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5.6.행복한 인생(골로세서 3:18-25)
[성경본문] 골로새서3:18-25개역개정
18.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19.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20.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21.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22.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23.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25.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 행복한 인생(골로세서 3:18-25/2018.5.6.오전) 1. 21세기 현대사회의 핵심을 말하라고 하면 주저 없이 그것은 돈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모든 것이 바로 이 돈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가치에서 시작해서 사회 전체는 다 이 돈에 의해 판단이 되고, 정치 경제는 물론이고 도덕이나 종교나 교육까지, 심지어 돈이 없으면 국가도 파탄이 나기 때문입니다. 형편없는 인격과 실력이라도 빚을 지고서 라고 사회에 돈을 쏟아 부으면 정치를 잘 하는 것이고, 국민에게 근면 절약을 호소하면 무능한 지도자가 되는 세상입니다. 돈과 무관할 것 같은 우리의 신앙도 돈이 없으면 힘을 쓸 수 없는 그런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맘모니즘((mammonism) 즉,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입니다. 돈이나 소유나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는 그런 풍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돈에 대하여 이런 말을 하면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번 목회와 신학 5월 호를 보니 특집으로 가정 경제에 대한 내용이 있었는데, 이 사회는 의존 증이나 중독 증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옷장을 열어보면 그곳에 옷은 많은데 입을 옷이 없다는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옷장에 입지 않는 옷이 평균 57벌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옷 무덤, 신발 무덤, 그릇 무덤, 책 무덤, 음식 무덤 투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없어도 되는 것이 많을수록 부자" 라고 하면서, 사람의 평가를 소유로 판단하지 말고 비움으로 평가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울수록 더 자유로워지는 정신적인 부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옷장을 열고 옷은 많은데 입을 것이 없다고 불평한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의 돈이나 물질의 노예가 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2. 결국 우리가 욕심을 내고 치열한 경쟁을 일삼는 것도 내 인생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옷장에 입지도 않는 옷이 쌓이고, 부엌에는 없는 살림이 없이 일 년 내내 쓰지 않는 그릇들과 도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통장에는 적금이 빵빵하게 들어 있으면 인생이 행복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면 인간의 욕심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스스로를 그렇게 노예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가치는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스스로 만족함을 아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딤전6:8)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라 가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자녀 답게 사는 것이고 행복하고 보람 된 인생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행복을 추구하는 인생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로 가득합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고 괴롭히지 말라" 고 합니다. 결혼하면 부부가 가정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신경전을 벌이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더구나 복종은 노예나 하는 것이지, 아무리 부부라도 주인은 명령하고 주장하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어릴 때에는 남자들이 마누라는 두들겨 패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유는 길들이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풍조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고 유치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3. 부부가 결혼을 하면 지금까지 혼자의 능력으로 살던 사람들이 이제 부터는 남녀가 가지고 있던 각자의 능력과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두 배의 능력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세상에 나가면 두 배의 힘과 지혜를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에, 인생의 성공은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셈입니다. 그런데 집안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약한 배우자를 억압하고 폭력으로 굴복시킨다면, 내 인생에 노예 한 사람은 늘어나서 자질구레한 수고는 덜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나는 혼자의 능력으로 두 배 이상의 경제적 정신적 부담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축복의 반려자가 얼마나 소중하고 큰 힘이 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태어나면서 인생의 짐은 점점 가중되고, 결국 한 번의 실패로 인생과 가정은 파탄이 나고 두 번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치명타를 입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복종하라, 혹은 순종하라는 말은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본문 전체를 통해서 "주 안에서" 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으며, 23절에는 "무슨 일을 하던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복종이나 순종이 무슨 뜻입니까? 사랑의 섬김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본문에 나오는 복종이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논란이 있지만, 이것은 인간의 의지를 꺾어버리고 자유를 박탈 당하면서 행하여지는 그런 복종이 아니라, 자유롭고 책임성 있는 행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해석을 지지해 주는 충분한 근거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주 안에서" 행하는 것과 "주께 하듯" 하라는 말에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고,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병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섬기셨고,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죄도 없으시면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인처럼 그렇게 부끄러운 십자가를 지셨고, 마침내 살을 찢고 피 흘려 죽으셨던 것입니다. 4.