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5.15.행복한 사람(로마서 4:1-12)
[성경본문] 로마서4:1-12개역개정
1.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9.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11.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행복한 사람(로마서 4:1-12/2011.5.15.오전)
1. 오늘 본문은 참 행복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무엇을 가리켜 이것이 행복이라고 합니까?
재물입니까? 권력입니까? 명예입니까?
아니면 내 육체가 원하는 욕망이나 쾌락을 충족시키는 것이 행복입니까?
흔히 세상 사람들의 행복은 먼저 육신이고, 그 다음이 마음의 평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오늘 우리는 과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행복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다름 아닌,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바로 아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불행한 것이고, 불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삶은 더욱 고통스러워지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이 아무리 노력하고 수고해도 행복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내 스스로가 행복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이 나와 있습니다.
그기에 보면,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 물고기는 물에서 살고, 새는 하늘을 날며, 수목은 땅에 뿌리를 박고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물을 떠난 물고기, 새장에 갇혀 날 수 없는 새, 뿌리가 뽑힌 나무는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계획과 그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 누구도 행복을 맛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요15:5)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참 행복을 알고, 그 행복을 누린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며 참 행복이 무엇이며 그 행복이 어디서 오며, 어떻게 누리는가 살펴서 이 시대의 참 행복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2. 오늘날 많은 교인들도 물질의 축복과 육체적인 편안함이야 말로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본문 6, 9절에 나오는 행복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마카리스몬」으로, 이것은 단순한 축복이나 행복의 뜻보다는「하나님의 은총」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행복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복되다고 선포되어 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할 때, 행복이 시작되는 것이며,
그 행복은 하나님이 선언해 주시고 또한 인정해 주실 때 참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에는 행복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 가운데서 신앙의 영웅 두 사람을 소개하면서 참 행복이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합니다.
먼저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이 나오는데, 4장 전체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순종하여 나아갈수록 점점 거부가 되었고, 100세에 기적같이 아들이삭을 얻었고, 전쟁에서의 승리와 기도의 응답과 믿음의 조상이 된 수많은 영육간의 축복이 다 어디서 온 것입니까?
그의 아들이며 자손들이 받은 축복들은 다 어디서 온 것입니까?
원래부터 남보다 뛰어난 존재였기 때문입니까?
주어진 환경과 조건이 좋았기 때문입니까?
삶의 현장에서 남보다 더 열심히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철저히 지켰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시대를 잘 타고 났거나 운이 좋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행복은 선천적인 소질이나, 인간적인 노력이나, 종교적인 열심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3. 도리어 성경이 말하는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는 인생이요,
자기 행복을 위하여 아무런 공로가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본문 2절에,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출생이 무엇입니까?
그는 우상숭배의 가정에서 태어났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으며, 인품은 겁쟁이요, 비겁한 자요, 인정에 끌려 큰일을 할 수 없는 졸장부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 사라를 남에게 빼앗길까 두려워서 거짓말하였고, 그 거짓말 때문에 아내를 빼앗기고도 속으로는 끙끙 앓았지만 아무 말도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족장의 삶을 살았고, 가는 곳 마다 존귀함을 얻었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일을 통해서도 도리어 풍성한 복을 받았고, 아들 하나도 낳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가장 귀한 아들을 얻었습니다.
마침내 영적으로는 온 인류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오고 오는 모든 믿음의 후손들에게 자랑거리가 되었으며, 12지파의 조상이 되었고, 하나님의 친구로 불렸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그 답이 바로 3절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사람의 출생인 가문, 행위, 능력이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지으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믿고 따라갈 때, 그기에 참 행복이 있는 줄 믿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잘 한 것은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에게 자신의 인생을 전적으로 의지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아브라함의 성공의 비결이요 행복의 비결인 줄 믿습니다.
4. 어찌 아브라함뿐이겠습니까?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시골 목동의 출신으로 이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집안에서 조차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작은 존재였습니다.
그런 그가 나중에는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임금이 되었고, 다윗 왕가를 이루며, 오실 메시아의 조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임금이 된 이후로 전쟁에 능한 영웅이요 화려한 궁전을 짓고 엄청난 국력과 보물을 쌓아 놓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떵떵 그리며 살았지만 웬일인지 행복은 없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행복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잠시잠깐의 즐거움과 순간적인 쾌락을 맛보려고, 그곳에서 인생의 행복을 누리려고 해서는 안될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인간되기를 포기하고 짐승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윗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갈 때는 하나님이 그를 귀하게 보시고 나라에서 가장 존귀한 자로 세우셨고,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갑자기 쌓아 올린 축복과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간음죄와 살인죄를 반복하는 중대한 범죄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다윗은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왕좌에 앉아서, 충신의 아내를 빼앗고, 그의 생명을 무참하게 살해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다윗을 보더라도 결코 세상의 물질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그 어떤 세상적인 가치가 결코 인생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함을 알 수 있습니다.
5. 그러나 다윗이 참 행복을 깨닫고 참 행복을 누리기 시작한 때가 언제입니까?
