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8.5.믿음이 큰 사람(마태복음 15:21-31)
[성경본문] 마태복음15:21-31개역개정
21.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29.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30.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31.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 믿음이 큰 사람(마태복음 15:21-31/2012.8.5.오전) 1.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일본은 사상 처음으로 양궁 여자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그 팀을 이끈 하야가와는 원래 한국의 양궁 선수로 생활이 어려워 일본에 와서 재혼한 모친을 따라 일본인으로 귀화했고, 2009년도부터 일본 양궁선수로 활약하다가 동메달을 딴 것입니다. 이 일은 한국에서 보기에도 일본에서 보기에도 매우 귀한 일이고 축하할 만한 일입니다. 한국으로서는 세계 양궁의 챔피언인 한국의 위상을 더 높이는 것이고, 일본도 양궁에 금메달을 바라볼 수 있는 교두보가 마련된 셈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일본의 신문을 보니 일부 사람들의 반응이 무섭습니다. 한쪽에서는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욕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고 욕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야가와는 양쪽 나라의 국위를 선양하고도 안팎으로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왜 한국 사람으로서 일본 선수로 출전하게 되었는지, 또 이런 일을 통해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면 우리는 이해하는 마음이 되고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나오는 줄 믿습니다. 2. 그래서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한국의 교과서에 나오는 우장춘 박사는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하지만 그것보다는 한국이 일제에서 독립하고 특히 6.25 동란으로 국토가 황폐하고 피난민으로 인해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 사람들의 굶주림이 다반사였을 때 그는 배추, 양배추, 감자, 옥수수, 감귤 등을 개량하여 대한민국 사람들의 굶주린 배를 채우는데 크게 공헌한 사람입니다. 강원도의 옥수수며 감자, 제주도의 감귤이 유명해진 것도 우장춘 박사의 덕분이고, 김치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던 것도 이 사람의 공로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과거는 고난의 형극이었습니다. 부친이 1895년 10월에 일어난 민비시해 사건으로 일본에 망명하여 일본 여인과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우장춘 박사였고, 나중에 조선에서 보낸 자객에게 부친이 살해 당한 이후의 삶은 말 그대로 가시밭길이었습니다. 그의 모친은 바깥에서 놀다가 조센진이라는 놀림을 받고 집에 돌아와서 우는 아들을 향하여 조선 사람이 조선인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무엇이 부끄럽단 말인가? 너는 조선인이니 조선인으로서 당당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일본 사람들도 존경하는 훌륭한 농학박사가 되었고, 이승만 대통령은 그를 한국으로 불렀고, 그는 부친의 죄를 속죄하는 마음으로 조국을 위해 불철주야 연구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나중에 모친의 사망 소식을 받고도 일본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은 일본으로 돌아가면 일본에게 우장춘 박사를 빼앗겨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을 염려한 이승만 대통령 정권이 도일 허락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서울의 국립의료원에서 1959년 8월 9일 십이지궤양으로 사망했는데 입원 중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애국가를 만든 안익태에 이어 두 번째로 문화훈장을 받고는 이제야 조국이 날 인정해 주었다고 말하고는 운명했다고 합니다. 3. 신명기 28:30절에 보면 「네가 여자와 약혼하였으나 다름 사람이 그와 같이 잘 것이요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포도원을 심었으나 네가 그 과실을 쓰지 못할 것」이라 하면서 33절에 계속해서 「네 토지 소산과 네 수고로 얻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불순종 불신앙 하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지만, 생각해보면 이 말씀은 내 밭에 내 종자를 심는다고 다 내 것이 아니요 남의 밭에 심었다고 그것 역시 전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열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유를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나누시기 때문입니다. 일본 사람도 한국 사람을 위해 자신을 헌신할 수 있으며 한국 사람도 일본 사람을 위해 또 다른 나라 사람들을 위해 얼마든지 헌신하고 수고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국가와 민족을 나누지 아니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불신앙이 바벨탑을 쌓아 혼란과 분열을 가져왔고, 욕심과 야망이 선을 긋고 인간의 죄가 네 것과 내 것을 나누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도울 때 그의 국적이나 신분이나 다른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환란과 고통에 빠진 사람을 향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 긍휼의 마음이었습니다. 4.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향한 자비와 은총을 구하는 이방여인의 부르짖음입니다. 사랑하는 딸이 흉악한 귀신에 사로잡혀 사람의 힘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음을 알고는 예수님을 찾아와 도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여인은 의외의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귀신의 손에서 건지기 위해 울부짖는 이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가 문제였습니다. 처음부터 못 들은 것처럼 여자를 무시하고 계속 걸음을 옮기셨습니다. 그래도 여자는 포기하지 않고 날 불쌍히 여겨 도와 달라고 호소했지만 계속 무시만 당했습니다. 이 이방 여인이 만난 난관은 예수님의 침묵, 예수님의 무시, 냉대였습니다. 아마 성질 급한 사람들이라면 이런 예수님의 태도에 대해서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 소문하고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배고플 때 김진사 집에 가면 한 상 잘 얻어먹는다는 소문에 찾아갔더니 뺨만 맞고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 불쌍히 여기는 예수님이라고 찾아왔는데 생각보다는 차가운 사람입니다. 우리도 들은 소문과 내가 경험한 것과는 차이가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서두에서 말씀드린 대로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나의 말과 나의 태도 나의 생각에 따라 원수라도 그 태도와 마음이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 여인을 향하여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이 크다고 하셨고,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5. 그렇다면 이 이방여인의 예수님을 향한 태도가 어떤 것입니까? 