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7.31.자기 사랑의 결과(디모데후서3:1-5)

[성경본문] 디모데후서3:1-5개역개정

1.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자기 사랑의 결과(디모데후서3:1-5/2011.7.31.1선교헌신)

1. 일본에 지진이 나고 쓰나미가 덮치고 그 위에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가 일어나자 소프트뱅크의 손정의(損正義)사장은 회사의 수익금의 일부와 자신의 사재 중 100억 엔, 그리고 은퇴할 때까지의 보수 전액을 기부금으로 내어 놓은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적이고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본인은 여기에 머물지 아니하고 일본이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는 시스템을 벗어나서 자연에너지로 대체하는 일에 신명을 바칠 각오를 했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그런 결정을 내린데 대한 배경이 어제 아사히신문에 실렸습니다.
3.11의 대재앙의 충격이 자신의 인생관을 바꿔 놓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본연의 사업 부분을 벗어난 적도 없고, 다른 일에는 관심도 없이 오로지 증수증익으로 과거 최고의 이익과 매상을 올리는 것이 자신의 목표였고, 또한 원하는 대로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이 3.11을 통해서 인생이 무엇이고 사업은 무엇이며, 내가 정말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위기와 고통이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미증유의 대사건이 자기중심의 사람을 새롭게 변화시킨 것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고통을 회피하고 모험보다는 할 수만 있으면 안전을 추구하려고 합니다마는, 만일 세상 사람들이 전부 이렇게 살았더라면 아마 인류의 역사는 오래 전에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았으며, 믿음의 사람들도 환란과 고통을 통해, 내가 원하지 않는 환경과 조건을 통해서 도리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냄으로 자신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주었습니다.

2. 후배 목사님 한 분을 만났는데 자기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너무 조용하고 편안하고, 비록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지 못해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이며 중국이며, 심지어 지구 반대편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매일 뉴스를 시청하고 신문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뉴스는 사방이 고통하는 소리요 내일을 알지 못하는 내용들뿐입니다.
특히 사람들이 제일 관심이 많은 경제는 한 치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런 위기며 고통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50년 전의 신문이나 30년 전의 신문이나 어제 오늘의 뉴스를 비교해보면, 늘 어렵고 고통하며 모든 시대를 걸쳐 항상 위기의 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말세는 고통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통의 이유가 자기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통해서 나타나는 자기 사랑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전부 죄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고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며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3:2-4).
이 말씀을 보면 사람 속에는 죄를 원하는 죄의 성향이 있고, 이것이 우리를 온갖 문제와 고통에 빠뜨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3. 죄는 순간적인 쾌락이나 만족을 줄 수는 있어도 결국에는 사람을 파멸시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죄의 성향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상처를 받았을 때 그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있는 상처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화가 났다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나 술에 취함으로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분명히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더욱 나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죄의 성향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롬7:15)고 하면서, 원하지 않는 그것을 행하도록 만드는 것이 다름아닌 「내 속에 거하는 죄」(17)라고 했습니다.
내가 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내 속에 자리 잡고 주인노릇하고 하고 있는 죄가 나를 다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세상 가운데 있는 교회를 보면 점점 사람들은 종교적인 가치관은 그대로 두고 종교인으로 살고는 있지만, 점점 신앙심이 사라지는 그런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믿음의 능력과 경건한 사람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시대 사람들이 예외없이 자신을 지나치도록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 자기 사랑의 결말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요, 그 끝은 무서운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의 원인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나친 자기 사랑 때문입니다.
자기 사랑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원수가 되며, 자기 사랑의 결과는 이웃과 불화를 가져오고, 자기 사랑의 결과는 파멸에 이르고 만다는 것입니다.

