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20.인간의 가치(마태복음4:10-11)
[성경본문] 마태복음4:10-11개역개정
10.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인간의 가치(마태복음4:10-11/2011.2.20.오전)
1. 마태복음 4장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의 광야에서의 시험이 있고, 그 다음에 회개하고 구원받으라는 선교의 시작, 갈릴리를 중심으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리고 많은 병자들을 치료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시는 등의 많은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3장에서 이미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마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에게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그곳에서 금식하시며 기도하셨고, 가장 굶주리고 힘들었을 때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현실에도 시험거리는 많습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사방에서 시험거리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우리가 당하는 모든 시험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나 슬픈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보면 40이라는 숫자가 많이 등장합니다.
예수님도 40일간 금식기도 하셨고(마4:2), 모세도 40일간 금식기도(출24:18)를 했습니다.
노아 시대에는 땅에 홍수가 40일간 있었고(창7:12),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했습니다(수5:6).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탐지할 때 12명의 정탐꾼이 40일을 돌아다녔습니다(민13:25).
엘리야는 하나님의 산을 향하여 40일을 밤낮으로 걸어갔습니다(왕상18:8).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행1:3).
이처럼 성경에 나타나는 40이라는 숫자를 중심으로 하는 사건들은 어려움과 시험의 때며,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을 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2. 광야 40년간의 세월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오래 참으셨고, 또한 그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우시는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시험을 통한 훈련이 없는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히12:6)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고통과 시련 속에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본능은 할 수만 있다면 결코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남들이 고통하고 슬퍼하는 자리에서도 자신만큼은 그런 고통과 슬픔을 면해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남들보다 더 많은 희생과 수고가 없이는 결코 남다른 영광과 남다른 은혜를 맛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훈련은 연약한 사람도 겁쟁이도 강하게 만드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훈련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이스라엘만 훈련시키신 것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도 같은 방법으로 훈련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하는 시험은 손해가 아니라 유익이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대로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인 줄 믿습니다.
3. 바둑의 명언에 보면 기자쟁선 (棄子爭先)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바둑돌 몇 알을 희생시켜서라도 선수(先手)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둑 속담에 하수는 돌을 아끼고 상수는 돌을 버린다는 말도 있습니다.
또한 사소취대 (捨小取大) 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말하기는 쉬운데 뜻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바둑돌을 놓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승부에 집착하게 되고 승부에 집착하면 할수록 작은 돌에 집착이 강합니다.
왜? 적에게 잡힌 패석 하나 둘에 승패가 갈리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 처음에는 큰 포부를 가지고 출발하여도 나중에는 작은 이익에 마음이 사로잡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인생을 멀리 볼 때에는 지금 당하는 손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배드리는 이 한 두 시간은 당장에는 아무런 차이를 알 수 없습니다.
전도하고 봉사하는 수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토요일부터 교회에 나와서 주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오전 예배만 마치면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 남아 하루 종일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이나, 먼저 돌아가는 사람이나 바쁘기는 마찬가지고, 세상일에 매여 힘든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다릅니까?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다릅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려운 훈련도 잘 견딥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말씀과 기도로 훈련받기를 좋아합니다.
성도들을 위해 섬기고 희생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아직 까지는 지상에 아름다운 교회가 존재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줄 믿습니다.
4. 주님이 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셔야만 했습니까?
공생애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요 훈련입니다.
성령님을 보내사 하나님의 아들 에수 그리스도께서 광야로 인도하여 40일을 금식기도 하게 만드시고, 마지막에는 마귀의 시험을 받는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를 광야로 몰아내시고 마귀에게 시험받도록 허락하시는 줄 믿습니다.
