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27.말씀운동(마태복음 4:12-17)
[성경본문] 마태복음4:12-17개역개정
12.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17.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말씀운동(마태복음 4:12-17/2011.2.27.오전)
덴마크의 영웅인 그룬트 비는 루터교회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의 시대적인 배경은 매우 비참했습니다.
당시의 프러시아, 지금의 독일과 전쟁에서 패전함으로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내야만 했고, 그래서 최대의 곡창지대도 넘겨주고 나니 남는 것은 북해와 발트해의 차가운 바람에 시달리는 돌과 모래와 잡초가 무성한 그런 땅만 남게 되었습니다.
국가 경제는 이미 파탄이 났고, 중앙은행도 도산하고, 사람들은 좌절과 실의에 빠져서 알코올 중독자가 흘러넘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룬트 비는 루터의 종교개혁의 이념을 바탕으로 국민의식을 일깨워 개척운동을 일으키며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맞는, 그 지역의 기후와 풍토에 맞는 새로운 낙농업을 주창하였습니다.
그는「국민의식이 개혁되어야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성인들을 위한 「성인기술교육학교」를 설립하고, 국민들에게 팽배했던 피해의식을 없애고, 적극적인 개척정신을 갖도록 했고, 그 덕분에 국민들은 우리도 뭔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3애 정신을 주창했는데,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자, 이웃을 사랑하자, 국토를 사랑하자」고 했습니다.
그룬트 비는 새로운 낙농기술을 보급하기 위해 전국을 돌면서 먼저 목사들을 설득하였고, 그들로 하여금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전령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바로 여기서 오늘의 선진 경제대국을 이루는 덴마크의 부흥은 시작된 것입니다.
지난 번 뉴스를 보니 포항공대가 전 세계 대학의 평가에서 27위에 올랐다고 했습니다.
1987년 3월5일 9개학과 249명의 신입생을 받아 시작한 이 대학은 개교와 동시에 국내 최고 수준의 인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학생들에게 340점 만점에 280점 이상 점수를 가진 자들에게 응시자격을 부여했고, 2020년에는 세계랭킹 20위를 목표로 하였는데, 2010년에 이미 27위에 오른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에는 우연이란 없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희생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내일에 소망을 가지고 힘쓰고 노력하는 자에게만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1. 오늘 본문을 보면 당시로서는 충격적이고 큰 사건 하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세례요한이 권력자들의 미움을 사서 투옥이 된 사건입니다.
마태14장 3절 이하에 그 사건의 전말이 기록되어 있으니, 곧 헤롯왕이 자기 동생인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하는 것을 세례요한이 강력하게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투옥 사건은 더욱 큰 비극을 불러오고 말았습니다.
헤롯의 생일잔치에 헤로디아의 딸인 살로메가 춤을 추어 헤롯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헤롯은 경솔하게 그녀가 요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약속하였고, 평소에 세례요한을 미워하던 헤로디아는 딸에게 요한의 목을 잘라 소반에 담아 가져 오라는 끔찍한 요구를 하게 했습니다.
헤롯은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했지만 스스로 맹세한 것을 돌이킬 상황이 되지 못하자 결국 요한의 목을 베어 살로메에게 주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례요한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 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11:11)고 하셨지만, 이 위대한 선지자의 생명은 타락한 권력자들의 부도덕한 잔치의 여흥을 돋우는 끔찍한 살인극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례요한을 따르는 제자들과 그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알고 존경하던 백성들에게는 참담하고 경악스러운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예의 주시하여 보면, 12절에서「요한의 잡힘」과 14절에서 「말씀을 이루려 하심」과 17절에서「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였다고 기록함으로 요한의 죽음은 결코 권력자들의 타락한 여흥의 희생물이나 어떤 우연한 사건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밝혀 낼 수 있으며, 밝혀진 그 사실들이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2. 그것은 첫째로, 겉으로 보면 세례요한의 목이 헤롯왕의 잔치 석상의 소반에 담겨 임금을 기쁘게 한 어린 여자 아이의 춤 값으로 지불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이 이 죽음을 통하여 장차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미리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 사실이 마17:11절 이하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에서도 명백히 드러나고 있으니,「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17:12)고 하심으로, 예수님은 세례의 요한의 죽음이 자신의 장차 당할 죽음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례요한의 죽음은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 피를 흘리며 죽임을 당할 수많은 순교자들의 죽음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며, 또한 이 지상에 세워질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당할 고난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사도바울은 주님의 몸이라고 표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주님의 몸은 어떤 몸이었습니까?
사도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 (빌2:5-7)다고 했습니다.
곧 비천하게 되심과 고난당하심과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위에 세워졌으며,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흘림과 전도자들의 희생을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가야할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현대의 교회는 세례요한의 죽음을 통해 예시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부터 시작하여 고난으로 이어진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직분을 받아 섬기는 사랑의 희생에서부터 시작하여, 복음을 위해 세상을 등지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전도자들과, 교회와 신앙을 악한 세대로부터 지키고자 하는 신앙인들의 희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세례요한의 죽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전조라고 한다면, 예수님이 세례요한이 간 길을 따라 가신 것처럼, 당연히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가신 갈보리 길을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3. 둘째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요한의 잡히심을 들으신 예수님이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으로 옮겨 가셨는데, 이것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예수님의 행동이 아니라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삶 자체가 자신의 뜻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언 되어진 하나님의 말씀 하나 하나, 곧 하나님이 미리 예정하신 뜻을 따라 사셨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생애는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른 전적인 순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곳곳에 주님의 행위와 말씀을 연결하여「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는 구절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33년의 전 생애를 마감하시던 십자가의 마지막 주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다 이루었다」成し遂げられた(요19:30)는 말씀입니다.
