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15.아합의 길(열왕기하 8:25-29)
[성경본문] 열왕기하8:25-29개역개정
25.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십이년에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니
26.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이더라
27.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그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
28.그가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에게 부상을 입힌지라
29.요람 왕이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울 때에 라마에서 아람 사람에게 당한 부상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더라 유다의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아합의 아들 요람을 보기 위하여 내려갔으니 이는 그에게 병이 생겼음이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아합의 길(열왕기하 8:25-29/2015.2.15.오전)
1. 우리 교회가 매주일 점심에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데, 모두가 맛있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 비빔밥 보다 더 맛있고 유명한 비빔밥은 누가 뭐라고 해도 전주 비빔밥입니다.
그런데 전주는 비빔밥도 유명하지만 식당에서 내어오는 밥상은 진수성찬입니다.
이유는 이조시대부터 내려오는 풍습으로 밥을 팔아서 많은 이익을 내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식당을 하면서도 적게 이익을 내는 것을 자랑삼았고, 항상 밥상에는 그 고장의 인심을 얹어 손님을 대접하다 보니 반찬의 가짓수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또한 행인을 우대하고 남다른 글재주나 그림 솜씨가 있거나 재담이 있으면 그 고장에서는 그냥 먹고 잘 수 있었을 정도로 인심이 좋았다고 합니다.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욕심이 없는 삶이 풍요롭고 평화로운 시대를 만들고 아름다운 고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한국에 한 번씩 가 보면 일본에 비해서 물가는 왜 그렇게 비싼지, 거기에다 인심은 야박하기 짝이 없습니다.
대기업에서부터 시작해서 소상인에 이르기 까지 옛날 조상들의 이러한 인심은 찾아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2. 그런데 일본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본에 살아보면 배울 것이 참 많은 나라가 일본입니다.
장사꾼들에게는 염치가 있고, 상도덕이라는 것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이나 시중의 생선 횟집의 요리사에 이르기까지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장인정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건 하나 만드는데도 자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장인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 물건을 만들어 떼돈을 벌겠다는 그런 생각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 근처 골목이나 시장에 나가보면, 식당도 하루의 분량을 다 소모하면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 곳이 곳곳에 있습니다.
며칠 전에 세계뉴스를 분석하는 방송을 보니, 세계적으로 석유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기름 팔아 떼돈을 벌던 사람들이 여기저기 투자하고, 막대한 재정을 쏟아 설비를 늘리다가 지금 된서리를 맞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여러 국가가 더 올라갈 기름 값을 생각해서 국가재정을 늘렸다가 이제는 기름값 폭락으로 파탄을 맞을 상황에 처한 나라들도 많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원인이 무엇입니까?
사도야고보는 말하기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약1:14-15)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열왕기서를 통해서 욕심에 관한 대표적인 인물로 꼽으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스라엘의 7번째 왕이었던 아합 왕을 꼽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유다 왕 아하시야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 욕심쟁이 아합 왕과 그의 가문의 이야기가 잔뜩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유는 그가 다윗의 후손이면서 하나님을 떠난 아합 왕가와 인연을 맺고 아합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3. 우리가 매주일 열왕기하를 가지고 말씀을 듣고 있는데, 이 열왕기하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남으로 고통이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에 우상과 세상을 사랑한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아합 왕가의 사람들은 자기 욕심을 충족시키려도 하나님을 떠남으로 온갖 죄에 빠지게 되었고, 그 결과로 축복의 땅, 약속의 땅을 빼앗겨 남의 나라에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을 돌이킬 수 없는 저주와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아합은 어떤 사람이며 이 아합 왕이 간 길은 어떤 길입니까?
왕상16:30-33절에 보면,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였” 다고 하였는데, 그가 간 길은 제 스스로 만든 길이 아니라 이미 이전에 있었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갔던 길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솔로몬 왕 이후로 남북으로 갈라졌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만 따랐고, 반역자 여로보암은 나머지 10지파의 지지를 받아 각각 유다와 이스라엘을 건국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자 레위 지파가 유다 편으로 돌아섰습니다.
아합은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오므리 왕조를 세운 오므리의 아들로 7번째 왕이 되었고, 모든 이스라엘 왕들 가운데서 가장 악독하고 탐욕이 가득한 왕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악한 왕이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4. 첫 번째는 조상들과 부친 오므리 왕의 영향력입니다.
둘째는 시돈의 왕녀였던 이세벨과 정략적으로 결혼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부친이었던 오므리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왕상16:25절에 보면,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오므리 왕도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행”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진노를 살만한 행위가 무엇입니까?
여로보암은 솔로몬을 대적하다가 애굽으로 도망가서 솔로몬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로 돌아와서 10지파의 지지를 얻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면서 세겜을 수도로 지정하고, 하나님 대신에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하나님 대신으로 섬기게 했고, 레위 지파가 아닌 일반인들을 제사장으로 세웠으며, 늘 유다나라와 전쟁을 일삼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그 사람의 출생과 성장 배경이 있으며, 한국 사람들이 잘 따지는 고향이나 출신학교, 집안이나 종교적인 배경, 그리고 시대적인 상황이 사람들의 배경이 되는 것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을 세운 이 여로보암은 애굽에서 오랫동안 망명생활을 했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이방신을 섬기는 애굽적인 발상입니다.
