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7.17.염려하지 말라(마태복음 6:25-34)

[성경본문] 마태복음6:25-34개역개정

25.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염려하지 말라(마태복음 6:25-34/2011.7.17.오전)
1. 어느 책에 보니, 일본의 크리스천 한 사람이 자기 밭에 천 그루쯤의 과목을 심었는데, 어느 날 벌레들이 생겨 나무의 열매들을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여러 사람이 열심히 벌레들을 잡아 보았지만 중과부적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밤에 가족들과 함께, 그 과수원에 앉아 밤새도록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이 되니 어디서 날아온 지 알지 못하는 새떼들이 삽시간에 과수원에 내려앉더니 모든 벌레들을 삽시간에 다 먹어치워 위기에 처한 이 농부를 살렸다고 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제일 많이 염려하고 고통 받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물질의 문제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경제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에 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염려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도 사업이나 재산증식 문제로 염려하고 고통 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대를 이을 자식이 없어 고민했고, 바벨론의 포로 되었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승승장구 출세의 가도를 달린 것 같지만 그들에게도 고민은 있었고, 염려할 만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본문에서 6번씩이나 염려에 대해 말씀 하시면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하루하루의 삶은 많은 염려와 고민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염려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염려는 더욱 늘어나고 고통의 세월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주님이 왜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지 그 이유를 찾아내고, 염려 없이 사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배우면서 적어도 우리의 남은 생애는 염려, 근심, 걱정이 없는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2. 염려의 근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육체와 생명에 있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이 많고 귀한 것이 많아도 우리의 육체와 생명만큼 귀하고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귀한 것일수록 관리를 잘해야 하고 관리를 잘한 만큼 가치는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한 육체와 생명이라 할지라도 관리를 잘못하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라도 천덕꾸러기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나없이 앞 다투어 관리를 잘하려고 애를 씁니다.
옷 잘 입는 것, 잘 먹고 사는 것, 편하고 좋은 집이며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을 선호하고 남들보다 더 귀하고 복된 인생을 누리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염려하고, 고민하고,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나의 능력 부족입니다.
인생 관리를 잘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내 능력이 내 원하는 만큼 따라가지 못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힘과 능력 이상으로 관리하고, 더 높은 수순에 맞춰 내 인생을 관리하려고 하니 문제가 생기고 염려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25)고 하셨습니다.

3. 왜 주님은 염려하고 걱정해도 모자라는 인생을 향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어떤 사람들이 염려합니까?
제 인생을 의지할 곳이 없는 부모 없는 고아들이 염려합니다.
무능한 사람들일수록 염려가 많고 고민이 많습니다.
욕심이 많고 제 분수를 모르는 사람들이 밤이나 낮이나 염려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고아도 아니요 무능한 인생도 아니요 욕심많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입은 그의 자녀인 줄 믿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 자녀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부모가 다 책임을 져 줍니다.
가난한 부모는 가난한대로 최선을 다해서 자녀를 사랑하고 그 장래를 위해 희생합니다.
잘 사는 부모는 잘 사는대로 자녀를 위해 많은 사랑을 쏟아 붓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니 그의 전능하심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사랑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염려해야 합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둘째는 염려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말짱 헛것이기 때문입니다.
27절에 보니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염려해도 아무 변화나 유익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염려는 우리의 마음을 나뉘게 만듭니다.
그래서 도리어 되는 일도 방해되고, 더 크고 놀라운 계획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염려하고 근심하는 대신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낙심하는 대신에 감사하며 기뻐하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4. 왜 주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31-3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셋째로 염려는 이방인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방인들이란 누구를 말합니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즉, 불신앙인들의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버림당한 고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염려와 근심과 고민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런 사실을 비추어 볼 때, 염려는 곧 불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하는데, 그 믿음이 없을 때 일어나는 것이 곧 염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간으로서 염려와 근심이 전연 없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염려라는 단어는 걱정 자체를 거부하는 의미보다는, 문제를 만나도 염려에 빠져들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곳에 생각을 기울이거나 집중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것 때문에 정신이 산만해지고, 불안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 머리 위로 새가 날아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새가 우리 머리 위에 올라 앉아 둥지를 만드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5. 주님이 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넷째로 하나님 아버지는 자기 자녀의 육체와 생명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공중에 나르는 새들도, 이름도 모르는 들풀 조차도 하나님이 사시사철 저들을 위해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준비해 놓으시는데, 만물의 영장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된 우리가 무엇이 부족해서 염려해야 합니까?
26절을 보면, 새들은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모아 들이지도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일전에 덴마크에 갔더니 그곳 선교사님이 이곳에는 도적이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도적질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복지며 사회보장 제도가 완벽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새들이 들판에 나가서 씨를 뿌리고 김을 메고 추수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게 까지 수고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비록 말 못하는 짐승에 불과하지만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들의 백합화가 이러 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까?
심겨진 자리를 떠나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 자리, 원래 심겨진 자리만 지키고 있어도 하나님이 전부 먹이시고 입히시고 마시게 하시는 그 사랑, 그 은혜를 체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모아들이다」는 말은, 물질적인 안정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집착이나 노력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6. 왜 주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다섯째는 우리에게는 먹고 마시고 입는 인간의 기본인 의식주 보다 더 중요하고 더 시급한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결국 두 종류의 사람들입니다.
육체와 생명의 연장을 이어가기 위해서 생존자체에 모든 것을 걸고 사는 인생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하루의 삶에 모든 것을 걸고 씨름합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어려우면 염려하고 고통합니다.
그렇다면 사도 야고보의 말씀대로, 「너희 인생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약4:14)라는 표현대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의식주나 해결되고, 조금의 경제적인 여유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인생, 그렇다면 한 평생을 살아도 개나 돼지 보다 나은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종류의 인생들이 이 지구촌에는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사명 받은 자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비록 안개와 같은 인생처럼 보여도 그들 속에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생명의 말씀이 있고, 위로부터 내려오는 은사와 능력과 축복으로 충만하며, 십자가 사랑으로 충만한 삶이 있습니다.

7. 우리는 오늘부터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그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제일 중요한 자리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첫 번째가 26절의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라는 말씀과, 두 번째로 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하늘을 나는 새들과 들의 꽃이나 풀들보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 귀한 존재임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염려하는 그 시간에 그 에너지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모든 만물 가운데 자기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 이상으로 귀한 것이 없고,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희생할 정도의 사랑을 입을 존재가 없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제 내 인생에서 덜 중요한 것은 전부 뒤로 미루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을 제일 중요한 자리에 돌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얼마나 불필요한 염려와 불안 속에서 살았습니까?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 별로 가치도 없는 것들을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에 놓고 살았습니까?
그곳에서 다 몰아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몰아낼 때, 우리 인생의 주인노릇 하던 근심 걱정, 염려들이 다 물러가는 줄 믿습니다.
설교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염려 할 문제가 생기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내가 만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쇄와 능력을 주님은 예비하신 줄 믿습니다.

8. 공포나 두려움, 낙심이나 근심, 수많은 염려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그 믿음으로 몰아내시기 바랍니다.
나를 염려하게 만들고 두려운 마음을 가져오는 인생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 위에 사명자의 삶을 세운다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서 그대로 재현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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