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27.개혁주의 신앙(고린도전서 12:12-13)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2:12-13개역개정
12.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 개혁주의 신앙(고린도전서 12:12-13/2013.10.27.오전) 1. 지난 금요일 마이니찌 신문의 1면 하단에 있는 「여록(余錄)」에 보니, 오사카의 한신한큐호텔의 레스토랑의 불상사를 고발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7년 반 동안 식당 메뉴에 표시된 것과는 다른 재료를 사용해서 요리를 만들어 오다가 적발이 된 것입니다. 활어로 요리를 한다고 해놓고는 실상은 냉동된 죽은 생선으로 요리를 만들었고, 국가가 지정하는 엄격한 지침에 의해 사육하고 관리되는 상품의 지도리(地鶏)라고 불리는 닭으로 요리를 한다고 해 놓고는 실제는 시장 어느 곳에서나 값싸게 팔리고 있는 닭을 가져다가 요리를 하는 등, 소비자를 속이는 내용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유명 호텔의 이름 뒤에 숨어서 그 신용도를 이용해 8만여 명의 손님들을 속여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어제 오늘에 갑자기 생긴 일도 아니고 우리 사회에서 늘 소비자가 당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신문은 에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옛날 에도에,「야오젠(八百善)」 이라는 최고의 요리 집이 있었는데 어느 날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는「오차즈께(お茶漬)」 라는 지극히 간단한 식사를 주문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요리집 주인은 그 손님들을 한 나절이나 기다리게 해 놓고는 내어 온 식사의 요금이 오늘날의 금액으로 환산하면 무려 9만 엔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깜짝 놀란 손님이 이유를 물었더니 이 오차즈께에 어울리는 차를 만드는데 필요한 물이 이곳에는 없기 때문에 멀리 있는 다마가와라는 강까지 발빠른 「하야비갸꾸(早飛脚)」를 시켜서 길러온 물이니 운임비가 많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소문이 나자 이 음식점은 더욱 인기를 끌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혹시 아무도 모르게 요릿집 뒤뜰에 있는 우물물을 길러다가 장사를 했는지 알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높은 신용도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속이는 일이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2. 사실은 후꾸시마 원전 사고 이후로 쌀이며 고기며 채소며 생선 등의 산지를 보고 물건을 고르는 일이 당연한 일이 되고 있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업자들의 산지를 속이는 위장전술에 우리가 속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문명이 발달하고 첨단 기술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신용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는 작은 사고들 역시 불량품 때문이고 보면 그만큼 우리에게는 신용이 중요하지만, 실상은 더 이상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그런 불신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오늘은 10월 마지막 주일에 지키고 있는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개혁주의 신앙을 표방하는 우리로서는 개혁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고 때로는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기도 합니다. 특히 중세시대의 암흑 속에서 종교개혁의 깃발을 들고 일어난 루터며 칼빈이며 츠윙글리 등의 사람들이 부패하고 타락한 중세교회를 향해 목숨을 걸고 저항하며 바른 신앙과 신학을 사수한 사람들의 개혁운동이 오늘의 우리를 존재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 모습은 그리스도인들은 물론이고 세상 사람들도 교회를 보고 개탄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문제가 많다고 하는 것은 교회 자체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그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교회는 성자들만 모이는 곳이 아니라 도리어 온갖 문제투성이의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문제가 생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온갖 불의에 오염된 그런 인격을 가지고,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왔다고 하루아침에 변화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습관이며 삶의 모습은 쉽게 변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3. 문제는 주님의 몸 된 교회라는 존재가 세월이 갈수록 교회가 가진 본연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교회의 참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강림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지상교회로부터 시간적으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교회가 제 모습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런 일에 제동을 걸기 위해 일어난 개혁 운동이 시대마다 있었지만, 이런 신앙개혁 운동으로 인해 교회가 일시적으로는 제 모습을 회복할 수 있었지만 교회의 근본적인 세속화는 막을 수 없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부패는 물론이고 성도들의 세속화로 인한 타락현상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2천년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오늘 우리 시대의 교회가 예수님이 원하시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가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우리의 이 모습과 삶이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지 우리 자신들조차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개혁주의 신앙이라고 말 할 때, 소위 대한민국의 장로교회라고 하면 개혁주의 신앙의 선봉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자부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과 그들이 움직이고 있는 단체나 기관들을 통해 신앙적인 개혁이 일어나고 있느냐 하면 도리어 실망스러운 일들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교회가 이래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늘 개혁을 외치고 변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변하는 것은 세월뿐이고 사람이 바뀌고 이름만 바뀔 뿐 교회의 모습은 그대로입니다. 바로 이것이 개혁주의를 외치는 개신교 신앙인들의 한계인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도라는 장사꾼의 길이 있고 도리가 있고 원칙이 있듯이,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율법이 있고 말씀이 있습니다. 그 속에 우리가 가야할 길이 있고 행할 모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마치 사사 시대에 사람들이 제 마음대로 생각하고 제 마음대로 사는 것처럼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사도행전 1-2장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그들에게 불같이 임했고, 사람들은 능력을 받아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사람들을 성령으로 충만케 하신 하나님의 의도, 즉 그 분의 목적을 오해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충만은 열심히 강조하면서 그 충만의 목적을 잊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충만이 마치 도깨비 방망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 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이 성령강림의 목적이었고, 충만의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 되기보다는 다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성령 충만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 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성령충만의 목적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초월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 되는데 있습니다. 5. 