처음에는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뒤쪽에서 따라오면서 큰 소리로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을 무시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아마 여자는 반복해서 같은 소리를 질렀고 도리어 제자들이 불편해서 견딜 수 없어서 그 여인 대신에 예수님께 간청을 하고 있는 것이 23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는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태도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 여인이 앞에서 예수님의 가시는 길을 막고 엎드려 절하며 말했습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굉장히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들은 소문하고 실제로 만난 예수님의 모습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물론 한국 성경에는 개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는 강아지라고 표현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마는, 아무리 이방 여인이라고 해도 이렇게 모욕적인 언사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다니시면서 사역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성경 전체에서 볼 때 불의에 대해서는 분노하셨지만 사람들에 대해서는 늘 온유와 자비와 긍휼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만큼은 무시하고 굴욕적인 언사로 대하시는 것입니까? 여기에는 분명한 목적이 계셨습니다. 이 이방여인의 신앙심, 사랑하는 딸을 마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하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을 향하여 대답한 말이 무엇입니까?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여인의 말대로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의 부스러기라도 사모하는 이 간절하고 겸손한 마음에서 나오는 믿음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수치와 멸시에도 불구하고 절망할 줄 모르고 도중에 포기할 줄 모르는 인내하는 믿음, 인내로 부르짖는 기도를 주님은 원하셨습니다. 6.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만난 예수님을 향해 이 여인처럼 부르짖는 기도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인생은 너무 연약하고 불쌍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딸을 아무리 사랑해도 어머니의 사랑과 힘으로는 흉악한 귀신에게 사로잡힌 딸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지식과 경험과 소유라고 하는 것은 늘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입니다. 성공할 줄 알았던 사업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온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갑니다. 행복할 줄 알았던 결혼이 질병과 사별로 가시밭길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내 인생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학력이 무엇이며 재물이 무엇이며 젊은 청춘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인생을 믿고 의지하고 자랑하는 사람들은 인생이 얼마나 허약하고 불쌍한 존재인 줄 모르기 때문에 반드시 실패를 하기 마련입니다. 그 때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누군가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방백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홉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시146:3-4) 고 했습니다. 어려움 만났을 때 도와 주는 사람이 없는 이유는, 그들도 속으로는 말로 못하는 어려움에 빠져서 또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찾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를 도울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어려운 형편을 잘 아시고 그 어려움에서 속히 건져 주실 분은 우리 주님 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그는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시고 모든 저주와 고통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저주의 십자가에 우리 대신 희생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증거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고 했습니다. 인생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고통과 절망 중에 무너지지만, 주님을 의지하고 그분에게 도움을 구하는 자는 이 이방여인처럼 영육간에 응답 받는 줄 믿습니다. 7.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만난 예수님을 향해 이 여인처럼 부르짖는 기도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 번째는 우리 기독교 신앙은 소원되로 되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귀신에게 빼앗긴 사랑하는 딸을 찾아오고자 하는 이 여인을 향한 예수님의 선언은「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는 것입니다. 여기 「소원대로」 라는 말의 의미는 「원하는 만큼」 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소유한 이 믿음의 능력이란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불가능이 없으며 그래서 고난은 있어도 그 고난을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으며, 반드시 믿는 믿음 안에서 소원대로 원하는 만큼 이루는 줄 믿습니다. 신앙이란 것은 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가 아니라 물고기처럼 흐르는 물도 거슬러 올라가는 투지와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질병을 이기려는 간절한 몸부림,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열심이, 거룩한 삶을 이루려는 구별됨이, 원하는 소원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기도를 통해 나타나고, 우리의 신앙적인 태도에서 나타날 때 주님은 즉시 우리를 향해서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고 선언해 주실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사람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세상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의 도움을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큰 사람은 많은 난관과 어려움이 있어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주님 앞으로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향하신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이 오늘 간구하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소망이 없는 줄 믿고 오늘 이 자리에 모여 간구하는 우리 모두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고 선언하시는 줄 믿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