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8.10.승리 없는 전쟁(열왕기하 3:21-27)

[성경본문] 열왕기하3:21-27개역개정

21.모압의 모든 사람은 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를 치려 한다 함을 듣고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그 경계에 서 있더라

22.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찍이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치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23.이르되 이는 피라 틀림없이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모압 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 하고

24.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들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25.그 성읍들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매꾼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26.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찬 군사 칠백 명을 거느리고 돌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가지 못하고

27.이에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승리 없는 전쟁(열왕기하 3:21-27/2014.8.10.오전)
1. 요즘 지구촌에는 전쟁 뉴스로 가득합니다.
시리아의 내전을 시작으로 이라크의 내전과 우크라이나의 내전,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하마스와의 분쟁이며 많은 곳에서 전쟁은 진행형이고, 지금은 잠잠하지만 잠재적인 분쟁 지역도 많습니다.
이로 인해 수무한 사람들이 전화에 휩쓸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도 빼앗긴 채 신음하다가 파리 목숨처럼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평화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사2:4) 고 하면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평화의 나라를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끊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육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대가가 곧 전쟁인 것입니다.
열왕기서에서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사상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며,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축복과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열왕들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그들의 행위가, 더 정확하게 말해서 그들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따라서 축복과 저주가 그들 위에 임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사실에 대하여 우리에게 분명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2.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유다와 암몬이 연합군대를 이루고 이스라엘을 배신한 모압을 치고 있습니다.
모압 왕은 이 일을 위해서 젊은이에서부터 시작하여 노인에 이르기까지 병기를 잡을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동원해서 국가를 방위하고 있습니다.
모압 왕은 이렇게 모든 것을 동원했지만 연합군의 공격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24절에 보면 많은 모압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고, 25절에 보면 성읍들은 파괴되고 좋은 땅은 돌무더기를 이루고, 모든 우물들과 물의 근원을 이스라엘이 매워 버렸고, 나무들까지 배어내고 말았습니다.
역사에도 보면 1, 2차 포에니 전쟁을 통해서 지중해의 지배자였던 칼타고는 기원전 146년에 로마에게 완전히 망했습니다.
그러나 최후까지 항쟁한 결과 분노한 로마는 약탈과 방화로 칼타고를 완전히 폐허화 시켰고, 그 땅에 소금을 뿌려 두 번 다시 경작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으며, 그곳에 살고 있는 모든 거민들을 추방하였는데, 배반한 모압에 대한 이스라엘의 분노도 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모압의 결정적인 패인은 모압왕과 그 군대의 잘못된 판단 때문입니다.
본문 22절 이하를 보면 “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찍이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치므로 맞은 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이르되 이는 피라 틀림없이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모압 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 고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물 없는 곳에 물이 흘러오는데 아침 햇살을 받은 골짜기 주위에 있는 붉은 암벽이 물에 반사되어 마치 피처럼 보였고, 이것을 모압 왕은 연합군인 3국 동맹의 실패로 본 것입니다.
모압 왕은 이것이 하늘이 자신들을 도와 준 결과라고 생각했지만, 지난주에 말씀 드린 대로 이것은 엘리사 선지자의 말대로 하나님이 하신 작은 일에 불과하였습니다.