그런데 우리는 성령은 충만한데 하나 되는 일에는 실패했습니다. 성령으로 모든 것을 초월하여 마땅히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겉으로 보면 성령 충만한데 안으로는 하나가 아니라 분열이고 불일치이고 분쟁뿐입니다. 어떻게 이런 것을 가지고 성령의 열매라고 말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성령 충만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 되지 못했다는 것은 그 충만이 가짜라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목적은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하는데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장차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이 세상 보다는 더 좋은 나라, 세상에서 누리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런 고차원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이고 틀린 기대는 아니지만, 우리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요14장에 보면 예수님이 우리를 예비하신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시면서 반복해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면서 20절에도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을 것" 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15장에서 같은 의도로 포도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6. 천국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하나가 될 때 이루어지는 나라요 하나가 될 때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됨 혹은 연합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었"(롬12:5)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많은 숫자로 나뉘어져 있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온전한 하나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각각 다른 지체와 인격이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동일한 존재로 변형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이기만 하면 날마다 싸우고 있습니다. 내 못 먹는 감 찔러나 보고, 그것도 아니면 너 죽고 나죽자는 식으로 싸웁니다. 3천명, 5천명, 1만 명 모이는 큰 교회가 의롭고 거룩한 일을 하고 아름다운 선행으로 열매를 맺는 일은 대단히 귀하고 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몇 십 명, 백여 명 전후, 몇 백 명 모이는 이런 교회들이 수백 개, 수천 개의 교회가 모여서 힘을 합쳐 이런 일을 하면 더 귀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 되어 힘을 합쳐서 하는 일이 더 귀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 됨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일이 잘 안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욕심 때문에 망하고 피투성이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지금 우리에게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3) 고 질타하고 있습니다. 7. 한국 교회가, 아니 우리 교회가 위기 가운데서 사는 길이 무엇입니까? 이 욕심의 주체인 내 자신을 먼저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개혁주의 신앙이란 결코 말이나 글로서 표현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개혁주의 신앙이란 제일먼저 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과거뿐만이 아니라 온갖 욕심과 허영과 어리석음까지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말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평소에 말하기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음 받은 이 몸이니 주님 위해 살다가 주님 위해 죽는 다면 이것보다 더한 (인생의)성공이 어디에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고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이미 못이 박힌 인생에게 신앙의 핍박인들 두려울 것이 있겠으며, 순교로 목이 떨어진들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손양원 목사님은 제 자신이 말한 대로 사셨고, 제 자신이 말한 대로 순교의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앙은 제 자신을 먼저 십자가에 못 박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에 대하여 말을 많이 하는데 무당도 귀신이 충만하면 능력을 행합니다. 문제는 무당이 귀신에 충만한 것은 악한 귀신에게 사로잡혀 주종의 관계가 형성되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악을 행하는 것이지만, 성도가 성령으로 충만한 것은 주종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연합이요 일치요 거룩하고 의로운 일을 위해서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성자 안에 계시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 것처럼, 우리 또한 그 분 안에 온전히 하나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성령 충만인 것입니다. 8. 그래서 사도바울은 갈2:20절에서 고백하기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 했습니다. 제 자신을 먼저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면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제 자신을 먼저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제 자신을 먼저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면 원수까지도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욕심 때문에 형제도 원수로 만들고, 이웃도 원수가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죄인 되었던 우리와 하나가 되시고자 십자가에 아들을 내어 주셨는데, 과연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 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희생한 것이 무엇입니까? 개혁주의, 개혁신앙, 개혁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로 그것도 원죄와 자범죄로 오염되고 보니, 늘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특히 아직도 세상을 주관하는 죄의 세력은 인간을 광명의 빛 보다는 어둠에, 생명과 진리 보다는 사망으로 유혹하여 불의에 사로잡혀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옛날의 죄 가운데 살던 삶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에 알게 모르게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그런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 바로 개혁입니다. 9. 개혁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자신을 바꾸는 것입니다. 한두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 까지 평생을 시도하는 것이 개혁입니다. 예전보다 기도하지 못한다면 이제부터는 더 많이 기도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말씀에 미련한 자는 말씀에 지혜로운 자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사명과 직분을 받고도 불충한 자로 남아 있지 말고 이제 부터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개혁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도 이 구원을 더 아름다운 열매로 승화시키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바로 이런 일에 힘쓰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이것이 진정한 개혁주의 신앙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