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9.의심 많은 세상(마태복음11:1-6)
의심 많은 세상(마태복음11:1-6/2012.1.29.오전)
1. 지난 주간에 뉴스를 보니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10년 동안 연구해도 밝혀내지 못했던 단백질 구조에 관한 난문제를 작년에 세계의 게이머들이 단 10일만에 분석해 내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와싱턴 대학에서 2008년도에 개발해 낸 Foldit라고 하는 과학적 연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게임은 예측 불가능했던 단백질 구조를 온라인 게임을 통해 밝혀냄으로 난치병으로 알려진 에이즈 치료에 관한 새로운 길을 열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영국 전역에 설치된 400만대가 넘는 감시 카메라에서 쏟아지는 방대한 정보를 관리하는데 한계를 느낀 나머지, 카메라 감시를 게이머들에게 위탁함으로 각종 범죄를 순식간에 적발해서 조치하는데, 이 게이머들이 크게 공헌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게임이라고 하면 심심풀이나 머리를 식히는 등,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 필요한 것 쯤으로 생각해왔는데 이제는 게임이 그런 차원을 넘어 학문이나 생활 전반에 크게 공헌하는 분야로 발전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른 속도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전화 통화를 위한 단순한 휴대폰이 갑작스럽게 아이폰이라고 불리는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컴퓨터로 변화되거나 가전제품들이 로봇 형식으로 진화되는 것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2. 하루가 다르게 놀라운 속도로 바뀌어 가는 이런 생활 환경의 변화 이상으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라는 사실입니다.
한 교회에서 목회를 30년 가까이 하고 있지만,교포 사회라는 것이 수시로 사람들이 이동하고 짧은 시간에 구성원들이 바뀌는 그런 구조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람들이 새로 올 때 마다 지금 사람들이 이전의 사람들과는 생각이나 삶의 모양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전에는 10년 쯤의 단위로 사람들이 우리와 다른 생각, 다른 모습을 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몇 년 사이에도 심각한 갭을 느낄 정도가 되었습니다.
선교나 목회라는 것이, 한 마디로 사람들을 읽어내는 일인데, 이제는 읽을 수가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을 조금 알 듯 싶으면 바뀌고 또 바뀌는 것이 현실이고, 제 자신도 점점 시간이 갈수록 껍질을 벗지 못하는, 그래서 언젠 가는 제 껍질 속에 갇혀서 죽는 보리 새우 같은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끊임없는 변화 없이는 이 시대에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 다 보전되느니라」(마9:17) 고 하셨으니, 교회도 성도들도 목회자도 말씀과 성령 안에서 계속해서 변화되지 못한다면 주님 앞에서 책망을 면치 못하는 불충한 종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변화라는 것이 사람의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보리 새우도 탈피하지 못하면 제 스스로 자신의 두꺼운 껍질에 갇혀서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탈피의 고통스러움 때문에 껍질 벗는 것을 하루하루 미루다가 결국 그렇게 죽는 것입니다.
3. 오늘 본문이 기록된 마태복음 11장을 보면 세 종류의 사람들의 생각들이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에 대한 세례요한의 생각이고, 두 번째는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고,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의 생각에 대한 예수님 자신의 반응입니다.
그 가운데 첫 번째로 세례요한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고 제자를 보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과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참 메시아인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수님에 대한 의문이요 더 심하게 말하면 불신입니다. 마태3장에 보면 예수님이 스스로 요한에게 나아가셔서 그에게 세례를 받으셨고, 그 세례 받는 순간에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님 위에 임하셨고, 하늘로서도 소리가 있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하나님의 음성도 들렸는데, 이 때 세례를 베푸는 자가 이런 사실을 전연 몰랐을 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4. 성경은 세례요한을 율법시대의 구약의 선지자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율법의 완성자로 그래서 은혜의 복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완성자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같은 시대에 살았고 나이도 6개월 차이였지만 예수님의 생각과 세례요한의 생각은 전연 달랐고, 심지어 그들이 속한 시대도 달랐던 것입니다.
지금 일본과 한국의 공통적인 현상은 정치적인 환경입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정당 정치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당 배경이 없는 시민운동가들을 지도자로 선출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정당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정당이라는 테두리에 갇혀 변화할 줄 모르는 보리새우 같은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사람들이 전연 다른 것은 생각의 차이 때문입니다.
아마 요한의 제자들 중에는 예수님을 시기하고 견제하려는 사람들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스승은 바른 말 하다가 옥에 갇혀 언제 죽임을 당할지 알지 못하는데, 예수님은 그런 요한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생각이 흔들리고 잘못되었다면 당연히 그 제자들의 생각도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요한이 요단강에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의 놀라운 영적 현상을 목격하고도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의심하고 있습니까?