3. 이것은 하나님이 악한 모압을 속여 잘못된 판단을 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판단으로 섣불리 덤벼 든 모압 군대는 대패하였고, 성읍들과 옥토들은 황폐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본문 26절에 보면 모압 왕은 마지막 수단으로 비교적 약세로 보이는 에돔을 치고, 에돔 왕을 사로잡으려 했지만 이 마저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마지막 방법이 무엇입니까?
27절에 보니, 자기 아들인 황태자를 데려다가 성벽 위에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모압의 주신격인 그모스에게 불에 태워 제사의 제물로 드린 것입니다.
그는 전세의 불리함을 만회하고자 종교적 광신으로 패악을 부린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모스는 모압에게 전쟁의 신이요 승리의 신이며, 특히 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조의 압제에서 해방을 얻게 하였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모스에게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면 신의 진노를 면하고 도움을 얻어 전쟁에 승리할 줄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모스 신에 관해서는 솔로몬이 모압의 여자들을 첩으로 데려올 때,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자신들의 신을 숭배하도록 솔로몬이 그들을 위해 산당을 지어 주었고,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만들었습니다(왕상11:6-9).
그러나 다윗은 수많은 전쟁을 통해 국토를 넓혔고 이로 인하여 많은 피를 흘렸지만, 다윗은 전쟁이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인 줄 믿었기 때문에(삼상17:47) 물매돌로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도 이긴 것입니다.
어찌 전쟁만이 하나님께 속한 일이겠습니까?
인간의 생사화복도 하나님께 속한 것인 줄 믿었기 때문에 그는 늘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4. 하나님은 우상 숭배하는 것을 미워하시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우상을 위해서 자녀들을 불살라 번제로 드리는 것을 더욱 미워하시는 분입니다.
신12:31절에 보면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죄로 자신들의 신들에게 자녀들을 불살라 제물로 드리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모압왕의 이러한 행위를 기록한 내용이 없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본문 27절의 하반부를 보면 이것이 이스라엘 군대에게 매우 충격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가지고 이스라엘에게도 책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하므로 이스라엘이 두려운 마음으로 퇴각을 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내용의 흐름을 보면 왕이 황태자까지 번제의 제물로 드리는 것을 본 모압의 군대가 신들린 사람들처럼 분노를 가지고 그들을 공격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감당하지 못해 퇴각을 했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발견하게 된 사실 한 가지는, 이 전쟁에서 승자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여기 모인 나라의 군대와 왕들이 모두 패배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연합군대나 모압은 유다 군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우상숭배에 빠진 사람들이요 나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 하면서 제 마음대로 나라와 민족을 경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5. 또한 유대 나라의 여호사밧 임금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지만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유대 나라도 맛 잃은 소금과 같은 존재였으며, 여호사밧은 이 전쟁을 위해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배신한 모압을 치기 위해서 함께 모였지만 도리어 물 없는 위기를 만나 죽음 직전에 선지자의 도움으로 살아날 정도로 한심한 군대였습니다.
이 전쟁은 시작부터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없이 시작된 싸움이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탐욕과 잘못된 판단과 분노로 얼룩진, 그래서 정의도 없고 공의도 없으며 인륜도 없는 광기로 가득한 집단들의 모임일 뿐이었습니다.
이런 모임에 여호사밧 임금이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참여했으니, 이 유대의 군사들과 여호사밧 왕이야 말로 맛을 잃은 소금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말씀에 불순종하고 주어진 사명과 의무를 게을리 한다면, 그래서 제 마음대로 산다면 살면 살수록 고생할 뿐입니다.
이것은 복과 은혜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도망가는 삶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하는 우리가 세상 사람들 보다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승리도 없는 전쟁, 도중에 그만두고 도망갈 전쟁이었다면, 그래서 엄청난 손해와 고생을 당하고도 얻는 것이 없다면 왜 이 전쟁을 시작하였습니까?
이것은 모압 군대만이 상황 판단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함께 모인 모든 나라가 잘못 판단한 결과 입니다.
그래서 이 싸움은 승자가 없는 전쟁이었고, 어느 누구도 승리할 수 없는 전쟁이었고, 피차간에 엄청난 피해만 입은 패배자들 뿐인 전쟁이었습니다.

6.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소아시아 7교회가 나오는데 “이기는 그에게는” 이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이긴다는 말입니까?
신앙의 순결을 지키는 것, 곧 영적인 싸움에서의 승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군대를 이끌고 죽을 고생을 하고 많은 것을 소진하고 나서 적군을 섬멸하면 그것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겠습니까?
역사에 보면 어떤 사람들은 칼 하나 휘두르지 아니하고 총 한 방 쏘지 아니하고도 승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물이 없어 죽을 고생을 하고도 그들은 깨닫지 못했고, 그 전쟁을 승리하지도 못한 것은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영적인 싸움에서의 패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뜻이나 내 고집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지배하고 나를 주관하시는 것이지 내가 하나님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통제 안에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의 통제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만 기억한다면 우리는 사업이 망하고 내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간다고 할지라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면 사업이 망했다면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고, 불행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7. 우리가 여기서 잠시 창세기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을 때 나이가 몇 살이었습니까?
창17장에 보면 나이가 99세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표시를 위해서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할례라는 것이 간단히 할 수 있는 그런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이 할례를 받다가 죽는 경우도 많았고, 창34장에 나오는 대로 할례를 행하다가 히위 족속처럼 적의 공격을 받아 몰살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하물며 99살의 노인이 할례를 받는 것은 생명을 건 모험입니다.
그런데 24절에 보면 아브라함도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언약이 무엇을 의미하는 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하나님의 변함없는 보호와 축복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었고 의지였으며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생명을 걸고 할례를 행하였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형통하였고, 고난과 어려운 일들이 도리어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유다와 에돔과 동맹하고도 연약한 한 모압을 이기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것은 우리의 행동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 우리의 자세를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8.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없이 승리 없는 전쟁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소모하고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불평하며 말하기를 하나님께 이렇게 충성하는데도 하나님은 복을 주시지 않으며 자기 백성된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면 서도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도 희생하기를 기뻐하셨는데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빌2:9-10), 하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셨습니다(히8:1).
바로 이것이 진정한 승리요 승리한 자가 얻는 영광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오늘 부터라도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힘써 구하며 그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금부터 영원토록 승리의 영광을 얻도록 하시되 더 풍성하도록 얻도록 매일 도우시고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コメントを残す

メールアドレスが公開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が付いている欄は必須項目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