왜? 우리를 하나님의 축복의 도구로 능력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함이요, 장차 우리에게 큰 영광과 영원한 복을 베풀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인색한 마음에 시간을 아끼고 물질을 아끼고, 몸을 아끼다가 더 큰 낭패와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것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나중에는 배고픈 것도 잘 참을 수 있고, 온갖 시험거리도 잘 이길 수 있으며, 어떤 유혹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40일쯤 굶주려 배고픈 것은 아무것도 아니란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또한 믿음이 강해졌다고 해서 그것이 자연적 인간을 비인간적이고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기본적인 의식주가 필요하셨고, 때가 되면 먹고 마셔야 생명을 유지하실 수 있으며, 때로는 슬프고 마음이 아프시고 분노하셨고 괴롭고 또한 쓸쓸함을 맛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40일을 굶주렸을 때에는 죽음의 공포를 맛보셨던 것입니다.
5. 그런 상황에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 돌로 떡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이렇게 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하 만물을 제어할 능력을 가지고서도 굶어죽는 다면 말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어떤 능력과 어떤 권세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힘이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빛이 있으라고 말씀만 하면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약한 사람들에게는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하고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일도, 힘 있고 강한 자에게는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는 것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과학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인공적으로 비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과학을 아는 사람에게는 가능한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돌로 떡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적어도 예수님에게는 그것이 간단한 일임을 마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돌로 떡을 만들어 주린 배를 채우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귀의 유혹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능력을 알고 돌맹이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했지만, 예수님은 도리어 사람이란 떡으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마귀의 유혹을 거부하셨던 것입니다.
6. 그렇다면 예수님이 4절에서 말씀하신 인간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빵도 중요하지만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곧 생명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빵이 필요하지만, 그 인간 육체의 내면에 자리 잡은 육체의 주인 되는 심령은 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만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에 예수님을 넘어뜨리지 못한 마귀는 계속해서 제2, 제3의 유혹으로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성전으로 산꼭대기로 데리고 가서 유혹을 해보지만, 예수님은 마귀의 모든 유혹을 다 물리치셨습니다.
그 때마다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사용하셨습니다.
마귀는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여정에서, 먹을 것도 필요하고, 신앙적인 능력도 필요하고, 세상에 대한 지배욕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시험에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사람답게,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는 생명으로서 살아가는데는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것이 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7. 그것은 첫째로 빵이 아니라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빵만으로는 육신을 보양할 뿐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육신과 영혼을 함께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빵이나 물질은 공허함 마음을 채울 수 없으며, 마귀의 유혹에 아무런 힘을 사용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과 마귀의 온갖 우혹으로부터 우리의 생명과 육신을 완벽하게 지켜주는 줄 믿습니다.
둘째로 사람은 명예나 인기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참다운 인간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가 있습니다.
노래 잘하는 달란트가 있으면 그것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인기는 올라가고 돈은 모여들지만,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생을 살거나 결국 마약에 손대거나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마련입니다.
유명한 배우나 가수가 왜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집니까?
일반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결과를 보게 됩니다.
사람의 가치는 내가 많은 것을 소유하는 소유주가 됨 있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는 모자라고 모자람으로 인한 고통은 있어도, 누군가가 나를 소유해 줄 때, 참 소유주에게 내가 귀속되었음을 알게 될 때 그곳에서 진정한 행복을 맛보는 줄 믿습니다.
셋째는 인간이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분의 목적을 위해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분에게 우리의 모든 것을 의탁할 때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존재가 되는 줄 믿습니다.
8. 우산에 붙은 손잡이를 떼어 어디에 사용하겠습니까?
우산 손잡이는 우산에 붙어 있을 때 가치가 있고, 아름다운 법입니다.
인생은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 살아갈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없이는 바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 섬기고 살아갈 때 가장 보배롭고 존귀한 사람이 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통해서 인간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분명히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것은 시험은 손해가 아니라 우리를 유익하게 만들며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입는 기회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인간의 가치나 행복이 내가 무엇을 넘치게 소유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하나님의 소유로서 그 분의 손에 붙잡혀 살아갈 때에 인간의 참된 가치가 있으며, 인간의 긍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있으며,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는 삶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는 마지막에 결론을 맺기를,「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니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3-14)고 했습니다.
하나님 중심, 말씀중심, 교회 중심의 삶을 살아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보배롭고 아름답고 복된 삶이되기를 소원합니다.

