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9.9.변화 산에서 있었던 일(마태복음 17:1-13)

[성경본문] 마태복음17:1-13개역개정

1.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9.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변화 산에서 있었던 일(마태복음 17:1-13/2012.9.9.오전)
1. 여러분은 신앙생활에서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응답이 별로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내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마음은 간절하지만 주님께 충성 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정 식구들을 구원하지 못하는 것, 교회 안에서 인간관계로 고민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나 신앙 세계에서나 사람의 고민은 각양각색인 줄 압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는 다른 고민도 있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여간해서 변화되지 않는 제 자신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저는 신뢰할 만한 상대방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내 안에서 짜증과 낙심이 생겼습니다.
고후5:17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 했지만 새롭게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근본적인 변화는 순간적으로 일어나지만, 육신의 변화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는 것이 정말 문제입니다.
세상에서도 변화가 없는 삶은 지루하고 고통스럽습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역동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변화 없는 삶은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처럼 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현실에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때로는 옛 자아가 아직도 죽지 못하고 살아서 많은 인간관계나 사건 속에서 분노나 질투나 미움이나 욕심으로 나타나서 우리를 고통하게 만들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왜 예수를 믿으면 새 사람이 된다고 하는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까?
예수 믿으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해야 하는데 왜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전쟁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변화되지 못하는 것입니까?

2.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이 세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 가셨는데, 사람들은 이 산을 가리켜 별칭 변화 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유는 예수님이 그곳에서 놀라운 영광 중에 계시는 모습으로 변화되셨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가 9:9절에 보면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 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고 하셨고, 누가9:36절에는 제자들이 이 일에 대해서 비밀로 하고 있었습니다.
이 일을 예수님 이외에 동행한 3명의 제자들만이 비밀로 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산을 2,850미터의 헬몬 산이라고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도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마4:8) 예수님을 시험했지만 그 산이 어떤 산인지 영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 산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그냥 높은 산이라고 했지만, 오사카 남쪽에 있는 금강산의 경우 해발 1,125미터로 실제 등산을 해 보니 그렇게 간단히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산의 높이가 얼마나 되고 그 산이 어느 산이며 이름이 무엇인지, 이런 지식적인 측면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셨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제자들에게 비밀로 할 것을 당부하셨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3.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수님이 공생애를 준비하실 때에도 먼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에 곧장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곳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지만 모든 시험을 물리치고 마귀를 이기셨고, 그리고 3년 간의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그 3년 간의 공생애의 마지막 과정에서 예수님은 다시 산에 오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류의 죄 짐을 지시고 대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인류의 죄를 속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피 흘려 죽기 위해 그 일을 준비하기 위해서 변화 산에 올라 가셨습니다.
올림픽 출전하는 국가 대표 선수들은 올림픽이 다가오면 합숙하면서 특별 훈련을 합니다.
누구든지 매우 중요한 일을 치르기 위해서는 그 일에 걸맞은 준비를 하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평소에 하시던 일과 똑같은 상황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십자가였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육신을 입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에 평소처럼은 십자가를 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변화 산으로 부르셨고,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런데 이 변화 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그곳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이야 말로 전능하신 하나님 아들인 것을 예수님 자신과 그의 제자들에게 다시 확인시키고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단순한 선지자가 아니라 인류를 구원할 그리스도 곧 메시아가 되심을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지실 십자가는 너무도 고통스럽고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십자가였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는 아버지께 버림받는 십자가요 제자들에게 버림받는 십자가요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 당하는 십자가며, 심지어 자신에게서도 버림 당하지 아니하면 안 되는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4. 한마디로 말해서 변화 산의 일은 인류 구원을 위한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넘어지지 아니하고 이 일을 완성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과의 만남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향하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5)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으실 때와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가장 힘든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려는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예수님이 걸어오시고 행하셨던 모든 일을 하나님이 받으셨고 기뻐하시고 만족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장차 받을 모든 고난에도 불구하고 너는 내 아들임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너무 어려운 일을 당하면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자신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면 두려움과 불안과 의심에 사로잡히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고난당하실 때 부르짖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을 향하여서는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26:38)고 하셨고, 아버지 하나님을 향해서는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39) 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삶이 힘들고 버겁게 느껴지는 것처럼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두고 힘들어 하셨고, 고통스러웠으며 그래서 아버지의 도움을 간절히 원하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말이 쉽지 우리 자신을 놓고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53: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고 했습니다마는, 남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진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예를 들어 독도를 자기네들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사람들의 죄를 한국 사람들이 대신 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하물며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들의 죄를 그 아들이 대신 지고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더더욱 고민하셨고 슬퍼하셨고 괴로우셨던 것입니다.

