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6.22.하나님 없는 이스라엘(열왕기하 1:1-8)
[성경본문] 열왕기하1:1-8개역개정
1.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2.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3.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5.사자들이 왕에게 돌아오니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하니
6.그들이 말하되 한 사람이 올라와서 우리를 만나 이르되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
7.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올라와서 너희를 만나 이 말을 너희에게 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더냐
8.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 하나님 없는 이스라엘(열왕기하 1:1-8/2014.6.22.오전) 1. 지금 브라질에서는 세계의 축구 강호 32개국이 모여서 월드컵 경기를 펼치고 있습니다.많은 경기를 통해 출전국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세계 1위의 스페인이 15위의 네델란드와 17위의 칠레에게 각각 5대1, 2대0으로 대패를 당하여 예선에서 탈락한 경기입니다. 한국은 현재 러시아와 1무의 전적을 남겼고, 일본은 1무 1패로 상황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보기가 민망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선수들의 반칙이 아니라 몸에 문신자국이 가득한 선수들의 모습입니다. 특히 온 세계의 어린아이들의 그들을 영웅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모습은 결코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문신을 새긴 선수들은 최소한도 긴바지에 긴 팔의 유니폼을 입고 나오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월드컵 경기를 보면 경기장에 각각 11명으로 구성된 두 나라의 대표팀 22명이 작은 축구 공 하나를 놓고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공을 상대방의 골에 넣기 위해서 선수들은 제 몸을 돌보지 않고 싸우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 몸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마는, 이 선수들은 자기 몸을 돌보지 않을 정도로 치열합니다. 특히 골키퍼는 말 그대로 골을 지키기 위해 제 몸이 부서지고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방어를 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 하나의 목표, 우승의 영광을 얻기 위함입니다. 승리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완전히 축구 전쟁입니다. 아시아를 대표해서 나간 한국과 일본이 우승까지 넘볼만한 실력은 아니더라도 남은 경기에 최선을 다해서 아시아가 자랑할 만하고, 세계가 인정하는 그런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2. 오래 전에 우리가 열왕기 상을 설교로 들었기 때문에, 오늘부터는 열왕기하 강해를 시작하는데, 열왕기서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왕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스라엘의 역사서인데, 이 내용들을 보면 한 마디로 영적인 전쟁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을 향한 은혜와 구원의 역사에 대하여 이방신들을 우상숭배 하는 세력들의 도전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를 유일한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유일신 사상을 가진 하나님 중심의 거룩한 백성들을 향한 세상 권세를 잡은 사단의 세력들의 도전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이 지구촌의 역사가 끝나는 순간까지 늘 이러한 영적인 전쟁은 반복되지만, 하나님 중심의 신앙세력을 세상과 마귀가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사실과, 멀지 않은 장래에 이 사단의 세력들과 그곳에 굴복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던 자들은 전부 결박되어 무저갱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고통을 당하고, 마지막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사수한 우리 모두는 아버지의 나라 천국에서 영원히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을 얻는 줄 믿습니다. 3. 오늘 본문은,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 시대의 변천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다윗왕의 아들 솔로몬이 죽자 나라는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나라로 분열이 되었고, 이 북왕국 이스라엘에 오므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므리는 이스라엘의 3번째 왕인 바아사와 그의 아들 엘라의 군대장관을 지내던 사람이었는데, 시므리의 반란을 진압하고 백성들의 지지를 얻어 이스라엘의 6번째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 악독하기로 유명한 아합이었고, 이 아합이 이방여인인 시돈의 엣 바알의 딸과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하시야왕입니다. 오므리는 모압 같은 이웃 나라를 굴복시켜 조공을 받을 정도로 이스라엘을 강력한 왕국으로 만들었지만, 그의 오므리 왕조는 아하시야 아들인 증손자 요람 때에 예후의 반란으로 삼십 수년 만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시대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들 가운데서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과 우상숭배입니다. 결국 이 우상숭배 때문에 오므리 왕가를 포함한 아합의 집안이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누구입니까? 모세의 인도를 받아 애굽에서 해방된 히브리 민족, 곧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비록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져 있었지만, 하나님은 유다나 이스라엘에게 계속해서 선지자를 보내시고 그들에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도록 하였고, 유다 나라에서는 몇 번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4. 이 우상숭배의 중심에는 인간의 어리석은 욕심과 교만한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떠난 사람들의 특징이고 그 결과는 우상숭배 때문에 반드시 멸망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이 본문 2절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합의 아들인 아하시아 왕이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왕이 통풍이 잘되는 지붕위에 있는 다락에서 계단으로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서 사고가 낫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사고로 다치는 것이나 병드는 것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이런 일 자체를 가지고 그 사람이 망했다거나 저주 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멸망과 저주의 징조는 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평상시에 가졌던 마음과 생각이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골절이나 출혈로 인하여 병이 중하게 되었고, 마음이 불안해진 아하시야 왕은 이 병이 살 수 있는 병인지 아니면 죽을병인지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생과 사에 대한 인간의 본능 문제가 나왔습니다. 옛날에는 일제 전자제품을 사면 고장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십 수 년 전부터 고장이 잘 나고, 그래서 만든 회사에 수리를 요청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장난 전자 제품을 만든 회사에 맡기지 않고, 엉뚱한 자전거 수리점이나 문짝을 만드는 목수를 찾아가서 고쳐 달라고 하면 말이 안됩니다. 그런데 이 말이 안되는 일을 아하시야 왕이 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찾지 않고 우상을 찾습니까? 5. 우리 인생과 세상 만물은 여호와 하나님이 당신의 계획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 분이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에 우리 인생에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을 찾아야 문제가 해결되고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하시야는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고 에그론에 있는 바알세붑이라는 우상에게 병이 낫겠는지 아니면 죽을병인지 물어보도록 사람을 보냈습니다. 바알세붑의 바알은 주인이라는 뜻이고, 세붑은 사람을 귀찮게 구는 더러운 파리를 의미합니다. 