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8.26.인생의 만남(마가복음2:13-17)

[성경본문] 마가복음2:13-17개역개정

13.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14.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5.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16.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인생의 만남(마가복음2:13-17/2018.8.26.오전)
1. 한국 음식으로 일본에서 제일 인기가 있는 것이라고 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김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김치를 평생 동안 먹고 만들면서 살아왔지만, 김치를 설명하라고 하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한국 사람이라면 김치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데, 맛으로는 전문가일지 몰라도, 그 김치를 소개하고 설명하는 데는 생각보다 서툴고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간단한 방법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김치의 맛을 한 번 보여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김치의 맛을 한 번 보게 되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이와 같은 것은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신용이 있고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를 받아도 그 사람과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알 수가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의 말하기를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모든 것에는 상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게는 보물과 같은 물건이라도 저 사람에게는 쓸모없는 물건일 수 있으며, 내게는 생명의 은인이라도 저 사람에게는 사기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내가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 세상 삶의 이치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아무리 영원한 생명을 주는 종교이며 사람을 새롭게 한다고 하여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해 보기 전에는 참 신앙의 진수를 맛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구원과 진리에 관하여 유일무이한 종교라도 내가 예수님을 만나고, 내가 성령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2. 사복음서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 주위에는 늘 두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받고 변화 받아서 귀하게 쓰임 받는 축복의 사람이 있으며, 둘째는 종교적인 열심은 뛰어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자신은 물론이고 수많은 사람들을 멸망으로 이끌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언행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복음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한마디로 믿음의 세계의 능력과 축복과 미래의 영광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가는 길을 방해하고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늘 호의를 베풀어 주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힘이 되어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만남이 중요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 와서 누구를 만나며, 어떤 사람과 더불어 동행을 하며,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받으며 사는가 하는 것은 생명 다음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세관원의 직업을 가진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통해서 우리 인생은 어떤 존재이며 누구를 만나야 하며, 또한 어떤 인생을 사는 것이 복되고 아름다운 것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3. 본문을 통해서 나타나는 예수님의 사역의 핵심은 3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가르치시는 일과, 이 일에 함께 동참할 사람들을 찾아다니시며 그들을 훈련시키시는 일과, 그리고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시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예수님이 레위라고 하는 세관원을 찾아가셔서 그를 제자 삼으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레위에게 관심을 쏟으시고 그를 찾아가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주님이 그에게서 요구하고 계시는 것은 그의 변화된 삶이었습니다.
그는 겉으로 보면 돈도 많고 사회적인 지위도 있고, 겉으로는 대단하게 보여도 유대인 동족들에게 멸시와 저주의 대상이 되는 불쌍한 인생이었습니다.
이유는 그가 로마와 헤롯 정권의 앞잡이가 되어서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각종 세금의 명분으로 수탈을 일삼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도 아닌 유대인으로서 레위가 유대 사회에서 받는 대우는 처참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세리와 창기는 버림받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법정의 증인으로서 세울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불행한 것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우에도 결코 법정의 증인으로 세울 수 없을 정도로 도를 벗어난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장차 이 사람들을 향한 공의와 사회적인 심판의 저주를 그들이 어떻게 다 감당할지 모르겠습니다.