4. 그래서 바울은 본문 서두에서 밝히기를,「네가 이것을 알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것을 알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으며, 더 큰 염려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자기 사랑의 결과가 고통이요 파멸인 줄 알면서도 자기 사랑을 멈추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1절에 기록된대로, 지금이 말세이기 때문입니다.
엡2장에 보면, 세상 종말인 말세에 일어나는 특징을 말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특히 주목할 사실은 공중권세 잡은 마귀의 역사가 있으며, 이 마귀가 우리의 육체가 원하는 것을 하게 함으로 우리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도록 만든다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자기 사랑은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현실은 전연 반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이 파괴되고, 원수가 다름 아닌 집안 식구가 되며, 자비와 긍휼은 간곳이 없고, 모든 사람들은 자신은 물론 남들까지 고통하게 만들며, 결국 모든 사람을 파멸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사랑은 나도 죽고 남도 죽이는 것입니다.
마귀는 지금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자기중심으로 살도록 만들고,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만들며, 그래서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도록 합니다.
오늘날 주님의 몸된 교회가 경계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자기 사랑입니다.
겉으로는 경건한 신자이지만, 그 속에는 온갖 죄악과 탐심의 자기 사랑으로 돌똘 뭉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사람들에게서 돌아서라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악의 습관은 마치 전염병처럼 강하게 퍼지며, 자기 사랑의 외식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까지 고통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5. 사람이 완벽할 수 없는 이유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유전입니다.
조상들의 죄와 더불어 그들의 잘못된 유전 인자들이 우리 몸 안으로 흘러 들어와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둘째는 환경입니다.
가정에서 어떤 교육을 어떻게 받으며 자랐는가에 따라 사람이 달라집니다.
사람은 환경에 지배받기 때문에 어떤 삶의 환경이며 어떤 인간관계 속에 살고 있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셋째는 선택입니다.
무엇이든지 습관이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행동 하나 하나가 삶 속에 고착되고, 결국에는 삶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잘못된 습관을 선택하고 그것을 나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사람은 잘못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6. 예레미야 선지자는 우리 안에 자리잡은 잘못된 습관이나 죄성들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13:23).
나의 게으름이 집안 식구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나의 죄성에서 나온 도박이나 술취함이나 폭력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케 하는지 모릅니다.
결국 내 삶은 내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부모 형제를 원망하는데 이것이 말세의 징조입니다.
말세의 고통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스스로가 지나친 자기 사랑에서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우리의 죄성과 잘못된 습관이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 주위 사람들과 이 시대를 고통하는 시대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사랑 때문에 이 시대가 고통하는 줄도 모르고 자기 사랑의 행위가 종말의 징조인 줄도 모르고 여전히 자기 사랑에 충만하고 있으니, 과연 누가 시대를 알며, 누가 인류의 미래를 내다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아합 임금이 선지자들을 죽이고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린 고통의 시대에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7천명을 남겨 두신 것 같이, 오늘 이 시대에도 하나님이 믿음으로 자신을 부르신 그 부르심에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충성된 일꾼들을 남겨 놓으신 줄 믿습니다.
바로 이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을 자기 사랑에서 돌아서게 만들며, 자기 사랑으로 병들고 고통하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능력을 가진 줄 믿습니다.

7. 어릴 때 어른들이 말씀이 사람은 좋은데 술이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알콜 중독에서 회심하여 새 사람으로 거듭난 자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술이 문제가 아니라 술을 받아들이고 술에 취해서 살게 만드는 자신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자기 사랑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내가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나 누가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으며, 누가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까?  
내가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줄 믿습니다.
저는 최근에 평생 고치지 못한 마음을 한 가지 고쳤습니다.
운전하면서 짜증내고 화내는 것을 고쳤습니다.
누가 위험하게 운전하고 끼어 들어와도 내 마음의 감정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제가 새 마음을 주신 것을 확신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주신 이 마음을 얼마나 더 지켜 갈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장차 더 크고 아름답고 더 놀라운 마음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한 번 내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된 변화로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입니다.

8. 과연 지금은 고통하는 때입니다.
이 고통의 때에 우리의 초점을 우리 자신에게 돌린다면 자기 사랑에 더욱 빠질 것이요, 세상을 향해 돌린다면 낙심하고 고통할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 사랑으로 충만한 우리의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함으로 고통하는 시대에 도리어 평안을 얻게 하시고 기븜과 감사가 넘치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참된 가치가 무엇이며, 내 평생에 진정 사랑해야 할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깨닫게 하며, 그렇게 살도록 능력과 은혜로 채워주시는 줄 믿습니다.
내 한 사람이 자기 사랑에서 돌아선다면 가정과 교회는 물론이고, 이 세상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새로워지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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