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3.13.새사람이 되었습니다(에베소서2:11-22)
[성경본문] 에베소서2:11-22개역개정
11.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12.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새사람이 되었습니다(에베소서2:11-22/2016.3.13.오전)
1. 지난주에도 말씀드린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대결은 어제로 이세돌이 3연패를 당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문화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인공지능은 세계를 정복하고 있습니다.
제가 인터넷으로 필요한 물건을 검색할 때, 같은 물건이라도 어디가 더 싼지 조사를 하면, 제가 검색했던 내용들이 계속 화면에 떠오르면서 당신이 검색했던 이 물건을 빨리 사라는 것입니다.
컴퓨터를 끄고 다시 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검색했던 것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계속 보여줍니다.
이것은 전 세계로 연결되어 있는 인공지능이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인터넷을 계속하다보면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컴퓨터 안에 있는 인공지능은 이미 내가 누구며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고, 성격은 어떻고 생활 패턴이 어떤지 전부 파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토요일 신문을 보니 이미 의료분야, 법조분야는 물론이고 인간이 활동하고 있는 다방면으로 방대한 정보를 가지고 순식간에 업무를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능가하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그 예로 미국에서 어떤 환자가 병원을 찾아왔는데, 의사는 5일이 지나도록 이 사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도 몰랐는데 , 인공지능은 2시간 만에 이 사람의 상태를 파악하고 병명을 알아내어 치료하고 처방을 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 환자가 일각을 다투는 위급 환자였다면 의사는 이 환자를 살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2. 어쨌든 알파고 라는 인공지능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충격이었고 미래에 대한 염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20년쯤 지나면 사람들은 인공지능을 상사로 모시고 일하는 사회가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컴퓨터가 사람을 지시하고 업무를 관리하고, 사람은 현장에서 기계가 시키는 단순한 노동자로 전락하기 때문에 현존하는 직업의 반이 없어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를 내다보면서 인간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의 영장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며,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기계문명의 도래를 앞에 두고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합니까?
그리고 기독교는 이런 세상에서 과연 어떤 존재이며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인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어떤 의미에서 싸움에 이기는 강한 용사를 키우는 종교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하면,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내가 약하면 모든 것이 다 적이고 나를 해롭게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바깥에 나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유는 수기(삼나무) 나무에서 날아오는 꽃가루 즉 화분증 때문입니다.
남들은 숨 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나는 마스크를 써야 숨을 쉴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내 몸이 면역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강하면 다 이길 수 있으며, 내가 강하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3. 그렇다면 우리가 어디에 강해야 하며 우리가 무엇을 이겨야 합니까?
그것은 세상 유혹을 이기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죄가 주는 고통을 이기고, 사단과의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란과 문제에 걸려서 넘어져 울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환란과 문제를 전화위복 시키는 능력의 사람이 되고, 그곳에서 넘어져 일어날 수 없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싸움에서 우리로 하여금 승리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승리자의 삶이며, 무엇을 해야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축복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지 모범이 되어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영광을 통해서, 우리에게 믿음 안에서 얻는 승리가 얼마나 위대하고 귀한 것이며, 그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되고 강한 자가 되는 것은 남 보다 더 많은 것을 얻고 더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함이 아니라, 도리어 예수님처럼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고 병든 자를 치료하고 울고 있는 자를 위로하며, 죄로 말미암아 멸망의 길을 가는 자들을 복음으로 돌이켜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4. 오늘 본문을 보면 "그러므로 생각하라" 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생각하라는 것입니까?
그러고 보면 현대인들은 생각을 별로 하지 않고 사는 것 같습니다.
늘 하던 대로 습관적으로 일하고 먹고 마시고 밤이 오면 텔레비전을 잠깐 보다가 잠자리로 돌아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의 패턴이 깊은 생각을 요구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누구이며 지금 무엇을 위해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 조차 모릅니다.
일정한 수입과 건강만 보장되면 그것이 잘 사는 것이고 복인 줄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생활의 변화를 원하지 않고, 그런 변화가 오면 두려워합니다.
정말 우리가 이렇게 살다가는 인간이 곧 인공지능에게 점령당하고 인간의 삶이 지배당하는 날이 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말씀을 통해 인간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고 과거를 돌아보면서 미래를 향해 소망을 가지고 힘 있게 나아가도록 하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어떤 존재였으며,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 어떤 인생으로 변화되었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간증할 때 사용하는 패턴 그대로의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내 과거가 어떤 존재였는지 그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본문 11-12절을 통하여 우리의 과거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우리의 과거는 "그리스도의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고 하면서, 언약도 소망도 하나님도 없는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5.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의 과거는 형편없는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소망도 없고 기쁨도 없고 자랑도 없고, 믿음 안에서 얻는 확신과 능력도 없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즐기던 죄의 세력이 나와 우리 가족을 영원한 멸망으로 이끌고 있는 것도 알지 못했고, 이 죄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 때문에 대신 죽으신 것도 몰랐습니다.