그는 유일하신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버리고 여러 종류의 바알신을 섬기는데, 그 중에 하나인 파리 신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아하시야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면 얼마나 어리석고 불쌍한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하시야는 그 선왕인 아합의 성품과 영향력을 그대로 물려받은 사람입니다. 그 아비 아합이 어떤 사람입니까? 시돈의 바알 제사장의 딸인 이세벨과 결혼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세벨의 부친은 시돈왕 펠레스를 죽이고 그 나라의 왕이 된 사람입니다. 이러한 부친의 종교적인 배경과 배신과 잔인함에 영향을 받은 이세벨은 이웃나라 이스라엘의 왕에게 시집와서 생명을 걸고 열심을 낸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바알신을 섬기는 우상숭배를 온 이스라엘에 전파하는 일이고, 그래서 나라 사방에 바알 신당을 세우고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도록 만들었고, 둘째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철저하게 신앙을 탄압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이세벨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사람이 아합왕이고 그 아들 아하시야입니다. 6. 이런 영적인 배경을 가진 아하시야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우상숭배를 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들이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삶의 현장에서 관철 시키지 못하면 자녀들이 그 모습을 보고 배우며, 결국에는 이세벨이나 아하시야가 가는 길을 답습하기 마련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다신론, 범신론, 우상숭배로 가득한 일본 땅에서는 연약한 신앙인으로서의 우리 자녀들에게는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는 것처럼 사는 것 자체가 저주요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아합과 이세벨의 자녀라도 인생의 위기를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3절에 보니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어 엘리야 선지자를 왕의 사자를 만나도록 합니다. 그 때 왕의 사자가 선지자를 통해서 들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말입니까? 이스라엘이 확실하게 택함 받은 여호와의 백성이고, 이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계시는데 어찌하여 너희가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순종하는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신명기4:39에 "그런즉 너는 오늘 위로 하늘에나 아래로 땅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다른 신은 없는 줄을 알라" 고 하였고, 왕상8:23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 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하시야는 이런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이세벨이 가르쳐준 이방의 우상숭배에 빠져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올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아하시야에게도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바엘세붑에게 물으러 가는 도중에 왕의 사신을 만나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전달케 하였습니다. 이것은 왕 자신에게는 물론 전 이스라엘에게 불행 중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이라도 우상숭배의 죄에 빠진 사람에게도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이 위기를 만나 제 스스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가 우상숭배로 망해가는 이스라엘과 아하시야를 구원하기 위해 여호와의 사자와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십자가 위에서도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죄인 되었던 우리가 먼저 요청해서 이루어 진 일이 아닙니다. 죄 가운데 빠져 온갖 고통과 저주로 신음하고 소망이 없이 죽어가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펼치시고 우리를 먼저 초청하신 것입니다. 어떤 종교에서는 인간이 스스로 깨달아 구원을 얻는 것처럼 가르치지만,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진 인생은 스스로 깨달을 수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도 없는 지극히 연약하고 불쌍한 인생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아무런 공로가 없으며, 자랑도 있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증거요 자랑인 줄 믿습니다. 8. 그런데 엘리야 선지자는 왕의 사자에게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게 반드시 죽으리라"(4) 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이것이 무슨 하나님의 은혜이며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병 든 사람은 더 절망 속으로 고통 속으로 몰아가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만일에 이 말씀이 어떤 사람들의 생각처럼 그런 것이라면 우리야 말로 절망과 고통 속에서 아무런 소망도 없이 저주 가운데 영원히 죽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이 무엇이라고 선언했습니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라고 하였으며, 모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정욕 가운데서 버림당한 존재들이요 오직 하나님의 심판만이 그 위에 머물러 있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신음하고 고통 하는 인간의 실상이 어떤 것인가를 먼저 알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인간 스스로에게는 구원을 얻을 만한 능력이 전연 없는 사실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그 분의 자녀된 자로 영광의 옷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4절의 말씀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온 이스라엘과 아하시야 왕을 향한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9. 문제는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아하시야의 반응입니다. 그는 이 말씀을 듣고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여호와 하나님을 경멸하였고, 그 분의 말씀을 증거하는 선지자를 잡아 죽이려고 군대를 보냈습니다. 엘리야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하고 말았습니다. 인생이란 상대적인 존재입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에 따라서 죽을 생명도 살아날 수 있고, 당연히 사는 줄로 아는 생명이라도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국 속담에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다는 이 말도 빚진 사람이 돈을 빌려준 그 사람에 대한 태도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말입니다. 아합의 집안이 이세벨의 악한 영향에 빠져 하나님을 대적하고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도록 만들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오, 이 백성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하시야는 온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였고, 그것이 결국은 자신과 온 아합 집안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망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개인이나 권력이나 집단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부정한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시며, 언약의 백성을 축복하시고 넘치는 은혜를 베푸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백하기를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고 하였습니다. 10. 우리의 신앙생활은 한 편으로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신앙을 망가뜨리고 영적 항해를 파선하도록 만드는 사단의 세력이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하나님 중심에 서서 죄와 인생의 모든 문제 속에서 오직 하나님을 찾으며 그에게 도움을 구할 때,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기뻐하시고 반드시 좋은 길을 여시되 영원히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