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명령에 복종하는 그런 노예로서가 아니라, 사랑받는 아들로서 스스로 옳다고 여기며 기쁨으로 원하는 일에 자원하여 그렇게 행동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주도권을 빼앗겼기 때문에 그렇게 비천한 모습이 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자기 자신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노예나 하인이 하는 그런 복종이나 순종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일방적인 그 사랑과도 비교할 수 없는 더 높고 귀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내가 얼마나 귀하신 분의 사랑을 입고 있으며,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로 인정을 받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무리 왕자로 태어나도 버림받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예수님 보다 더 사랑해 주셨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희생하시면서 까지 우리를 아들딸로 자녀 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존재이며 사랑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행복한 삶을 보내려면 옷장에 옷을 채우고 거실이 좁을 정도로 가구나 귀한 물건으로 채우고, 여러 개의 냉장고에 먹을 것으로 가득 채운다고 해결되는 것 아닙니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먼저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본문 21절에 보니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부모님들이 제 자녀를 위해서 많은 재물과 시간을 쏟아 영재교육을 시킨다 하여도, 하나님 중심의 신앙 교육에 실패하면 그 자녀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5. 그런데 왜 21절에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제 자녀를 부모의 뜻대로 교육을 시키고 부모 마음대로 진로를 결정하려고 합니다. 심지어 결혼 상대까지 그 선택권을 부모가 쥐고서 자녀에게 강요합니다. 이런 문제로 부모와 자식의 갈등은 증폭이 되면서 가정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불행해집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가정이 행복 하려면,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남편이든지 아내이든지 자녀이든지 부모이든지, 심지어 하인이든지 관계없습니다. 상대방이 나에게서 편안함을 느끼고, 함께 있으면 안심이 되고, 함께 대화를 나누면 힘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모든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이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내 주위 사람들은 힘들어 하고, 내 자녀는 부모의 욕심 때문에 꿈이 망가지고 불행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방글라데시나 인도에 가 보면 인도 사람들이 얼마나 운명론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것도 운명이고 못 배운 것도 운명이고 억울한 것도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삶일수록, 학문이 없을수록 이런 생각이 강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장애물을 넘어가는 그런 행동을 두려워합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하고 내가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그 이유와 목적을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생각해 보니 국가가 그렇게 만들었고, 그곳의 종교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6. 그래서 우리는 본문 23절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이미 전 세계는 상당한 속도로 계급사회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계급사회라고 하면 단어는 이해하면서 실감이 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왜 계속해서 가난해야 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은 왜 계속해서 배움의 기회를 얻기가 어려운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고작 하는 소리가 사회가 잘못되었고, 정치나 지도자들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가난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은 3가지의 장벽에 부딪히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재물의 한계입니다. 같은 첨단 문명의 대도시에 살아도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질이 다릅니다. 둘째는 지식의 한계입니다. 지식이 없으면 남이 보는 것 볼 수 없고, 남이 듣는 것 들을 수 없습니다. 남들이 경험하는 것과 깨닫는 것을 공유할 수 없습니다. 셋째는 인간관계의 한계입니다. 내 수준 이상의 사람들과 교제하고 그들을 만날 길이 없기 때문에 꿈과 노력은 거품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결국 남들과 똑같은 자리에 있어도 나에게는 내가 원하는 기회는 오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이 현대의 계급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계급사회의 특징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길이 없고 가망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노력할수록 한계에 부딪히면서 좌절하고 절망하다 보니 삼포, 오포 세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기회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7. 본문 23-25절의 말씀입니다. 첫째로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화장실 청소를 하고, 식당의 그릇을 씻는 일이 고된 일이라도 이런 일이라도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듯이 하면,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도와주시고 기회를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세상에서 보상을 받을 것이 아니라, 24절의 이 말씀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세상의 상전들이 너희를 어떻게 취급하든지 관계없이 너희에게는 너희에게 보상을 하고 갚아주실 주인이 따로 계시기 때문에 그 분의 보상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세상의 모든 일에는 결과가 있는데, 그것이 불의를 행하는 자에게는 심판의 보응을, 의를 행하는 자에게는 영원하고 의로운 상급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인생이야말로 참 행복의 사람인 줄 믿습니다. 시73편을 보면 시편기자도 악인이 잘되고 의인이 고난을 당하는 이 세상의 부당함 때문에 시험에 들고 괴로워했지만, 마지막에 선악간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하리이다" (시73:28) 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보상은 이 세상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얻는 그런 보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베푸시는 영원한 영광의 보상이 있음을 믿을 때, 그 가정과 자녀들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행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우리가 욕심을 버리고, 내가 먼저 가족과 내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면, 소유나 사회적인 지위와는 관계없이, 인생의 가장 좋은 기회는 하나님이 주실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