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7.무엇을 원하느냐(마태복음20:17-28)

[성경본문] 마태복음20:17-28개역개정

17.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18.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19.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20.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무엇을 원하느냐(마태복음20:17-28/2013.1.27.오전)

1. 며칠 전 한국 신문을 보니 박 대통령 당선인에게 인사 청탁을 했다가는 무안당하기 일쑤이고, 잘못 하다가는 모든 것이 끝장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신뢰할만한 측근들이라도 어떤 자리에 적당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추천하게 되면, "이러려고 그러셨어요?" 이 한 마디에 더 이상 말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섬기고 따르는 지도자를 대통령에 당선시키려고 참모들이나 측근들, 그리고 지인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면서 수고를 많이 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박 당선인의 태도는 대단히 섭섭한 일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관행이나 문화, 습관으로 보면 도움을 받으면 그 도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나 편의를 봐 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런 생각을 사진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박 당선인에게 접근했다가 무안을 당하는 것은 참으로 민망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경우도 박 당선인처럼 개인적인 인맥을 통해 청탁을 해 오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의 태도 역시 주위 사람들을 섭섭하게 만드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 그동안 잘못되어져 온 우리의 신앙적인 잘못된 관습을 깨트리고, 제자된 우리에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잘 살펴서 남은 생애를 주님의 뜻대로 쓰임 받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자 합니다.
 
2. 예수님은 12제자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계실 때,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제 마음대로의 생각과 상상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갈릴리를 중심으로 활동하시던 예수님이 수도인 예루살렘을 올라가시는데, 그 모습이나 표정을 볼 때 매우 비장함이 엿보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제자들은 생각하기를, 예수님이 이 썩어빠지고 무능한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왕정을 무너뜨리고 새 나라를 세우시려는 것이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길이 신이 나고 큰 기대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그가 행하신 기적과 능력들을 볼 때 충분히 무혈 쿠데타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제자들은 불안하도록 만드는 것이 있었습니다.
12명의 제자들 중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권력을 잡을지, 그 동안 예수님을 따르며 충성했던 그 대가에 대하여 얼마만큼의 보상을 받을지 바로 이것이 궁금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다른 제자들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면 어떻게 하지? 이런 마음이 그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길을 불안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은 그의 모친 살로메를 동원하여 예수님에게 청탁을 하고 있는 모습이 20절 이하에 나오고 있습니다.
이 살로메로 말하면 예수님의 갈릴리 전도의 초기 때부터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자신의 소유를 소비하면서 변함없이 예수님을 섬기던 여인이었습니다.
세베대에 관해서는 기록된 것이 별로 없어서 잘 모르지만, 추측하건데 그의 두 아들 뿐만이 아니라 그의 부인이 재물을 소비하면서 예수님을 섬긴 것에 특별히 문제를 삼지 않은 것으로 볼 때, 그의 온 가족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살로메의 아들들 중에, 야고보가 제자들 중에 첫 순교자의 반열에 들었고, 예수님이 운명하시면서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하심으로 그는 끝까지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로 섬겼으며, 나중에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볼 때, 세베대의 식구들은 예수님에게는 가신과 같고 측근 중의 측근과 같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3. 이런 관계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야고보와 요한은 제 어머니 살로메를 동원하여 예수님에게 청탁을 하도록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살로메가 예수님에게 부탁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21절에 보니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게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하였습니다.
참으로 당돌하고 겁 없는 청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의 대답이었습니다.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기 직전에 분명히 제자들에게 자신의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18-19절에 보니,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박게 하리니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목적이 정권을 탈취하거나 쿠데타를 일으켜 구세대를 몰아내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줌으로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의 의미를 정권을 탈취하는 과정에서 잠시 겪어야 하는 고난쯤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문제의 근본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행을 오해한 제자들에게 있었지만, 예수님 또한 오해하고 있는 이 제자들의 요구를 매몰차도록 거절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4. 그것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살로메와 그의 두 자녀들을 향하여 더 심한 말씀으로 대응하셨습니다.
첫째는, 너희가 나의 마시려는 (고난의) 잔을 마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마시려는 잔이 어떤 것인지 알지도 못하는 두 형제는 주저함도 없이 그 잔을 마실 수 있다고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함께 그 잔을 마신다고 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두 번째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아무리 나와 함께 고난의 잔을 마신다고 할지라도 너희가 구하는 이것은 내 권한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이니 나는 너희의 구하는 것을 이루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어날 수도 없는 사건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단번에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평범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과 3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그를 섬겼던 제자들, 특히 세베대의 아들들에게 예수님의 태도가 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목적이 그런 일이 아니라고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 주셔서 제자들의 오해를 풀어 주시던가, 너희를 위해서는 이 땅에서가 아니라 하늘의 더 큰 상급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든지 다른 방법으로라도 얼마든지 제자들을 다룰 수 있었을 것이지만, 예수님은 결코 그렇게 대응하시지 않으셨습니다.

