌓아 놓고 무엇을 심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그렇게 정결하고 깨끗한 것을 추구한다면, 당연히 여호와의 말씀으로 깨끗함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을 의지해야 할 것인데, 그들은 장로들의 유전대로 따르는 것이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죄에서 정결하게 만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줄 믿습니다.
지금 내 안에 무엇이 있습니까?
그것을 십자가의 보혈로 씻으면 그 때부터 영원히 거룩한 자가 되는 줄 믿습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무리 귀하고 아름답게 보여도 보혈의 은총이 아니고는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장 더럽고 추하고, 생명을 영원히 죽이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일요1:7)다고 하였으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더럽혀진 내 삶과 심령을 보혈의 은총으로 씻어 영원한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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