이는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주님이 완벽하게 순종하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늘에는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비행기가 다니는 길이 있습니다.
바다에는 뱃길이 있습니다.
자동차도 길을 따라 가야 안전하고 빨리 달릴 수 있습니다.
전차는 선로 위에 있어야 달릴 수 있듯이,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 있을 때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의 공생애를 통하여 나타난 수많은 능력들과 기적들이 다 어디서 온 것입니까?
마태 4장 23절 이하에 기록된 말씀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수많은 질병들과 고통에 시달리는 자, 귀신에 묶인 자들을 고치시고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으며,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며,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신 능력들이 다 어디서 온 것입니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결과입니다.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시며 주렸을 때에도 마귀가 나타나 3번씩이니 시험하였을 때, 예수님은 무엇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의 사도들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들의 사역에는 수많은 능력들이 뒤 따랐는데 왜 우리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받는 고난 보다는 세상이 주는 즐거움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4.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가장 먼저 시도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운동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곧 그리스도시며, 말씀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와 우리들의 반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헤롯이 왜 세례요한의 목을 베었습니까?
더 이상 말씀을 선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들으면 양심에 찔리고 들으면 귀찮고 괴롭고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 자신의 권력이 위태로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인 것입니다.
마귀는 헤롯에게 사용한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의 목을 베어 버리고, 기도의 목을 베어 버리고, 말씀의 목을 베어 버려서 살았으나 죽은 자 같은 무능한 신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길이 있다면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세례요한이 옥에 갇히자 하나님은 왜 예수님을 가버나움에 보내셨는지 이유를 알게 됩니다.
16절에 기록된대로「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생명의 빛을 비추기 위함입니다.
이방인들의 압제 속에서 소망을 잃고 고통하며 방황하는 이스라엘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요즘 중동에서 일어나는 자유화의 물결을 보면서 우리 대한민국도 그런 세월이 있었음을 돌아보면서, 그 때 선배들이 일제와 독재와 공산주의에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아니했더라면 우리도 아직 저런 세월을 살면서 가난과 무지와 억압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튜니지아와 이집트는 이미 독재정권이 무너졌지만, 리비아는 아직 많은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중동 사태를 통해 자유가 얼마나 귀중한 것이며,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희생과 피를 흘려야 하며, 자유를 위해서는 목숨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사람들의 용기에 대단한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5. 영적인 자유는 말씀운동에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말씀으로 회복되면 우리 육신의 문제는 그 어떤 것이라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말씀 운동이며 이 말씀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죽은 나사로를 살린 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귀신을 쫓아내신 것도 주님의 말씀입니다.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도, 벳세다 광야의 기적도 말씀에 순종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17절에「비로소」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전환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목베임으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 소멸되고 위축되어 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도리어 천국 복음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직접 복음을 전파하는 동기가 되고 만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첫 사역의 외침이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요한이 외치던 그 외침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구약의 말씀의 핵심이 동일하게 회개와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역사를 통해서 이 땅은 물론이고 우리의 심령은 천국으로 변화는 것입니다.
자석과 자석이 만나면 강력한 힘으로 서로 당겨 하나가 되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내 마음에 이미 말씀으로 천국을 이룬 사람은 장차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내 마음이 천국을 사모하여 내 심령으로 천국을 만들 때, 주님은 순교자 스테반을 부르시듯이 우리를 향해 두 팔을 벌리시고 천국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6.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씀운동을 어떻게 펼쳐야 합니까?
구체적인 방법은 3가지로 나타나야 합니다.
첫째로는 말씀을 가르치는 운동입니다.
교회 안에서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열심히 가르치고 배우는 것입니다.
히브리서4:12절에,「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온전하게 하고 새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교육으로 생각이 바뀌면 영혼이 구원받는 것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사람이 새로워지기 때문에 새 삶을 살 수 있으며, 그래서 가난한 삶도, 실패에 중독된 삶도 변화를 받아 성공된 인생, 축복의 인생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배운 말씀에 예수님처럼 순종하는 것입니다.
노예의 순종에는 하루하루 생명의 연장은 있으나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서의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요, 바로 이것이 능력과 응답과 영원한 축복이 되는됩니다.
이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셋째는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일을 위해 12제자들을 부르셨고, 제자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복음을 전파함으로 오늘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구원의 능력으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7. 주님은 세례의 요한의 잡힘과 죽음이라는 가장 어려운 시기를 통하여 도리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회로 삼으셨고, 동시에 공생애의 시대를 여셨습니다.
우리가 안팎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것은 또 다른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어려울 때 더욱 순종할 뿐 아니라 열심히 배우고 가르치고 나가서 복음을 전한다면, 이 시대에도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살아계신 능력들이 나타나며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