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9.16.믿음의 능력(마태복음 17:14-20)

[성경본문] 마태복음17:14-20개역개정

14.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믿음의 능력(마태복음 17:14-20/2012.9.16.오전)

1. 한국에서는 지금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나라 바깥에서는 한국의 국력이 신장함에 따라 국제적인 신용도가 올라가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점점 못살겠다고 아우성이고 입만 열면 정치 지도자들을 욕하고 있습니다. 가끔 서울을 가보면 물가가 높고 서민들이 살기 어려운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50년 동안에 스크랩된 신문들을 살펴보면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것은 어느 시대나 있었고, 물가 때문에 서민들이 한숨 쉬고 고통 하는 것은 늘 있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자신의 소득 수준에 삶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소득이 더 많은 다른 사람들의 수준에 자신의 생활을 맞추려고 하니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 생활이 더 고통스러운 것이고 사회적인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서민생활 뿐 아니라 사업하시는 분들이나 직장생활이나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어렵다고 생각하고 내 삶을 지탱해내기가 힘들고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세상 사람들처럼 자포자기하고 의욕을 상실하고 세상이 흘러가는 데로 따라서 흘러가고 남 욕이나 하고 살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고난이나 위기가 올 때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믿음을 사용해야 합니다.
성도라고 해도 믿음을 사용하지 않으면 작은 일에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의 핵심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와 믿음이 없을 때가 무엇이 다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 평상시에는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들이 먹는 음식 우리가 먹고 그 사람들 다니는 직장 우리도 다니고 그 사람들 쉬고 잠잘 때 우리도 다 그렇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나 우리나 삶의 모습에서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인생에 위기가 왔을 때 불신앙과 신앙의 차이는 엄청나게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귀신들린 자식을 둔 한 아버지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내용을 더 생생하고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곳이 마가복음 9장입니다.
그곳에 보면 믿음이 없는 것을 책망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이 아버지는 소리 지르며 말하기를,「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막 9:24) 달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에게 무엇이 없습니까? 믿음이 없습니다.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도 있고, 수고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믿음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고통당하는 자식을 향한 불쌍한 마음은 있어도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제 딸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겨울 감기 예방주사를 위한 진단표를 학교에서 가져 왔는데, 아이에게 열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 내용이 있어, 열이 있다고 표시를 해서 보내었는데 선생님이 그냥 예방 주사를 놓았고, 이틀 후에 아이가 발병이 났습니다.
39도 넘는 열이 올라가면서 온 몸이 불덩어리가 되었고, 학교 교장선생님과 보건소에서 동네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병원에도 다녀오고 집이 북새통이었습니다.
무엇을 해도 열은 내려가지 않고 아이는 점점 중해지는데 병원에서는 절대 입원을 시켜 주지 않고 두고 보자고 하면서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 때 아픈 아이를 두고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일본 선교를 위해 아이를 희생 제물로 데려가시는 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기도했고, 아내는 기도 중에 잠들었는데 꿈속에서 아이의 열이 내려가고 건강해 지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다음 날부터 삼일 동안 열이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치료가 되었습니다.

3. 오늘 본문에,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한」 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고생이 심해도 믿음 없는 부모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귀신이 아이의 몸속에 들어가 간질이라는 질병을 통해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찌 사람의 힘으로 이것을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의사가 보면 발작이지만 실상은 귀신이 아이를 사로잡은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믿음이 있으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염려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그 분의 도우심을 기다리며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마4:23-24절에 보니,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를 데려왼 저희를 고치시더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못 고칠 질병이 없고,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으며 귀신은 쫓겨나는 줄 믿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며 이런 치유의 역사를 믿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지금 이 시간에도 귀신을 떠나가고 질병은 치료되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지만, 믿음이 없으면 정욕과 세상과 귀신에게 사로잡혀 인생이 패가망신 하는 것입니다.