한 마디로 비천하고 불쌍한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철학이나 과학이나 그 어떤 기술을 습득한다고 해도 인간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을 얻어도 만물의 근본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는 결코 바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도 허무하고 공허하며 인간으로서 진정한 가치와 의미도 모른 채 방황하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너희는 생각하라 그 때에---"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또 어떻게 변화되어야 합니까?
6.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하신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우리 인생의 신분에 놀라운 변화가 왔습니다.
19절에 보니,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고 했습니다.
이방 땅에서 나그네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신분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한국 사람으로서 일본에 사는 것이 많은 제약을 받기 때문에 자신들은 물론이고 자녀들을 위해서도 일본인으로 귀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조선인으로서 또는 한국인으로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안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던 그런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큰 은혜인 줄 믿습니다.
이 사실을 요한은 증거하기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요1:12)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권세는 헬라어로, 「엑수시안」으로 이것은 능력, 더 정확하게 말하면 권리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리는 하나님 자녀의 기업을 함께 누리는 후사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큰 희생을 치르셨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그리스도께서 누리는 그 영광과 유업을 함께 누리는 것이니, 이것은 인간의 그 어떤 공로로도 얻을 수 없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인 줄 믿습니다.
7. 사람이 초등학교만 나와도 세상 사는데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읽고 쓰는 것이나 말하는데 문제없고 돈도 셀 줄 아니 윗사람이 시키는대로 움직이면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나오면 초등학교만 나온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지식과 능력을 가지고 일할 수가 있기 때문에 항상 결과에서 많은 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대학을 나오고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사회로 나가면 세상의 모든 것을 자기 나름대로 판단할 수 있고, 자신의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더욱 넓고 크게 살아갈 수 있는 남다른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도자가 되고 능력 있는 존재로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하물며 만물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이 주어졌으니, 이 사람의 장래가 어떻게 변화되고 어떤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지 세상 사람들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3:18-19절에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도 없고, 그리스도의 존재조차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절대로 넘어갈 수 없는 그런 존재로 변화되고 만 것입니다.
신분이 변화되는 받는 것과 누리는 것과 행하는 것에 엄청난 차이가 오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결과인 줄 믿습니다.
8. 둘째는, 인생의 목적과 방법이 변했습니다.
20절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건물로 만들어진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새로운 건축물로 세워 주시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의 복음의 비밀을 깨달아서 주님 재림의 그 날까지 계속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살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 욕심에 사로잡혀서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십자가의 은혜로 그 욕심이 사라지니 저절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되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복음을 위해 희생하는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짓는 영적 건축물의 모퉁이 돌이 되어 주셔서 그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이 지금 총선을 앞두고 여당이나 야당을 가리지 않고 개판 오분 전이 되고 있습니다.
백성의 눈과 귀를 두려워할 줄 모르는 정치가들이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 내 욕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야고보는 경고하기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주님의 값없는 은혜를 받아 구원받았습니다.
우리가 감동적인 영화 한 편만 보더라도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대신 죽어줄 때, 그 사람의 죽음을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바로 살려고 노력하고, 그 사람이 남긴 말 한마디나 정신을 기리면서 살려고 애를 씁니다.
9.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언은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1:8)는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살려고 결심만 해도, 우리가 가는 곳 마다 하늘 문이 열리고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이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부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소아시아에서 많은 교회가 예수님의 책망을 받고 있을 때, 작고 연약하게 보이던 빌라델비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선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계3:8) 는 이 말씀입니다.
교회가 건물이 크고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훌륭한 교회 아름다운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에 따라서 큰 능력의 교회 아름다운 교회, 하나님께 많은 영광을 돌리는 축복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곳에,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된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새 것을 좋아하고 헌 것은 버리는데, 이것은 우리 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고 헌 사람으로 남아 있는 옛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를 입었으면 새 사람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날 생각이나 옛날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헌 것을 싫어하시는 하나님께 버림당할 수도 있습니다.
10.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현대사회는 불륜의 천국이라고 말할 정도로 성적 윤리가 혼란스럽습니다.
그런데도 지난 번 자민당의 젊은 중의원 한 사람이 부인이 임신 중에 이 문제로 사직을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사람들은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내 위에 선 것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도자에게는 남다른 더욱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재어보고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새 사람이 되었다면, 당연히 우리의 관심이나 생각이나 삶의 모습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변해야 합니다.
그러나 변화라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 우리에게 누구를 보내 주셨습니까?
본문 22절에 보니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우리 안에서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성령님이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새로운 성도, 새로운 교회를 이루어 가도록 도와주시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변화되든지 관계없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사명을 완수하고,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그 목적을 온전하게 성취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초대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성령의 역사는,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자를 고치고, 귀신을 물리치며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면서 전무후무한 부흥의 시대를 가져왔습니다.
인공지능이 바둑의 참피온을 이길 수는 있어도, 이러한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새사람은 이길 수 없습니다.
세상 권세와 온갖 좋은 것들이 사람들을 유혹하고 그 영혼을 파멸시킬 수는 있어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거듭난 사람은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렇게 새롭게 된 사람들을 사용하여 또다시 기독교 역사 가운데서 전무후무한 부흥의 역사를 가져오시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