형무소에 갇혀 있는 죄수가 언제 제일 큰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까?
사면 받고 보따리 싸 들고 출옥할 때입니다.
본문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불법의 사하심을 받고 그 죄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임금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전쟁에서 이기고 영웅이 되어 백성들 앞에서 존귀함을 받을 때에 행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남의 아내를 제 마음대로 빼앗을 때에 행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참 행복은 하나님이 다윗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아무리 악하고 더러운 죄라도 없는 것 같이 인정해 주실 때 다윗의 참 행복이 시작된 줄 믿습니다.
우리도 돈 많고, 좋은 환경에서 최고의 것을 누리면서 산다고 할지라도, 몸이 죽을병에 걸려 매일 고통당하고 질병이 가져다주는 두려움에 떨며 산다면, 그 돈은 무엇이며 그 사업은 무엇이며 집이나 명예나 온갖 부귀공명이 다 소용없는 것입니다.
인생이 세상적으로 아무리 크게 성공했다고 하여도, 그 영혼이 하나님도 모르고 그 삶의 모든 죄악이 그대로 있고서야 어찌 행복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참 행복은 하나님 만나야 시작되는 것이고, 참 행복은 그 하나님이 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너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실 때 인생의 참 행복은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6. 그렇다면 인생이 꼭 하나님을 만나야만 행복하고, 하나님이 인정해 주셔야만 행복합니까? 하나님 없이는 행복이 없습니까? 대답은 한 마디로 「그렇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신분이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죄인의 신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이 보시기에 거룩한 의인이 되었고,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죄 지으면 경찰이 와서 그 사람을 잡아다가 재판을 받게 한 후에 세상과 격리된 형무소에 잡아넣습니다.
그 때부터 자유는 사라지고 고통하는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유를 잃은 인생, 미래도 없고 힘도 없고 비참하고 불쌍합니다.
영적인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는 순간 마귀가 와서 우리를 잡아다가 죄의 족쇄를 채우고 그 사람이 죗값을 치루고 지옥에 떨어질 때까지 제 원하는 대로 부려 먹는 것입니다.
집 나간 아이가 깡패에게 잡혀 하루 종일 껌 팔고, 신문팔이며, 앵벌이하면서 실컷 매 맞고 자유 없이 고통 속에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잡혀 있는 아이를 찾아가서 데리고 오면 즉시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죄용서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기업을 상속받은 그의 사랑하는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실수하고, 실패해도 용서해 주시는 아버지가 계십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도우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바로 이것이 우리의 힘이요, 능력이요 소망이며, 행복입니다.
둘째는, 값없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느 사형수가 감옥에 전도하러 온 사람들의 찬송을 들었습니다.
「빈 손들고 나아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그는 이 찬송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하고 새 사람되었습니다.
그리고 대대로 불교 집안인 자기 집에 편지를 보냈고, 눈물을 흘리면서 그 편지를 읽은 온 식구들이 그를 때라 예수를 믿게 되었고, 나중에는 본인도 모범수가 되어 출옥하여 하나님의 그 은혜에 감격하여 전국 형무소를 돌며 남은 생애를 재소자를 위해 전도하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의인이 될 수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이 되었고, 목사 될 수 없는 사람이 목사 되었고, 선교사의 반열에 들 수도 없는 부족한 인생이 이 남다른 귀한 직분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에 오직 감사가 있을 뿐입니다.
사도바울은 롬3:20절에서「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모든 죄를 씻어 의인이 되었고, 이제는 영원한 하나님 자녀된 줄 믿습니다.
7.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제일 먼저 무엇이 참 행복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 아간이라는 사람은 물질이 행복의 수단인 줄 착각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불의한 물질을 집안에 감추어 두었다가 저주를 받아 온 집안이 3대가 한꺼번에 망했습니다.
선지자 엘리사의 종인 게하시는 선지자의 명령을 거역하고 아람 사람 나아만 장군에게 거짓말을 하고 몰래 보물을 받아 집에 감추어 둠으로 자자손손 문둥병자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왕과 왕후라고 하는 권력을 이용해서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으면 그것이 행복인 줄 알고, 의인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하고 나봇을 거짓 증인들을 세워 쳐 죽였습니니.
그러나 위에서 보고 계신 하나님은 아합의 가정에 모든 저주를 쏟아 부어 그의 모든 식구와 자녀들이 씻을 수 없는 치욕과 영원한 저주를 받게 하셨습니다.
인생들이 추구하고 소원하는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난 그 하나님에게서 사죄의 은총을 얻으며, 그가 우리를 용서하시고 자녀 삼아 주실 때 우리 인생과 영혼에 참 행복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 따라 가다가는, 세상 물건 불 탈 때 우리도 타고 말 것입니다.
참 행복이란, 나는 아무 공로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용서 받고, 영원한 저주와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 바로 이것이 참된 행복입니다.
참 행복이란, 나는 빈손이고 자랑할 것도 없는데, 하나님이 내 인생의 빈 잔을 채워주시고, 주님이 나의 목자 되심으로 그 분의 뒤만 따라가는 것이 행복인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