4. 그런데 예수님은 17절에서,「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 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의 사람들과 귀신들린 아이를 둔 아버지를 향한 책망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고 내려오시는 그 사이에 9명의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 하나를 놓고 씨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16절에 그 아버지가 비웃는 것처럼 당신의 제자들도 고치지 못했다고 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17절에 세상을 향해서는, 「믿음이 없」 다고 하셨고, 20절에서 제자들에게는 「믿음이 적」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믿음이 없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님이,「너희가 만일 믿음이 겨자씨만큼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셨기 때문에 아무리 적은 믿음이라도 일단 믿음만 있다면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이 그 믿음 안에서 나온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쩔쩔 매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아직 믿음다운 믿음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은 있을지 몰라도 귀신을 제어하고 쫓아내는 믿음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행세는 하고 있지만 예수님처럼 치유의 능력을 소유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한계점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 믿음을 나의 삶에 올바르게 적용시킬 때 믿음은 자라고 강해지며 능력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5.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그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는 상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계시 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받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은 그런 생활이 곧 믿음입니다.
우리는 흔히 믿음이란 지적인 동의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성경에 보니 마귀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약2:19).
우리가 소유하는 믿음이란 살아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말하는 것입니다. 곧 그 분을 의지하고 우리 자신을 믿고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제 자신의 경우만 하여도 하루에 몇 번씩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하거나 연약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럴 때 무엇을 생각하고 그런 약한 자신을 어떻게 관리합니까?
기도하는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내 안에 있는 잘못된 것들은 아침의 안개처럼 사라지고 대신 주님의 평안을 맛볼 수 있습니다.
9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실 때 까지 귀신들린 아이 하나 때문에 쩔쩔 매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 아이를 데려 오라고 하셨고, 귀신을 한 번 꾸짖으니 당장 아이가 온전해 졌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바로 이 사실이 너무 궁금한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한 번에 치료하시고 우리는 9명이 달라붙어서 오랜 시간 씨름을 하는데도 안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6. 결국 제자들 속에서도 문제점은 이 세상처럼 믿음이 약하거나 없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변화산에 올라가서도 졸았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두고 가장 힘들어 하셨을 때에도 그들은 졸고 있었고, 나중에는 고난당하시는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믿음이란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무슨 일을 만나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왜냐면 이 믿음이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지혜나 능력이나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표현하는 가장 작은 믿음, 가장 적은 믿음이라고 해도 그것이 겨자씨처럼 너무 작게 보여도, 일단 믿음만 있으면 그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사실입니다.
그 작은 믿음 속에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증거를 충분히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의 겨자씨만 한 믿음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 산을 명하여」입니다.
이것은 사람이나 잘 길들여진 동물을 향한 명령이 아닙니다.
이 명령은 지, 정, 의가 없는 산을 향한 명령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믿음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귀신들린 아들의 아버지는 자신에게 이런 믿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7. 본문의 말씀은 출애굽기 32장과 비슷합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고 산에서 내려올 때 이미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있었고, 저들 가운데는 금송아지 우상이 있었습니다.
그 때와 흡사한 상황이 오늘 본문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14:12절에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대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고,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구원받는 자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사방에서 교회들이 어렵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마는 성도들의 믿음이 살아나고 그 믿음이 성장하면 교회의 어려움은 자연히 사라지는 줄 믿습니다.
전도가 어렵다고 낙심해도 우리의 믿음이 겨자씨만큼 만 있다면 사도행전의 구원의 강력한 역사가 우리 가운데서도 넘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내 힘으로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는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이 없는 줄 믿습니다.
오늘부터 이 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의 심정으로 주님 앞으로 나아간다면 주님은 우리를 통해 이 시대에 큰 구원을 베푸시는 줄 믿습니다.
믿음은 능력입니다. 세상이 감당 할 수 없는 힘이 있습니다.
이 믿음 이 능력으로 하나님께 많은 영광을 돌리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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