5. 예수님이 변화 산에 올라가신 목적은 바로 갈보리의 십자가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과 더불어 십자가의 사건을 당분간 비밀로 할 것을 당부하셨던 것처럼, 변화 산에서 일어난 일련의 모든 일들도 같은 십자가를 향해서 나아가는 구속의 사건이기 때문에 당분간 비밀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이 큰 일을 방해 받고 싶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랑하기를 좋아하고 그래서 큰일을 앞두고 자신의 몸집 불리기나 위세를 먼저 나타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다가 큰일을 망쳐 먹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귀한 일을 하려고 할 때는 특히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해 달라는 명목으로 자신을 과장해서 선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비밀로 숨겨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 자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이루고 완성하는 것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변화 산에서 졸다가 문득 본 예수님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말씀을 나누고 계시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2절에 보니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고 했는데, 마가복음에서는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9:3)고 했습니다.
왜 세상에서는 흉내도 낼 수 없을 정도로 그런 변형된 모습을 예수님이 하고 계셨습니까?
이것은 예수님이 고난과 죽음 이후에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영광이 어떤 것임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예수님의 제자로서 장차 받을 우리의 영광이 어떤 것 인지를 미리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두세 증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3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오르신 것입니다.
지금은 변화 산에서 일어난 일에 대하여 침묵해야 하지만, 저들이 본 것을 반드시 증거 해야 할 때가 오기 때문입니다.

6. 변화 산의 사건은 우리가 받을 영광을 예수님을 통해서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변화 산의 변형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위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십자가를 말할 때 반드시 강조해야만 하는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버림 당하는 것이요 제 스스로를 버리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믿으면서 버리기는커녕 더 많은 것으로 자신의 삶에 채우려고 합니다.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희생입니다.
자신의 것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세계가 복음의 세계입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게 했습니다.
바울은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빌3:7-8)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자신의 것을 예수 때문에 잃지 아니하면 결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조차도 십자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얻은 것은 부활의 영광뿐만이 아니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빌2:9)으로 모든 자들을 그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드는 최고의 권세였습니다.
우리가 변화되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만큼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십자가가 사라져버린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액세서리나 단순한 상징적인 물건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내 안에서 예수님이 살아계시도록 나의 주인으로서 통치하시도록 만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7. 문제는 우리의 변화입니다.
불순종의 삶을 더 이상의 불순종이 아니라 순종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의롭고 거룩한 모습이 가장되거나 위선이 아니라 정말 내 안에서 샘솟듯이 나타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자들은 느닷없이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을 세 개 지으려고 했습니다.
왜 이 사람들이 갑자기 초막을 지으려 했습니까?
유대인 풍습에는 귀한 손님을 맞으면 별도로 초막을 지어 대접하는 습관이 있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더불어 나타난 이 구약시대의 가장 유명한 인물들을 기념하고 그들 곁에서 머무는 것 만으로 만족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요 제자로서 당연한 일처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5절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는 것입니다.
변화 산에서의 변형의 목적이 예수님에게 주어진 미션, 즉 십자가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도우시기 위함이었고, 동시에 그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나타내시면서, 또한 제자들에게도 이러한 영광의 미래가 주어질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제자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들도 자 이리로 올라오라고 하시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올 줄 믿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사모하고 열심을 내야 합니다.  
기도하는 중에 변형되셨으니 기도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갈 때 비록 고난과 희생이 따르지만 우리도 예수님과 더불어 이 영광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8. 예수님은 자신의 삶과 능력을 있는 그대로 제자들에게 다 보여주셨는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너희도 이렇게 할 수 있으며 또한 이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참 능력이란 변화에 있습니다.
마귀의 자식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고통과 저주의 삶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넘치고, 남을 괴롭히는 삶이 변하여 남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변화산의 역사는 기독교 신앙이란 사람을 바꾸고 환경을 바꾸고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 삶을 살게 만드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늘부터라도 변화에 힘쓰는 것입니다.  
그 분이 죄인과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으니 우리도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 분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심 같이 우리도 순종해야 합니다.
저주 받은 환경도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의 세계로 바꿀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그 분이 부활하셨으니 우리도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줄 믿어야 합니다.
그 분이 영생의 하늘나라로 올라 가셨으니 우리도 천사들에 의해 영원한 하늘나라로 올림을 받는 줄 믿습니다.

말씀과 기도 속에서 변화 산에서 일어났던 그 일들이 오늘날 우리 가운데서도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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