그래서 애급의 우상인 금송아지를 세우고 그것을 국가적 종교로 만들었습니다.
솔로몬을 미워하니 유대교적인 것을 싫어했습니다.
이런 사상과 행동이 오므리에게 전수되고, 이것이 그 아들 아합에게 이어진 것입니다.
아합은 이방 여인 이세벨을 통해 이전의 왕들보다 더욱 악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영적인 배경을 가지고 아달랴는 아하시야에게 시집을 온 것입니다.
5.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아달랴, 아합, 요람은 원래 다윗왕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남왕국 유다 나라와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달랴가 이런 배경을 가지고 유다의 왕에게 시집을 왔으니, 결국에는 남북 왕조가 함께 멸망하는 비극을 가져 온 것입니다.
아하시야는 하나님의 언약이 있는 다윗의 혈통이었지만, 아달랴와 결혼함으로 영적 배경은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의 죄악에 가담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아합 집안의 잘못된 영적 영향력은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관계, 맺어서는 안되는 그런 관계를 통해 개인의 인생은 물론이고, 국가적인 재앙을 가지고 오고 말았습니다.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것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소유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본 왕후 이세벨이 치밀한 계획을 짜고 나봇을 하나님을 모독한 죄를 뒤집어 씌어 죽이고 그 포도원을 강탈하고 말았습니다.
자신들의 계획은 성공했지만 씻을 수 없는 죄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악한 자의 형통은 곧 재앙이요 자자손손이 받는 저주라는 사실을 아합 왕가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뜻대로 된다고 결코 좋아해서는 안 될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그슬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혈통을 통해서 내려오는 죄악의 씨앗은 무서운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뿐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모든 역사적 사실의 배후에는 반드시 영적인 배경이 있으며, 그 속에는 사단이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 우리는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의 관계에서 보면 늘 이스라엘은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역사적으로 정통성이 상실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조는 늘 영적 정체성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금송아지를 섬기고, 레위 지파 대신에 다른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운 것이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노력하면 할수록 그 결과는 하나님을 더욱 떠나게 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의 진노를 더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양쪽 왕조의 세력이 10대2, 혹은 9대3으로 이스라엘이 절대적인 우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누구든지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면 평안이 없습니다.
정체성이 흔들리니 북왕국 이스라엘은 늘 왕조가 흔들리고 배반의 연속이었습니다.
정신병자와 불치병으로 고생하고 폭군들이 계속 등장하고, 우상숭배는 갈수록 만연하면서 국가는 늘 위기 가운데 있었습니다.
7. 오늘 본문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왕이 아합 집안의 길 곧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27)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기준을 파괴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보는 기준과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은 다릅니다.
그래서 신앙심이란 하나님의 기준에서 보는 것입니다.
한 때 서울의 중심에 있는 옥인동, 누상동, 통인동 일대는 금은보화가 묻혀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땅값이 한동안 치솟은 적이 있었습니다.
옛날에 공주가 이곳에 살면서 많은 패물을 땅에 묻어 두었고 후손이 없이 죽었다 보니 임자 없는 보물이 묻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장지연이라는 사람이 기록한 일사유사(逸士遺事) 라는 문헌에 보면, 어느 가난한 과부가 두 아들을 키우는데, 어느 날 떨어지는 낙숫물 밑에 가마솥이 드러나고 있었고, 파서 보니 금은보화가 가득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현명한 어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묻어버리고는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재물이 자라나는 자식들에게 재앙이 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지혜로운 사람의 아들이 김학성 이라는 사람으로 순조 임금 때 부재학을 거쳐서 이조판서에 이른 사람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8. 남녀노소를 가라지 않고 최우선적인 인간의 공통점이라면 그것은 단연 욕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욕심은 있습니다.
문제는 이 욕심을 우리가 방치하면 이것이 우상숭배로 자라나게 되고, 우상숭배는 모든 재앙을 불러 온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욕심을 이 지혜로운 어머니처럼 땅에 묻어야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욕심 때문에 그것을 파낸다면 그 때부터 재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하17:22-23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로보암이 범한 모든 죄를 따라 행하여 그기서 떠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든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더디어 이스라엘을 그 앞에서 내쫓으신지라 이스라엘이 고향에서 앗수르에 사로잡혀 가서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고 했습니다.
아합 집안의 욕심이 그 가문에 재앙을 불렀고, 그 재앙은 이스라엘과 유다나라를 송두리째 망하게 만들었습니다.
아하시야 임금은 아합 집안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끊어버리지 못하다가, 요람 왕을 찾아가다가 반란을 일으킨 예후의 손에 양쪽 왕국의 임금이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이세벨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어머니인 아달랴에게 몰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제 손자들을 마치 병아리 밟아 죽이듯이 그렇게 죽였는데 이유가 무엇입니까?
권력을 향한 욕심 때문입니다.
9. 오늘 우리는 내 욕심을 따라 가면 잠시는 잘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 아합 집안처럼 재앙 가운데 빠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내 욕심을 따라 가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이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 칠 때, 하나님은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욕심을 씻어 주시고, 조상들의 잘못된 유전을 끊게 만드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롭고 영원히 사는 복된 길을 나와 우리 자녀들에게 열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