4. 예수님은 누구를 부르시고 계십니까?
본문 17절에 보니,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남다른 능력이 있고 실력이 뛰어난 존재를 선발하고 그들을 통해서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훈련하고 관리하고 통제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대로 죄 짐을 지고 고통 하는 죄인을 불러 구원하고 변화시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새사람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 가운데는 힘이 없고 병들고 무능하여 버림받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무거운 짐으로 감당하지 못하여 쓰러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모르는 고통과 후회와 절망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해 오셨다고 본문에서 스스로 증언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11:28에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사회적인 냉대 속에서 갈등과 고통에 쉼을 얻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레위를 예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나를 따라 오라는 것입니다.
레위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 즉시 순종하여 그 시간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5. 인간의 존재적 가치는 내가 누구와 함께 하며, 누가 나를 부르며 이끌어 주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는 옛날부터 소위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유능하고 힘이 있고 많은 소유를 누리고 있어도 줄을 잘못 서게 되면 그곳에서 끝입니다. 레위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동족으로부터 말로 다할 수 없는 수모와 공격을 받아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을 정도로 고통 속에서 소망이 없는 그런 인생 한 가운데로 예수님은 찾아오셔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찾아와 주셨고, 그에게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인생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4절 끝에 보면 레위는 결심하고 잘못 선택한 줄을 버리고 예수님이 부르시는 소명을 따랐습니다.
한마디로 변화의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안정된 삶을 사는 사람들일수록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6. 예수님은 잃어버린 한 영혼이 아버지께로 돌아오고,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고통과 저주에 갇혀 있었던 한 인생이 구원받고 새 사람이 된 것을 기뻐하면서 모든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함께 즐거워하던 그 시간에, 이 종교지도자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깽판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유는 이스라엘의 선생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거룩하신 분이 어찌하여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즐기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은 끼리끼리 어울리는 사회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계급사회입니다.
물질 소유에 대한 급이 다른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계층이 다른 사람들과는 상하의 관계는 있을지 몰라도 결코 인간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그 이외에도 정치적인 계급이나 도덕적인 계급의식도 있으며, 사상이나 지식의 계급이나 정보공유의 차원에서 수많은 계층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계급이나 계층을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우며 우월의식으로 자존감을 높이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치관으로 예수님을 보았을 때, 이 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의 행동은 비판과 정죄를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행함으로 드러나는 단 두 종류의 구분이 있을 뿐입니다.
먼저 모범을 보이며 가르치는 자와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 가르침을 받는 자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자와 그 복음을 받아 구원을 얻는 자입니다.
그리고 변하는 자와 변하지 않는 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7.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을 포함한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던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죄인들, 즉 세리나 창기와 같은 그런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어울리는 것을 비판하는 그 소리를 듣고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습니까?
17절을 보면,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죄인들과 함께 어울린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이 바로 너희가 비판하고 멸시하고 사람 취급도 해 주지 않는 이 죄인들을 구원하고 그들을 새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말씀과 거의 일치하는 철학자의 말도 우리가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말하기를, 의사가 병자에게 가듯이 지혜로운 자는 어리석은 자들 가운데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거듭난 사명자들과 그렇게 못한 사람들의 차이가 바로 이것입니다.
레위는 세관에 앉아서 수많은 세금을 긁어모으면서 사람들의 고혈을 짜내고 있었는데, 그를 찾아온 예수님의 사랑의 손길에 의해 변화를 받아 이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새사람에 새 이름으로 마태로 개명하였고, 그토록 자신에게 증오심을 퍼부었던 동족 유대인을 위해서 신약성경 마태복음의 저자가 되었습니다.

8. 황해도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가 부친의 죽음으로 가산이 기울어지자 깡패가 되어 매일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며 황해도의 호랑이로 불리던 김익두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를 이길 수도 간섭할 수도 없었는데, 미국 선교사 스왈렌의 설교에 감동을 받고 예수 믿고 구원받고 그 날부터 술 담배를 끊고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자지 않고 성경을 읽었는데, 평생에 신약은 천 번 읽고 구약은 백번을 읽었고, 산에 올라가서 금식기도 하면서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던 중 완전히 변하여 새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전국으로 다니면서 부흥집회를 인도했는데, 귀신이 쫓겨나고 앉은뱅이도 일으키고, 온갖 불치병을 치료하면서 당시의 미국 신문에도 날 정도였는데, 1950년 10월14일, 교회를 지키고 있던 성도 5명과 더불어 패주하는 인민군에게 사살당해 순교를 하였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저놈 잡아가는 귀신이 없냐고 할 정도로 몹쓸 인간이었는데, 십자가 복음으로 거듭나고 나서는 한국 기독교역사의 기둥 같은 인물이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나를 찾아와 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9. 쓸모없는 우리 인생을 사랑의 손길로 다듬어 주셨고, 각양 좋은 은혜와 은혜로 풍성하게 내 인생을 채워 주셨습니다.
나밖에 모르던 그런 인생이, 이제는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로 세워주셨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내 몸처럼 아끼고 믿음의 형제자매를 서로 사랑하며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소망 없이 고통 중에 방황하고 있던 그런 인생을 예수님은 찾아와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만나고 보니, 이 만남이야말로 그 어떤 만남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되고 아름답고 귀한 만남인 줄 알았습니다.
그 분의 손길이 우리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다듬으며 새롭게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의 이런 만남과 그 분께 받은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예수님과 또 다른 영혼들의 만남을 위해서 남은 생애가 더욱 귀하게 쓰임 받는 그런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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