5. 그 답이 4절에 있습니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곧장 시험산에 올라가서 40일을 금식하시고 내려오신 후에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실제적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바깥세상을 아는 전부였을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내용을 들려주는가에 따라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한마디로 요한의 메시아에 대한 의심내지 불신은 보지 못한 결과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의 위기 신앙의 위기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을 보면서 정말 세상이 원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 또한 교회를 보면서 교회가 무엇을 위해 세상에 존재하고, 교회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해가 생기고 문제가 생기고, 교회는 교회대로 어렵고 세상은 세상대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본다고 하면서도 실제는 바로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 아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실상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요한은 선지자요 백성들이 크게 존경하는 지도자였지만, 감옥이라는 갇힌 환경을 뛰어넘지 못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잘 아시는 예수님은 그래서 그의 제자들에게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가서 말하라고 한 것입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내가 메시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6. 어릴 적에 일 년에 한 두 번쯤인가 서커스 공연단이 들어와 공터에 천막을 치고 공연을 하는데, 형형색색의 희한한 옷을 입은 단원들이 악기를 연주하면서 동네를 돌아다니며 홍보를 합니다.
호기심을 잔뜩 부풀려 놓고 공연 시작하는 날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게 합니다.
그런데 돈 없는 동네 아이들이 텐트 밑으로 몰래 기어들어가다 붙잡히거나, 틈 사이로 엿보다가 감시원들에게 얻어맞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받은 사명을 감당하려면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얻어야 합니다.
왜 사람들이 주일만 되면 모든 일을 내려놓고 교회를 가는가?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같은 환경과 조건 속에 살면서도 왜 우리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가?
도대체 교회 안에는 뭐가 있으며, 예수 믿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만 기록된 홍해사건이 아니라, 홍해를 믿음으로 건너는 모습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보여주어야 합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차게 남은 것을 성경이 아니라 우리 교회에서 보여 줘야 합니다.
물론 이런 것이 우리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통해 베푸시는 그 분의 능력입니다. 본문 5절에서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내용과 같은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7.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이런 일들을 통해 내가 메시야인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보고 듣는 것으로 발전하고 개선되어져 나가듯이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성경말씀 속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그의 행하심을 통해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은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또한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있고, 들려 줄 것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보여 줄 것도 들려 줄 것도 없기 때문에 세상은 교회를 의심하고 불신하며, 심지어 이방인 취급하듯이 그렇게 대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교회가 세상으로 인하여 그들의 불신 때문에 흔들림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죄악으로 말미암는 이 세상의 불신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참 메시아이심을 확신하게 하며, 그로 인하여 영과 육신이 치료 받아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회복하게 하는데 그 사명이 있습니다.
이 일을 감당하려면 우리는 여러 가지의 장벽을 극복해야 합니다.
8. 첫째는, 믿음 안에서 하나 됨을 힘써야 합니다. 많은 의심들과 불신들은 반석 같은 교회를 모래알처럼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처럼 작은 교회들의 약점은 한 두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들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교회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쌓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가 우리 교회도 내 교회도 아닌 주님이 친히 세우신 주님의 몸 된 교회임을 믿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말에 흔들리지 않고 주어진 사명을 위해 우리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약속의 땅을 가로 막고 서 있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한 마디도 다른 소리를 내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믿음으로 돌고 또 돌았을 때 마침내 여리고 성을 손 하나 대지 아니하고 다 무너뜨린 것처럼 그렇게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 된 우리들 앞에 불신의 모든 장벽은 다 무너지고 구원의 역사가 이 지역에 충만할 것입니다.
둘째는, 이 교회는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본문 5절에 나타나는 역사는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능력입니다.
교회의 주인이요 머리가 되신 주님이 함께 하실 때 우리는 못할 일이 없으며, 감당치 못할 사명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세월이 가면서 사람들은 가고 오고, 또 가면서 자꾸 바뀌지만, 우리 주님은 나와 영원토록 함께 계시며 우리의 어려운 형편을 잘 아시고 도우십니다.
9. 셋째는, 무엇이 우리를 실족하게 하는지 그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6절에서 예수님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는 말씀입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예수님 때문에 실족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그 분의 행동들이 그 당시의 많은 종교지도자들을 실족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유는 그들의 전통과 대대로 답습된 가르침에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가롯 유다조차도 자신의 생각과 계획과는 어긋나게 나가는 예수님을 짐승 팔아먹듯이 돈을 받고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옥에 갇힌 세례요한 조차도 일시적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던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 것인가 하고 의심 내지 불신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나 때문에 실족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가 실족하고 누가 시험에 잘 빠집니까?
제 생각대로 믿는 사람입니다. 욕심을 가지고 믿는 사람입니다.
말씀보다는 환경이나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그곳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도중에 실망하고 낙심하여 스스로 시험에 빠지고 올무에 걸리는 법입니다.
10. 변화가 빠른 이 세상에서 우리는 교회가 무엇이며 우리의 신앙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도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듯이 변해야 합니다.
우리가 변화되지 않고는 결코 세상 사람들은 물론이고 가정 안에서 조차 우리는 보여 줄 것이 없는 불쌍하고 연약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변한다면, 의심 많은 세상, 불신으로 가득한 세상을 넉넉히 구원하고 주님의 충만한 은혜로 이 세상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이 31년 만에 무역 적자를 내고, 정치 불신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주고, 상처 나고 지친 심령들을 치료하는 일은 교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개인 중심으로 생각하며 신앙 생활 하던 것을 버리고,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곳에 초점을 맞추어 이 세상을 살리는 그런 목회, 그런 신앙 생활로 교회의 본문의 모습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