5.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태도에서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서두에서 말씀드린 박 대통령 당선인은 한 번도 얼굴을 본 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는 대한민국 백성들에게는 여러 가지의 공약을 쏟아 부으면서 그들에게 기대를 갖게 만들면서, 정작 자신을 위해 희생하고 가장 가까이에서 신뢰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서는 권력으로 말미암는 어떤 이권이나 특권을 털끝만치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그녀의 태도는 너무 잘못된 것 아닙니까?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전도하시면서 병든 자나 귀신들린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가난하고 배고픈 그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서 왜 가장 가까이 있는 측근들인 제자들에게는 그들의 요구를 매몰차게 거절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박 당선인의 경우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국가 공무원이란 존재는, 그 이름이나 자리가 가지고 있는 힘을 이용해서 권력을 향유하고 특권을 누리라고 주어지는 자리가 아니라, 도리어 국민을 섬기는 종의 자리이기 때문에, 그들의 종이 되어 백성을 섬기겠다는 자세가 없이는 그 어떤 능력과 지식과 힘이 뛰어난다고 하여도 쓸모 있는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자칫 잘못하다가는 백성의 원성을 듣고 종내는 나라를 망치는 인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6.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이란 남을 섬기기 위해서 자신을 버리고 희생하고 죽이는 것이지, 예수님 때문에 이익을 얻고 존경을 받고 유명해지는 그런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고 하셨습니다.
제자의 삶이란 십자가를 지는 것처럼 힘들고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오래 전에 인도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선교사 집을 방문해서 그곳에서 숙식을 하는데, 크 아이는 학교에 보내고 어린 자녀 둘이 집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더니, 인도의 현지 학교를 보내려니 수준이 너무 떨어지고, 그렇다고 선교단체가 운영하는 사립학교를 보내려니 돈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아파서 저희 교회가 자녀 학비로 사용하도록 선교헌금을 지원한 적이 있습니다.  
또 한 분은 제가 잘 아는 바울선교회의 선교사인데 자녀들을 현지 인도학교에 다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것도 같은 자녀를 둔 사람으로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내용입니다마는  그 선교사님의 생각은 특별했습니다.
인도를 선교하기 위해서는 제 자녀들까지 인도인으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선교사의 자녀를 훌륭한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은 우리의 선교사역의 미래를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투자이며 전략이기 때문에 이것은 귀한 일입니다.
또한 선교사가 제 자녀를 수준이 낮고 열악한 환경의 현지 학교에 보내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없는 귀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제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악한 자라도 제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아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제 자식도 선교사로 만드는 것입니다.
부모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인도까지 왔으니 너희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제자의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대를 이어 복음을 위해 섬기고 충성하는 참 제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7.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장미 빛의 미래를 약속하지 않고 도리어 고난의 잔을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이유가 2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바로 이것입니다.
그 분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인간의 육신을 입고 내려오신 이유는 바로 저와 여러분을 섬기기 위해 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한 일이 무엇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한 것은 죄 밖에는 없고, 우리가 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그런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제 자신의 생명과 육신을 십자가에 희생하셨습니다.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섬기신 일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무조건 사랑입니다. 왜?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로서 섬기는 자는 이권을 따지지 않습니다.
섬기는 자는 자기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섬기는 자는 남들보다 앞서서 이익을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처럼 자신을 내어주고 희생하는 줄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만일 오늘 우리들이 남을 섬기는 예수님의 본을 따르지 아니한다면, 이것은 섬기는 자가 아니라 섬김을 받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일본 선교의 현장에서 불행한 사실은 말로는 섬긴다고 하면서 삶 속에서 섬김을 받는데 습관이 되어, 아무런 부끄럼도 없이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엉터리 제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8. 전주에 가면 전주 안디옥 교회가 있습니다. 이동휘 목사님이 1983년에 개척한 교회로 성도가 1만 수천 명에 이르는 대형교회이지만, 건축을 하지 않았던 것은 교회 예산의 60% 이상을 선교비로 지출하면서, 오대양 육대주로 파송되어 나간 선교사들을 통해 온 세상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명 깡통교회라고 하는데 실제로 양철로 지붕을 덮은 콘센트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표어는 "불편하게 살자" 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선교하고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4명의 아들딸도 아프가니스탄이나 인도네시아 등으로 선교사로 보냈습니다.
교회 자체 내에서도 200여명이 넘는 많은 지체 장애자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섬기되 영광의 보좌는 물론이고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하여 온 영혼을 구원하는데 그 목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제자된 우리들은 무엇입니까?
그 분 때문에 지금 대접을 받고 영광을 받아야만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당연히 스승님의 모습을 본받고 그 분의 생각을 따르며 예수님의 생애를 닮아야 할 것입니다.
가롯 유다는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 뜻대로 예수님을 팔고 말았습니다.

9. 사람마다 계획이 있고 가치관이 있고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악한 자는 그 계획과 가치관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삶의 영역에서 잘못된 것을 원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잘못된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는 질문에 스스럼도 부끄럼도 없이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들을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남에게 상처를 주고 빼앗아 제 스스로를 유익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의 제자라면, 그 분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고 물으실 때, 제자로서 받을 영광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 것이니 그 분에게 맡기고, 나도 예수님의 잔을 마시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평생 섬기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그렇게 부탁하고 그렇게 선언하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세상은 교회 안이나 바깥에서나 온통 섬김을 받으려는 자들뿐이고, 남들을 섬기려고 하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섬김의 본을 보이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고, 오늘 우리의 모범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낮추는 섬김 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넘쳐나고, 이 섬김 속에 믿음의 공동체가 더욱 아름다워지고 새 힘을 얻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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